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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녕의 중국기업인 탐구] 메이디그룹 허샹젠(1) 중국판 LG전자 개척

노녕 기자 nyeong0116@businesspost.co.kr 2022-03-17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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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에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이 나온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위험할 일이 없다는 의미이다.

중국 기업은 세계무대에서 다방면에 걸쳐 우리 기업과 경쟁하고 있다. 이들과 맞서기 위해서는 이들을 더욱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에게 익숙한 중국 기업이라도 이들을 이끄는 핵심 인물들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우리기업의 경쟁상대인 중국 기업을 이끄는 인물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경영전략과 철학을 지니고 있는지 집중적으로 탐구해 본다. <편집자주>

노녕의 중국기업인탐구-메이디그룹 허샹젠
[1] '중국판 LG전자' 개척
[2] 국유기업에서 민간기업으로
[3] 중국시장보다 해외시장 선택
[4] 전문경영인 체제로 과감한 변화

[비즈니스포스트] 메이디그룹은 거리전기, 칭다오하이얼과 함께 중국 3대 생활가전기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중국 증시에서 시가총액 10위권을 유지하는 대기업이자 해외매출 비중이 40%에 이르는 글로벌 기업으로 '중국판 LG전자'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메이디그룹이 최근 가전사업을 넘어 로봇과 인공지능, 5G통신 등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가전까지 진출 분야를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점도 LG전자와 비슷한 행보로 꼽힌다.

허샹젠 메이디그룹 창업주는 가전사업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해외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한 데 이어 메이디그룹이 가전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신사업으로 진출을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메이디그룹은 일본 도시바 가전사업부와 이탈리아 및 미국 생활가전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하며 외형을 확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 4대 산업용 로봇 제조업체 독일 쿠카도 인수해 산업용 로봇과 공장 자동화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했고 자체 생산공장에도 쿠카의 로봇 기술을 적용해 인건비를 절감하고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성과를 보고 있다.

허샹젠이 메이디그룹 설립 초기부터 제조업 기술 경쟁력을 강조하며 회사의 발전과 성장을 이끌어 온 철학이 현재까지도 메이디그룹의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허샹젠은 메이디그룹 최대주주이며 해마다 중국 부호 상위 10위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겸손한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좀처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은둔형 기업인이라는 별명도 있다.

2012년 회장직에서 물러나 자회사 사장을 맡고 있던 전문경영인에게 경영 총괄직을 과감히 양도했고 두 자녀에게 경영을 승계하는 대신 스스로 창업한 회사를 운영하도록 했다. 현재 메이디그룹 임직원에는 허샹젠의 가족이 단 한명도 없다.

허샹젠은 은퇴 뒤 세운 기부재단을 통해 비영리 병원 설립 등과 같은 공익사업에 대규모 금액을 기부한다. 해마다 기부금만 수조 원 단위에 이르러 중국에서는 기부왕 기업인으로도 유명하다.
[노녕의 중국기업인 탐구] 메이디그룹 허샹젠(1) 중국판 LG전자 개척
▲ 허샹젠 메이디그룹 창업자. <메이디그룹>
◆ 플라스틱과 선풍기 공장으로 메이디그룹 전신 세워

허샹젠은 1942년 광둥 순더구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에 관련해 알려진 정보가 많지 않지만 ‘초등학교만 졸업한 소년공’ 이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집에서 농사 일을 돕다가 곧바로 공장에서 일하며 제조업 관련한 경험을 쌓았기 때문이다.

허샹젠은 1968년 26세의 나이로 지역 주민 23명과 돈을 모아 유리병에 쓰이는 플라스틱 뚜껑을 생산하는 베이페이제반플라스택생산공장을 세웠다. 이 공장이 메이디그룹의 전신이다.

제조공장 근무 경험이 있던 허샹젠이 공장의 조장을 맡았고 그의 아내도 공장에서 함께 일했다.

공장에서 취급하는 제품은 플라스틱 뚜껑에서 축구공, 고무줄, 유리병 등으로 점차 늘어났으며 공장 이름도 베이페이공사 플라스틱금속제품공장으로 바뀌었다.

1972년 허샹젠은 1만 위안 규모의 대형 자동차 부품 생산 프로젝트 경매에 참여했다. 문화대혁명으로 중국이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고 있어 참여자가 많지 않았던 덕분에 운 좋게 낙찰됐다.

이 계약으로 공장 매출이 크게 늘어났고 공장 이름은 다시 베이페이공사 자동차부품공장으로 변경됐다. 허샹젠은 약 6년 만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에 충분한 자본금도 모았다.

1979년 중국 정부가 개혁개방을 실시하며 제조업계에서 창업 붐이 일어났다. 허샹젠은 곧 필수 가전제품으로 꼽히던 선풍기사업에 뛰어들기로 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공장 직원들은 시골 주민들이 전부였기 때문에 선풍기 제조 기술을 익힌 전문가가 없었다.

허샹젠은 가전공장 기술자를 섭외해 모든 직원이 선풍기 제조기술을 익히게 했다. 이후 선풍기를 위탁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선풍기를 개발하는 데도 성공했다.

그의 회사는 1982년 선풍기 사업으로만 연간 매출액 300만 위안(5억7800만 원)을 돌파했고 그 다음해에는 700만 위안(13억5천만 원)을 넘어섰다. 당시만 해도 중국에 매출 1만 위안을 넘긴 기업이 많지 않은 시절이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나 주민으로 구성된 모임이 자금을 모아 설립하고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향진기업이라는 점에서 메이디의 성장은 더욱 주목받았다.
[노녕의 중국기업인 탐구] 메이디그룹 허샹젠(1) 중국판 LG전자 개척
▲ 허샹젠 메이디그룹 창업자. <메이디그룹>
◆ 민간기업의 길로

1981년에 허샹젠은 기업 이름을 메이디로 정식 등록했다.

그 사이 일본에서 에어컨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중국까지 에어컨이 대중화되면 선풍기시장에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었다.

허샹젠은 발 빠르게 팀을 꾸리고 도쿄에 방문해 에어컨시장을 조사했다. 이후 상하이에 위치한 기업이 독일산 에어컨 기술을 수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술 총괄 담당자를 파견해 기술을 배우게 했다.

메이디는 이후 광저우의 한 가전업체가 경매로 내놓은 에어컨사업을 낙찰받았고 생산공장을 제외한 연구개발팀, 설계도, 생산기술, 설비모듈, 부품 재고 등 모든 부문을 순더에 있던 공장으로 가져왔다.

허샹젠이 메이디의 선풍기와 에어컨사업에만 집중하던 사이 중국 냉장고, TV 등 가전시장이 급속 성장기를 맞으며 TCL 등 가전업체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허샹젠은 중국 내수시장에서 경쟁하지 않고 해외에서 경쟁하기로 결정했다. 

허샹젠은 메이디에 정식으로 에어컨 제조공장을 따로 세웠으며 직접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선진국 제조 기술을 도입하는 데 힘썼다.

하지만 해외 수출 과정은 쉽지 않았다. 정부로부터 수출 권한을 받지 못해 에어컨 공장의 월간 생산량이 200대 안팎에 그치는 시기가 길어졌다. 1988년에서야 수출 권한을 받아 해외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됐다.

에어컨 수출 사업이 활성화되면서 메이디의 연간 생산가치는 1억2천만 위안(231억 원)을 넘었다.

또 다른 문제가 있었다. 당시 메이디그룹이 보유하고 있던 일부 공장은 마을 소속 자산이라 재산권 부분에서 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1990년 중국 당국이 제도적으로 국유기업과 민간기업의 질서를 잡기 시작했다. 공산당 국가 특성상 한 업체가 민간기업 절차를 밟겠다고 하면 곱지 않은 시선도 나왔다.

이에 당시 많은 기업들이 결정을 하지 못하거나 주도권을 중국정부에 쥐어주는 선택을 했다. 하지만 허샹젠은 과감히 민간기업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허샹젠은 메이디그룹의 기업재산권제도개혁을 신청해 주주제도를 도입했다. 그 덕에 메이디그룹은 중국 최초의 향진기업 출신 상장사가 됐다. 노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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