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류제강 KB국민은행 노조 위원장, 최호걸 하나은행 노조 위원장, 박홍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위원장,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 신동하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이 3월16일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충정로 사옥 앞에서 열린 ‘하나금융 회장 선임 안건에 대한 국민연금 반대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금융기관은 일개 기업이 아니라 국민들의 피땀이 녹아 있는 소중한 자산을 관리하는 곳이다. 하나금융그룹을 이끌어 갈 최고경영자를 선임하는 일이 신중하게 결정돼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호걸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하나은행지부(하나은행 노조) 위원장은 16일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충정로 사옥 앞에서 열린 ‘하나금융 회장 선임 안건에 대한 국민연금 반대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은행 노조는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 회의를 하루 앞두고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주총회에 올라가는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의 회장 선임 등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해 달라고 국민연금에 촉구하기 위해서다.
국민연금 수탁위는 17일 회의를 열고 하나금융지주의 회장 선임 등 안건에 대한 방침을 논의한다.
국민연금은 하나금융지주의 최대주주다. 2021년 6월 말 기준으로 하나금융지주의 지분 9.94%를 보유하고 있다.
기자회견은 ‘국민연금 수탁위는 반대표결 의결하라’는 구호를 함께 외치는 것을 시작으로 약 30분 동안 진행됐다.
박홍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위원장부터 최호걸 하나은행 노조 위원장, 류제강 KB국민은행 노조 위원장, 신동하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가 차례로 4~5분씩 발언을 이어나갔다.
발언자들의 이유는 제각각이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함영주 부회장이 회장에 오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은 ISS의 반대를 이유로 들었다.
ISS는 세계 최대의 의결권 자문사다. ISS는 최근 하나금융지주 주총 안건분석 보고서에서 법적 리스크를 이유로 함 부회장의 회장 선임에 반대표 행사를 권고했다.
박 위원장은 “ISS는
함영주 부회장의 회장 선임에 반대하고 함 부회장을 추천한 사외이사 3명에 대해서도 재선임하지 말아야 한다고 권고했다”며 “오죽하면 회장 후보뿐 아니라 거수기에 불과한 사외이사들까지도 문제 삼겠냐”고 말했다.
박 위원장으로부터 마이크를 넘겨 받은 최호걸 하나은행 노조위원장은 회장 선임 절차와 함 부회장의 자질을 이유로 들며 박 위원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최 위원장은 “이번 회장 선임 절차는 롱리스트(회장 후보군)가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고 회장후보 추천위원회는 날치기 통과하듯 속전속결로 최종 후보를 선정했다”며 “그 과정에서 함 부회장의 법적 리스크에 관한 사법부 판결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자의적으로 예단해 하나금융그룹에 혼란과 위기를 자초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함 부회장은 청년들에게 상처만 남겼던 채용비리 사태의 당사자이며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 불완전 판매 등에도 책임이 있다”며 “최근 법원의 판결로 이런 부분이 더욱 명확해졌다”고 말했다.
함 부회장은 하나금융지주 회장 단독후보에 추천될 때까지만 해도 모두 2건의 재판을 받고 있었다.
채용비리 관련 재판 1심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을 상대로 낸 ‘업무정지 등 처분취소’ 소송 1심에서는 예상과 달리 패소 판결을 받았다.
▲ 최호걸 하나은행 노조 위원장(왼쪽)과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 <비즈니스포스트> |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함 부회장의 법적 리스크가 작지 않다고 주장했다. 특히 법원에서 문책경고의 징계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위험부담이 크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현재 하나금융그룹은 문책경고의 징계가 신규 취업에 제한된다는 점에서 당장 회장 선임 절차에 영향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문책성 경고일로부터 징계 효력이 발생한다는 판단이 나올 수도 있다”며 “지금까지는 법률 해석이 충돌하지만 위험 부담이 어마어마한 만큼 회장후보 추천위원회는 다른 후보를 추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 부회장은 2020년 3월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DLF) 손실 사태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으로터 ‘문책경고’의 중징계를 받았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 수위는 해임권고, 직무정지, 문책경고, 주의적경고, 주의 등 5단계로 나뉘는데 문책경고 이상 중징계를 받으면 3년이 지나기 전에는 금융권에 취업할 수 없다.
함 부회장이 2020년 6월 서울행정법원에 낸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돼 현재는 4월14일까지 효력이 정지된 상태다. 하지만 취임 이후 징계 효력이 되살아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참여연대와 민생경제연구소 대표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수탁자책임 원칙) 이행 의무를 강조하며 함 부회장의 회장 선임 안건에 반대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동하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는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할 때 스스로 적극적 주주권을 행사하겠다고 가이드라인을 정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회장 선임 안건에 반대표 행사는 물론 공익이사 선임 등을 통해 문제기업의 지배구조를 바로잡으려는 노력까지 해야한다”고 말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주총에서 반대표를 행사해 고 조양호 전 한진그룹 회장의 연임을 막은 적이 있다”며 “이때 언론은 이를 두고 ‘자본시장의 촛불 집회’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은 한 번 더 스튜어드십코드를 제대로 발휘해 사회적 진전을 일궈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나은행 노조의 요구가 국민연금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는 당장 가늠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민연금으로서는 하나금융지주에서 함 부회장을 대신할 만한 회장 후보가 마땅치 않다는 점 등도 고려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함 부회장은 회장에 오르기까지 주주총회와 이사회 등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하나금융지주 주총은 25일 오전 10시 서울 중구에 있는 하나금융그룹 명동사옥 4층 강당에서 열린다. [비즈니스포스트 차화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