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에 요즘 경사가 겹치고 있다.
자동차 본고장 유럽과 미국에서 최고의 품질을 잇달아 인정받았다. 특히 자동차산업 대전환기를 앞두고 전기차 분야에서 받은 극찬은 눈부실 정도다.
이런 여세를 몰아 현대차그룹은 최근 CEO인베스터데이에서 2030년 전기차 판매목표를 연간 307만 대로 제시했다. 앞으로 약 10년 동안 전기차 판매를 10배 이상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런 목표를 이뤄낸다면 현대차그룹의 미래는 밝을 것 같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현대차그룹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전기차를 만들겠다는 구체적 계획까지는 내놓지 못했다.
무슨 속사정이 있는 걸까.
◆ 현대차그룹, 전기차 놓고 '비현실적' 극찬 이어져
미국 제이디파워(J.D.Power)와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의 내연기관차까지 포함한 내구성과 안전성 평가는 일단 논외로 하자. 물론 현대차그룹은 이 평가에서도 글로벌 자동차그룹 가운데 최고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현재보다 미래가 더 중요하다. 앞으로 대세는 전기차다. 기아는 전기차에서 2월 말 어마어마한 성과를 얻었다. EV6로 '2022 유럽 올해의 차'에 뽑힌 것이다. 한국 브랜드로는 처음이다. 유럽과 미국 주요 브랜드를 다 제쳤다.
형님 현대차로선 부러울 만하다. 그렇다고 기아에 뒤지는 건 아니다. 현대차 아이오닉5는 지난해 자동차 본고장인 독일에서 '올해의 차'로 선정됐다.
이뿐 아니라 아우토빌트 등 독일 주요 자동차 전문지들이 잇달아 아이오닉5를 최고의 차로 꼽았다. 비교평가에서 벤츠, 아우디, 포르쉐 등 독일차를 모두 제쳤다. 맞다. 우리가 잘 아는 그 차들이다.
현대차의 최근 수상 소식은 거짓말 같다.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만하다. 현대차와 기아가 전 직원에게 1인당 400만 원씩, 4천억 원 격려금을 통 크게 쏘는 것도 이해가 된다.
물론 소비자 사이에서 현대차 브랜드 파워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대차그룹 전기차의 품질과 디자인을 높게 쳐주고 있다. 이런 추세를 이어가면 브랜드 파워도 올라갈 수 있다.
이 대목에서 현대차그룹이 내건 2030년 전기차 판매목표 대수를 주요 글로벌 자동차그룹과 비교해보자.
폴크스바겐과 스텔란티스는 500만 대로 잡았다. 전기차 전환에서 속도가 느리다는 토요타 조차도 350만 대다. 현대차가 이번에 높여서 내놓은 목표조차도 보수적이라고 볼 수 있다.
◆ 현대차그룹 전기차 생산계획에 구체성 없는 속사정
현대차그룹이 인베스터데이에서 내건 전기차 전환 계획에 대한 증권업계의 반응을 살펴보자. 현대차그룹 인베스터데이 뒤 나온 보고서를 요약하면 '전기차 전환을 향한 의지는 평가하지만 구체적 계획이 없다'로 정리된다.
현대차그룹이 내놓은 전략에는 물론 얼마를 투자하고, 몇 종의 전기차를 내놓겠다는 계획은 있었다. 해외 현지 생산을 늘리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하지만 전기차 공장을 언제, 어디에, 어떻게 늘리겠다는 말은 없었다. 인력을 어떻게 전환하고 배치한다는 계획도 꺼내놓지 못했다.
여기엔 노조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현대차그룹만의 속사정이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전용 플랫폼 전기차를 국내 공장에서 생산한다.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는 차를 해외에서 생산하기 위해서는 단체협약에 따라 노사위원으로 구성된 고용안정위원회의 협의를 거쳐야 한다.
국내에서 전기차 생산라인을 새로 돌리려 해도 인력투입 등을 놓고 노조와 협의를 진행해야 한다. 이렇다보니 현대차그룹으로선 전기차 생산과 관련해 원론적 수준 이상으로 말을 꺼내기가 힘들 수밖에 없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021년 5월 미국에 8조 원 투자계획을 밝혔을 때도 노조에선 바로 "조합원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반발이 나왔을 정도다. 일방적 해외 투자를 강행하면 노사 공존공생은 요원할 것이며 전기차 확대전략도 실패할 것이라는 으름짱이 있었다.
더구나 올해부터 강성으로 분류되는 노조 집행부까지 들어섰다. 이 집행부는 선거에서 경영진을 박살내겠다는 말을 유인물에 내걸기도 했다.
글로벌 완성차기업은 시장 성장에 맞춰 세계에 전기차 생산시설을 확대하기 위해 최근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현대차는 전기차 해외 현지 생산을 위해 앞으로 강성 노조를 설득하는데 얼마나 더 진을 빼야 할 지 가늠할 수가 없다. 전기차 대전환 시대를 앞둔 현대차그룹의 미래에 가장 큰 위험 요인은 어쩌면 노조일 수도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박창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