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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발권력을 동원한 기업 구조조정 지원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 총재는 4일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참석차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머물던 중 기자간담회를 열어 “기업 구조조정에 발권력을 이용하려면 납득할 만한 타당성이 필요하고 중앙은행이 투입한 돈의 손실이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기본원칙”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의 발언은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논의하기 위한 관계기관 협의체가 활동에 들어간 상황에서 한국은행의 기본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 총재는 발권력 동원의 타당성과 관련해 “유일호 부총리가 국회와 소통하고 국민의 공감대를 획득하겠다고 한 말은 아주 적절하다”며 “정부가 주도하는 구조조정에 중앙은행이 들어가려면 그렇게 해야 하는 불가피성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손실 최소화 원칙과 관련해 “중앙은행이 손해를 보면서 국가 자원을 배분할 권한은 없다”며 “한국은행법상 확실한 담보가 있어야 발권력을 동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손실 최소화 원칙에서 보면 아무래도 출자보다 대출이 적합하다”며 “다만 출자 방식을 100% 배제하는 것은 아니고 타당성이 있으면 그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는 정부여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국은행의 국책은행 출자에 대해 신중한 인식을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수출입은행이나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에 대한 한국은행의 출자는 담보없이 돈을 지원하는 것인 만큼 국민적 공감대라는 여건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한국은행은 수출입은행 지분을 13.1% 보유한 2대주주이기 때문에 출자가 가능하다. 반면 산업은행 출자를 위해서는 산업은행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 총재는 한국은행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2009년 운영된 자본확충펀드를 제시했다.
자본확충펀드는 한국은행이 시중은행에 채권을 담보로 대출하고 은행들은 그 자금으로 자본확충펀드를 만들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낮은 은행을 다시 지원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 총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민간회사인 AIG나 제너럴일렉트릭(GE) 등을 지원할 때도 출자보다 지원금 회수가 가능한 대출방식을 주로 택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국은행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로 금융안정을 꼽았다.
이 총재는 “기업 구조조정이 진행되면 신용리스크를 정확히 측정하기 어려워진다”며 “부실기업과 관계없는 건전한 기업도 대출이 어려워지는 상황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면 리스크 프리미엄이 과도하게 발생해 실물경제를 위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선업에서 구조조정이 추진되면 은행들은 이에 연계되는 철강 등 다른 업종이 모두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판단해 보수적인 방식으로 대출을 진행한다. 그 결과 기업의 회사채 등을 소화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이런 연장선상에서 회사채를 지원하는 방안도 항상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고 있다”며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앙은행이 해야 할 역할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며 답답한 심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한국은행이 구조조정을 거부하고 협조를 안 한다는 얘기가 나와 당혹스럽다”며 “모든 논란과 싸움은 협의체에서 이뤄져야 하고 정부와 한국은행 모두 충족할 방안이 도출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로부터 받은 요청은 협의 논의에 참가해 달라는 것뿐”이라며 “정부로부터 국책은행에 한국은행이 출자해달라는 이야기를 직접 들은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국내 경기와 관련해 “내수가 조금 살아나는 기미가 있지만 여전히 취약하고 소비도 개선세에 들어섰지만 아직 취약하다”며 “구조조정이 경제성장률의 하방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시중은행들이 한국은행에 건의한 지급준비율 인하와 관련해서도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이 총재는 “지급준비율은 통화정책의 한 수단이니까 다른 정책수단과 함께 결정해야 한다”며 “은행들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어려우면 생각해봐야 하지만 선제적으로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