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한국판 양적완화’를 두고 그동안 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온 한국은행의 입장에 변화가 온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 한국은행의 발권력 동원 가능성이 높아진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 유일호 이주열 프랑크푸르트 회동 ‘관심’
이주열 총재는 2일 오전 열린 집행간부회의에서 “기업 구조조정이 우리 경제의 매우 중요한 과제이며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역할을 적극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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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
그는 “이제 기업 구조조정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으므로 한국은행의 역할 수행 방안에 대해 다시 한번 철저히 점검해 달라”며 “구조조정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금융시장 위축, 기업자금 사정 악화 가능성 등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국은행의 발권 가능성이 높아진 게 아니냐는 관측을 불러올 수 있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 총재는 국책은행 자본확충과 관련해 대외발언을 할 때 관계기관이나 일반 국민의 오해가 유발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당부했다.
이는 윤면식 한은 통화담당 부총재보의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윤 부총재보는 4월 29일 “기업 구조조정 지원은 기본적으로 정부 재정의 역할”이라며 “발권력을 이용해 재정 역할을 대신하려면 국민적 합의와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가능하다”며 사실상 ‘한국판 양적완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윤 부총재보의 발언 뒤에도 정부의 양적완화 압박은 이어졌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구조조정 재원과 관련해 “딱 하나의 방법을 쓰기보다 재정과 통화당국의 가능한 조합을 생각해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유 부총리와 이 총재가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나 양적완화와 관련해 어떠한 의견조율을 이끌어낼지에 주목된다.
유 부총리는 3~4일 이틀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는 제19차 동아시아국가연합(ASEAN)+3(한•중•일)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와 제 49차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1일 출국했고 이 총재도 같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2일 정오께 출국했다.
기재부와 한은은 두 수장이 현지에서 공식 회동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구조조정 재원 조달을 위한 비공식적으로 만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유 부총리는 3일 정오(현지시각)에, 이 총재는 5일 정오에 구조조정과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에 대해 입장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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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구조조정이 시급한 현안으로 부상한 현재 상황에서 정부와 한은 모두 책임전가라는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 결국 두 당국의 수장이 어떠한 식으로든 해법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책은행 자본확충 방안 마련을 위한 정부 논의도 본격화된다.
기재부와 금융위원회, 한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이 참여하는 관계기관 태스크포스(TF)가 4일 첫 회의를 열고 국책은행 지원방안 논의를 시작한다.
◆ 박승 전 한은총재 “양적완화, 바람직하지 않아”
박승 전 한은총재는 2일 한국판 양적완화와 관련해 “바람직하지 않다”며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박 전 총재는 이날 한 라디오인터뷰에서 “어떤 개인이나 특정 기업, 지역을 위해 우리나라의 금고를 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한은의 발권력을 ‘국가의 금고’로, 한은의 역할을 ‘금고를 지키는 금고지기’에 비유하며 한은의 독립성을 강조했다.
박 전 총재는 “중앙은행이 금고 열쇠를 사용할 때는 준칙이 있다”며 “그것은 그 사회의 보편적 목적을 위해 금고열쇠를 써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부 국민들이나 정부가 ‘중앙은행이 너무 소극적이지 않냐’고 말할 수 있지만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어느 나라나 금고지기는 소극적이고 소심하다”며 “그래야 틀림없이 금고를 지킬 수 있다. 이해해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재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