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영화 '트럼보' 스틸이미지. |
영화와 정치의 긴장관계는 참 해묵은 주제다. 이는 예술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행위가 정치 혹은 정치적인 것에서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늘 문제가 되는 것은 정치 자체가 아니라 현실 정치나 특정 권력이다. 예술이 본질적으로 추구하는 자유와 부딪치는 상황 말이다.
최근 국내 영화계에서 부산 국제영화제를 둘러싸고 갈등이 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정인 혹은 특정 세력에 의해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거나 억압받는 데 대해 다수 영화인들이 반기를 드는 까닭이기도 하다.
7일 개봉해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트럼보’는 1950년대 미국사회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이런 해묵은 주제를 다룬다. 하지만 현재적 의미에서 아직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고전 ‘로마의 휴일’과 ‘빠삐용’을 쓴 당대 최고의 스타 시나리오 작가 달튼 트럼보(브라이언 크랜스톤)가 주인공이다.
1950년대 초중반 미국은 매카시즘의 광풍이 휩쓸었던 시대다. 극단적인 반공주의에 기반해 조금이라도 이념이 다른 경우 용납되지 않았다. 자유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미국에서 한마디로 ‘비정상의 정상’이 판을 쳤던 것이다.
트럼보는 천재 시나리오 작가였지만 공산주의 축출에 앞장선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 의해 블랙리스트에 올라 실제 투옥되기도 했다. 트럼보가 결국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11개의 가명을 쓰는 것이었다.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주연해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로마의 휴일’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이다.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수상자로 두 차례나 호명됐지만 진짜 이름은 끝내 호명되지 못했다.
영화는 극단적인 이념을 통해 예술을 재단하고 예술가의 활동을 제한했던 시대에서 살아남은 트럼보의 일대기를 흑백 화면을 교차해 담아냈다.
|
|
|
▲ 제이 로치 감독. |
트럼보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다소 진부한 주제의 영화지만 실화라는 점과 극적 요소가 공감을 얻어내며 개봉 3주차인 20일 5만 관객을 돌파하고 22일 현재까지 다양성영화 순위 상위권에 올라있다.
최근 극장가에서 이렇다 할 화제작이 없는 형편이어서 영화 관련 SNS나 게시판 등을 통해 호평이 잇따르는 작품이다. 또 로마의 휴일 등 영화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들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긴 점도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제이 로치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해 “그 시절을 힘들게 이겨낸 영화인에 대한 헌사”라며 “다시는 정치적 신념으로 예술가가 탄압받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트럼보는 마침내 이름을 되찾고 전미작가조합상을 수상하며 감동적인 명연설을 남긴다.
“블랙리스트는 악마의 시절이었다. 어둡던 시절을 돌아보면서 영웅이나 악당을 찾을 까닭이 없다. 희생자만 있었을 뿐이다. 오늘 하는 얘기는 누굴 아프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오로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것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