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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 |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이 가장 먼저 인력감원이라는 칼을 빼들었다.
권 사장은 지난해 6월 인위적인 인력 구조조정의 중단을 선언했는데 이를 뒤집었다.
정부가 조선업계에 대한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중공업이 구조조정에서 가장 우려되는 대목인 감원을 앞장서 추진해 조선업계 구조조정의 추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발판을 놓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노조의 반발 등 헤쳐가야 할 과제들이 너무나 많다.
◆ 권오갑 “오직 회사의 생존만 생각해 달라”
2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이 이르면 다음주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고 인력감원을 포함한 대대적인 구조조정 작업에 착수한다.
현대중공업은 비상경영체제를 공식화한 뒤 휴일근무와 특근 등을 폐지해 불필요한 지출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과 권오갑 사장은 최근 울산 본사에서 회의를 열고 전체 임직원의 10% 이상을 감원하는 내용을 담은 구조조정 방안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4분기까지 9분기 연속 적자를 내며 4조7천억 원에 이르는 누적적자를 본 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수주실적이 호전되지 않자 몸집줄이기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권 사장은 21일 회사의 경영환경을 설명하고 노조의 설득을 이끌어내기 위해 백형록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 등 노조 간부들을 만났다.
권 사장은 회사의 전반적인 경영환경과 현안, 해결방안에 대해 노조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했다.
권 사장은 “수주절벽에 따라 일감이 부족한 냉엄한 현실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며 “회생을 위해 이제는 노조도 오로지 회사의 생존을 위한다는 생각을 해달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경영지원본부장과 원가담당임원도 참석해 1분기 실적과 수주상황, 확보물량, 자금현황 등을 노조에 설명했다.
권 사장은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과 함께 3월에 발표한 담화문에서도 “급격히 일감이 줄어 물량절벽이 현실화되고 있다”며 “오직 회사만을 생각하고 잘못된 것을 과감히 없애 나가자”고 주문했다.
◆ 현대중공업, 선제적으로 나서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 등 경쟁기업과 달리 인력감원에 선제적으로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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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 |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에 모두 5조5천억 원에 이르는 적자를 냈지만 적극적으로 인력을 축소하겠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3월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4만2천 명 수준인 인력규모를 2019년 3만 명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년퇴직자와 자연퇴사자, 현장 직영인력 등을 자연스럽게 줄이는 방안으로 인력감원에 나서겠다고 했다.
삼성중공업도 지난해부터 상시 희망퇴직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인력감원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은 1분기에 탱커 2척과 LPG선박 1척 등 3척을 수주했다. 올해 세운 목표의 2.8% 수준이고 지난해와 비교해도 수주실적이 급감했지만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이 1분기 수주실적이 전무한 점을 고려하면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다.
현대중공업은 수주절벽이 곧 물량절벽으로 이어질 것이라 우려하지만 수주잔고도 아직은 여유가 있다. 현대중공업은 3월 말 기준으로 선박 123척과 해양플랜트 17기의 수주잔고를 보유하고 있다.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의 수주잔량은 3월 말 기준으로 450만6천CGT(표준화물 환산톤)를 기록해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를 제치고 전 세계 2위를 차지했다.
◆ 정부 움직임과 발맞추나
권 사장이 인력감원을 꺼내든 것은 정부의 조선업계 구조조정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을 더욱 속도감 있게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에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정부는 애초 조선3사를 1~2개로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대우조선해양의 재무구조가 취약한 상황을 고려해 사업부끼리 통폐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3사가 각자 보유한 경쟁력있는 사업에 사업을 몰아주는 방식이 유력한 것으로 점쳐진다.
정부가 사업부 통폐합을 추진하게 되면 현대중공업이 가장 수혜를 볼 것으로 업계는 바라본다. 현대중공업이 다른 경쟁기업과 비교해 사업능력과 수주잔량 면에서 우위에 있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놓고 볼 때 현대중공업이 사업부 통폐합을 앞두고 선제적으로 정지작업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관측에 힘이 실린다.
현대중공업이 사업부 통폐합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인력감원 여파를 최소하하기 위해 먼저 인력 구조조정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조선과 해양플랜트 부문의 인력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만6108명이다. 대우조선해양은 1만3199명, 삼성중공업은 1만3744명인 점을 고려하면 경쟁사보다 2500~3천 명 가량 많다.
◆ 노조와 갈등, 어떻게 수습할까
권오갑 사장은 무엇보다 노조와 갈등을 넘어서야 한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회사에 26일 임단협 상견례를 개최하자고 통보했지만 현대중공업은 5월 셋째주에 실시하자고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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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형록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 |
노조는 현대중공업이 여러 이유를 들어 단협 시작 날짜를 미루고 있다며 늦어도 5월3일에는 상견례를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체결한 단협이 5월31일 만료되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비상경영체제가 가동되고 있는 시점에서 노조가 제출한 임단협 요구안에 대한 수용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충분한 사전조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올해 임협 요구안에 ▲기본급 5.09% 인상 ▲성과급 250%+알파 ▲성과연봉제 폐지 등의 내용을 담았다. 단협안에는 ▲전환배치 여부 본인 동의 강화 ▲정년퇴직자 포함 퇴사자수 만큼 신규사원 자동충원 ▲노조 사외이사 추천권 보장 등이 포함됐다.
현대중공업은 노조의 요구안을 모두 수용할 경우 연간 3천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 9분기 연속 적자 상황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이 1분기에 흑자로 전환할 것이 확실시되는 점을 고려하면 임단협에서 회사가 주도권을 쥘 명분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권오갑 사장이 비노조원을 중심으로 인력감원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생산직까지 포함한다는 계획을 추진하는 만큼 노조는 강력히 반발하고 나설 게 불보듯 뻔하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