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엽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장 사장이 자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의 생산물량을 충분히 배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사업의 수율(생산품 가운데 양품의 비율)이 낮아 엑시노스 칩보다 퀄컴 물량을 우선 생산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 강인엽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장 사장. |
25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미국 퀄컴이 30일 테크서밋(Tech Summit) 행사를 열고 차세대 플래그십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스냅드래곤8 Gen1(스냅드래곤898)’를 공개한다.
삼성전자도 이에 맞춰 올해 안에 차세대 플래그십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엑시노스2200’을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두 칩 모두 삼성전자 4나노미터 파운드리에서 생산되며 삼성전자가 내년 2월 공개할 플래그십 스마트폰 갤럭시S22 시리즈에 탑재된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플래그십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로 엑시노스 시리즈와 스냅드래곤 시리즈를 3대7 수준으로 섞어 활용해 왔다.
강인엽 사장으로서는 자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사업 확대를 위해 갤럭시S22 시리즈에 엑시노스2200이 더 많이 쓰이는 것을 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외신보도를 종합해 보면 강 사장의 희망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최근 렛츠고디지털 등 IT매체들은 팁스터(내부정보 유출자)들을 인용해 “갤럭시S22 시리즈에서 스냅드래곤898의 탑재비중이 기존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며 “삼성전자 4나노 파운드리의 수율이 50%에도 채 이르지 못하고 있어 생산능력이 제한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퀄컴은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경쟁사다. 그러나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에게는 미국 그래픽처리장치(GPU)회사 엔비디아와 함께 양대 고객사다.
심지어 퀄컴은 삼성전자에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위탁생산을 맡기면 시스템LSI사업부에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업계 우려와 상관없이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에 일감을 맡기는 ‘고마운 손님’이다.
실제 미국 애플이 이 논리를 들어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가 아닌 대만 TSMC에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위탁생산물량을 발주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에게 퀄컴은 놓쳐서는 안 될 고객사다.
퀄컴이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에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생산능력을 양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도 하다.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샤오미, 엑스페리아, AMD 등 다양한 회사들이 퀄컴으로부터 스냅드래곤898을 공급받기로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시장 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2021년 2분기 글로벌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시장에서 판매량 기준으로 대만 미디어텍이 점유율 43%로 1위, 퀄컴은 24% 점유율로 2위에 각각 올랐다.
지난해 2분기까지만 해도 퀄컴이 점유율 28%로 1위, 미디어텍이 26% 점유율로 2위였는데 1년 사이에 순위가 뒤바뀌고 격차가 크게 역전됐다.
퀄컴으로서는 미디어텍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라도 고객사 납품일정에 차질을 빚고 싶지 않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도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사업에서 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2분기 12%에서 올해 2분기 7%로 낮아지는 등 고전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로서는 퀄컴과 관계를 고려해 엑시노스 시리즈의 사업 확대와 퀄컴의 스냅드래곤 발주물량에 대응하는 것을 저울질해야 하는 상황에서 퀄컴 쪽으로 기울 공산이 크다.
▲ 2021년 2분기 글로벌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시장 점유율 집계. <카운터포인트리서치> |
결국 강 사장이 엑시노스2200을 앞세운 자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사업 확대 기회를 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강 사장은 엑시노스 시리즈의 고질적 약점으로 지적받아온 그래픽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기존에 활용해 왔던 영국 ARM의 그래픽자산 말리(Mali) 대신 AMD의 그래픽자산 RDNA2를 도입하는 등 엑시노스2200의 개발에 공을 들였다.
엑시노스2200이 전작인 엑시노스2100보다 최대성능 기준 31~34%, 지속성능 기준 17~20%가량 빨라졌다는 벤치마크(성능평가) 결과가 유출되면서 시장에서 엑시노스2200을 향한 관심도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10월까지만 해도 샘모바일 등 외신들을 통해 삼성전자가 갤럭시S22 시리즈에서 엑시노스2200의 탑재 비중을 50% 이상으로 높일 수 있다는 소식이 보도되기도 했다.
이런 장밋빛 전망이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강 사장은 엑시노스2200에 앞선 2개 제품에서 쓴 맛을 봤다. 그만큼 엑시노스2200의 성공이 절실한 상황에 놓여 있다.
삼성전자는 2020년 갤럭시S20 시리즈에 당시 시스템LSI사업부가 내놓은 엑시노스990과 같은 세대 퀄컴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스냅드래곤865을 섞어 탑재했다.
다만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갤럭시S20 시리즈의 내수모델에조차 엑시노스990이 아닌 스냅드래곤865를 활용했다. 엑시노스990은 스냅드래곤865와 비교해 성능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발열이 심하다는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는 올해 1월 엑시노스2100을 내놓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갤럭시S21 시리즈에서도 내수모델에 엑시노스2100이 아닌 스냅드래곤888을 썼다.
강 사장은 엑시노스2100을 공개할 때부터 차기작인 엑시노스2200에 자신감을 보였다.
강 사장은 1월 엑시노스2100 공개 행사에서 “이번에 가장 진보된 모바일 프로세서를 공개했지만 삼성전자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며 “차세대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엑시노스2200)를 차세대 주력 제품으로 만들어 프리미엄 모바일기기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엑시노스2200 물량을 충분히 생산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강 사장으로서는 속이 쓰릴 수밖에 없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