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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의 가시밭길 끝이 없다

장윤경 기자 strangebride@businesspost.co.kr 2014-06-12 18:5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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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정은의 가시밭길 끝이 없다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정몽헌 회장의 타계 이후 갑작스럽게 현대그룹 회장을 맡있지만 현대가문으로부터 경영권 위협을 받아왔다. 사투 끝에 경영권을 지켰지만 이제 유동성 위기에 몰려있다.

현 회장은 강도 높은 자구책을 이행하고 있다. 채권단으로부터 구조조정을 제대로 이행해 ‘모범’을 보이고 있다는 칭찬도 받는다.

그래도 가시밭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번 자구책을 통해 급한 불을 끄더라도 현대그룹이 과연 회생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 부정적 시각이 강하다. 일부에서 현대그룹이 자칫 그룹 해체의 길을 걷거나 몇몇 계열사를 거느린 미니그룹으로 생존해 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현 회장도 이런 외부의 시각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현 회장이 현대그룹 내부에서 최정예들을 뽑아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현 회장이 현대그룹 회장에 오른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현 회장이 걷고 있는 가시밭길의 끝은 어디인가?

◆ 그룹 해체 위기에 직면한 현정은

현대그룹의 위기는 핵심계열사인 현대상선에서 비롯됐다. 현대상선의 부채비율은 900%에 육박한다. 해운업황 침체의 장기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업황이 좋지 않으니 일감은 줄고 자금수요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현대상선이 위태로워지면서 그 고통이 현대엘리베이터에 전가됐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순환출자구조로 이뤄져 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그나마 양호한 실적을 보이지만 벌어들이는 돈 이상을 현대상선 등에 투입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올해 갚아야 할 돈이 1조1천억 원에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현정은 회장은 산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결단을 요구받았다. 현대증권을 비롯한 현대그룹 계열사를 팔라는 요구였다. 그렇지 않으면 STX그룹처럼 공중분해 될 수 있다고 경고를 받았다.

현 회장은  한 때 계열사를 팔지 않으려고 버티기도 했다. 10년 동안 현대의 정씨들로부터 지켜온 현대그룹이었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현대그룹에 정통한 한 인사는 “현 회장은 현대그룹 계열사를 내놓을 경우 현대차그룹이나 현대중공업 등에 넘어갈 수 있다는 데 대한 심리적 거부감도 컸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 회장은 결국 손을 들었다. 현 회장은 지난해 12월 계열사 매각 등을 통해 3.3조 원의 유동성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증권 등 금융3사도 매각하고 현대상선의 벌크 전용선부문 등 사업 일부도 팔고 현대엘리베이터 등의 유상증자를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났다. 현 회장은 산업은행으로부터 구조조정을 모범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기업으로 꼽힌다.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계열사 매각을 지연했던 동부그룹과 더욱 대비됐다.

부산 신항만 터미널을 3천억 원에 팔고 현대상선 LNG 사업부문을 4천억 원에 매각했다.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로 1800억 원을 모았다. 애초 기업공개를 계획했던 현대로지스틱스도 지분을 매각해 3천억 원 정도를 마련할 길을 확보했다.

현대그룹은 이런저런 자구책 이행을 통해 2조 원 가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3조 원 이상의 유동성 확보에 미치지 못하지만 ‘구조조정 모범생’이라는 말을 들을 만하다.

문제는 미래다. 업계에서 현대그룹을 놓고 "올해 이래저래 구조조정에 성공해도 내년 이후 상황이 어찌될지는 미지수"라는 전망이 나온다. 심지어 최악의 경우 동양그룹이나 STX그룹처럼 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는 의견도 내놓는다. 그렇지 않더라도 LIG그룹처럼 계열사 몇개를 거느린 미니그룹이 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이런 우려의 근거는 해운업 불황이다. 현대그룹을 받치고 있는 주력은 현대상선인데 해운시장의 불황이 너무 깊기 때문이다.

김봉균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현대상선은 노선 및 선대 합리화, 적극적 운임인상 노력 등을 통해 운항효율성 제고를 도모하고 있지만 단기간 내 수익구조의 구조적 개선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평가했다. 현대상선이 지난 10년간 평균치인 1.8%대의 영업이익률을 앞으로 기록해야 그나마 현대상선 이자비용(금융비용) 충당이 가능하다고 본다.

현대그룹의 신용등급이 떨어져 앞으로 자금조달이 쉽지 않게 된 점도 현대그룹에 대해 어두운 전망을 내놓게 한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3월 현대그룹 핵심 계열사인 현대상선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투기등급 직전인 BBB-로 하향조정했다. 한국신용평가는 현대상선을 투기등급인 BB+로 더 낮췄다. 한국신용평가는 또 현대엘리베이터, 현대로지스틱스의 신용등급도 세 단계나 낮은 투기등급 'BB+'로 강등했다.


  현정은의 가시밭길 끝이 없다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2월 경남 거제도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열린 명명식에 대모로 참석해 1만3천1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현대드림’호라고 이름 지었다. <뉴시스>

◆ CEO 현정은에 대한 엇갈린 평가

현 회장은 2003년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경영권을 둘러싼 범현대가의 두 차례 위협을 성공적으로 방어해 냈다. 또 남북 경협사업이 존폐위기에 빠진 와중에서도 대북사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이를 놓고 현 회장이 상당히 뚝심있는 경영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으로 대북사업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을 때 북한에서 체류를 5번이나 연장시키면서 김정일 위원장과 만나 '금강산 관광재개' 등의 합의를 끌어낸 것은 특유의 결단력과 뚝심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는 것이다.


물론 부정적 평가도 있다. 현대그룹이 맞고 있는 유동성 위기를 현 회장의 경영권 방어에 대한 욕심 탓으로 보는 시각이 강하다. 현 회장이 범현대가에 맞서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무리하다가 현대그룹을 유동성 위기에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가령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상선 경영권 방어를 위한 파생상품 계약을 맺은 이후 현대상선 주가 하락으로 입은 손실이 7천억 원에 육박한다.

그래도 현 회장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여성기업인으로 주목을 받았다. 현 회장은 2008, 2009년 연속으로 미국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들었으며 2011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세계 50대 여성 기업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 회장은 현대그룹의 국제적 사업범위 확장에 큰 공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 정씨 일가의 경영권 위협에 맞선 현정은

현 회장은 현대그룹을 맡고 나서 크게 두 차례에 걸쳐 정씨 일가의 공격으로부터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지켜냈다.

먼저 현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한 이는 정상영 KCC 회장이었다. 현 회장이 취임한지 한 달도 못되어 KCC는 2003년 1월 현대그룹을 공식적으로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정상영 회장은 “지금까지 정상영 회장과 KCC계열사가 현대그룹 지주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31.25%를 확보했고 정씨 일가의 우호지분과 다른 현대그룹 계열사의 지분까지 합하면 전체지분이 50%를 넘는다”고 밝혔다. 정상영 회장이 현대그룹의 제 1대 주주가 되면서 26.03%의 지분만을 보유하고 있던 현 회장의 경영권을 위협했다.

정 회장은 정씨가 아닌 현씨가 현대그룹 회장을 맡는다는 데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정상영 회장은 정주영 회장의 7형제 중 막내 동생으로 평소에도 현대그룹은 정씨 일가가 지켜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현 회장은 이때 ‘엘리베이터의 국민기업화’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국민기업화란 국민들을 대상으로 주식을 공모해 기업의 주인이 특정인으로 정해지지 않도록 해 KCC그룹이 현대그룹을 계열화시킬 수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방안은 실현되지 않았지만 여론을 현 회장 편으로 돌려놓았다.

현 회장은 이어 KCC그룹이 ‘5% 룰’을 어겼다고 공격했고 KCC가 현대엘리베이터의 20.7% 지분 전량을 처분하도록 했다. 그리고 주주총회에서 표대결을 벌여 현 회장은 경영권을 방어했다. 5% 룰은 상장법인의 주식을 5% 이상 보유하게 될 경우 5일 이내에 주식의 보유상황과 보유목적을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에 보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 회장은 그 뒤 시동생인 ‘정몽준 의원’으로부터 경영권을 위협받았다.

2006년 4월 정몽준 의원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이 우호지분을 포함해 현대상선의 지분을 39.6%를 보유하면서 경영권을 위협했다. 당시 현 회장은 우호지분을 포함해 40%을 약간 넘게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자 현 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를 통한 현대상선 지분 매입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넥스젠’이란 파생상품 회사와 계약을 맺고 현대상선 주식 600만 주에 대한 스왑거래를 체결했다. 이 거래로 넥스젠으로부터 최대 4.5%의 현대상선 지분을 넘겨받아 여유있게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현대엘리베이터를 이용한 경영권 방어는 현대상선의 수익악화가 그대로 현대엘리베이터가 손실로 떠안는 결과를 빚어 두고두고 현 회장의 발목을 잡게 된다.

◆ 30년 주부에서 현대그룹 회장으로

현 회장은 이화여자대학교 4학년일 때 정주영 명예회장에 눈에 들어 정몽헌 회장의 배필로 낙점됐다. 현 회장은 21세에 시집와 30년 가까이 살림만 해왔다.

그러다 정몽헌 회장이 자살로 삶을 마감하자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현 회장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석사까지 공부하고 남편과 함께 유학을 떠나 미국 페어리디킨슨 대에서 인성개발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결혼 후에도 한국걸스카우트연맹, 대한여학사협회, 대한적십자사 등 여러 단체에서 활동했지만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현 회장은 회장 취임과 관련해 “당시에 경영권 분쟁으로 상황이 너무 다급해 두려워할 겨를조차 없었다”고 뒷날 밝혔다. 현 회장에게 남편의 희생이 헛되지 않고 남편이 못다한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전부였다.

정몽헌 회장이 타계한 지 얼마 안돼 정상영 KCC 회장이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위협하자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회장을 맡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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