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준호 기자 junokong@businesspost.co.kr2021-07-22 15: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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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하나은행장에게 정기예금 가입 상담을 받고 권광석 우리은행장에게 은퇴 뒤 자산관리는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물어볼 수 있는 날이 올까?
현실 은행 영업점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지만 메타버스의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 권광석 우리은행장이 13일 메타버스 플랫폼에 '전광석화' 라는 닉네임으로 접속해 MZ세대 직원들과 직접 셀프 카메라를 찍고 있다. <우리은행>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금융지주 계열 은행들을 중심으로 '메타버스' 실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가상세계를 통해 실제와 같은 금융서비스를 내놓는다는 것이 은행들의 궁극적 목표지만 아직까지 실질적으로 영업활동에 나선 곳은 없다.
고객을 대상으로 기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요소뿐 아니라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재 금융회사들이 메타버스 구축에 열을 올리는 것은 MZ세대 선점과 마케팅효과 등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주요 은행들은 메타버스를 새로 구축하고 나섰다. 아직 대고객서비스보다는 메타버스를 활용한 회의와 행사 등 내부소통에 활용이 국한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최근 직원들의 메타버스 활용과 경험 확산을 위해 게더 플랫폼을 활용한 가상세계 'KB금융타운'을 열었다.
8일에는 테크그룹 임원들과 부서장들이 참여하는 경영진 회의와 외부업체와의 기술미팅 등을 KB금융타운에서 진행했다.
KB국민은행은 향후 로블록스 플랫폼이나 가상현실기기를 활용한 가상금융 체험관을 통해 금융콘텐츠를 제공하는 실험을 진행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나은행은 13일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를 통해 실제 존재하는 연수원 '하나글로벌캠퍼스'를 재현하고 개장 행사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박성호 하나은행장도 아바타 '라울'로 참석해 "새로운 시도와 도전이 하나은행 곳곳에서 계속될 수 있도록 주변 MZ세대들의 목소리를 응원해달라"고 당부했다.
같은날 권광석 우리은행장도 '메타버스 타고 만나는 WOORI-MZ' 행사에 참여해 MZ세대 직원들과 만났다. 권 은행장은 자신이 만든 캐릭터에 '전광석화'라는 닉네임을 붙였다.
권 은행장은 이 자리에서 "MZ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메타버스는 새로운 기회의 영역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그룹 차원에서 메타버스 실험이 진행 중이다. 최근 디지털계열사 신한DS는 메타버스 플랫폼에 ‘신한DS 월드’ 공간을 조성했으며 제주은행은 상반기 뛰어난 실적을 거둔 직원들을 포상하는 '업적평가대회 시상식'을 제페토에서 진행했다.
21일에는 신한카드가 제페토를 운영하는 네이버제트와 업무 협약을 통해 Z세대 맞춤형 선불카드를 출시하고 제페토 안 가상공간 구축에 나섰다.
이날 진행된 제페토에서 진행된 업무협약식에는 임영진 신한카드 대표이사 사장과 네이버제트 김대욱 대표가 각각 아바타로 등장해 손을 맞잡는 모습을 연출했다.
금융권 메타버스 실험의 장기적 목표는 가상세계를 통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인터넷뱅킹과 폰뱅킹이 현실 영업점을 대체하고 있는 것처럼 미래에 메타버스가 새로운 영업채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특히 코로나19로 디지털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실물점포가 가파르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비대면 영업채널에서 선보이고 있는 인공지능 챗봇서비스 수준으로는 한계가 많기 때문이다. 메타버스를 활용한 미래 디지털채널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금융회사들이 발빠르게 나서고 있는 이유다.
다만 메타버스의 세계에서도 은행장이 고객에게 실질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은 당장은 실현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술적 문제뿐 아니라 제도적 개선 등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메타버스에서 실제 고객을 대상으로 한 영업을 펼치기 위해서는 기술적 부분뿐 아니라 관련 법률 개정 등 제도적 부분까지 손봐야 한다"며 "현재는 새로운 채널로서 가능성을 기술적으로 실험하고 있는 단계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메타버스 영업과 관련한 제도적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만큼 금융회사들은 대출이나 금융상품 판매보다는 세미나 등 소통 중심으로 대고객 접점을 넓혀갈 것으로 예상된다.
21일 SC제일은행은 국내 최초로 메타버스를 활용해 디지털 자산관리 세미나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핀크 CEO와 스티브 브라이스 SC그룹 투자전략 총괄도 아바타의 모습으로 참여했다.
메타버스 이용자 가운데 MZ세대 비율이 압도적이라는 점도 금융회사들이 발벗고 나서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메타버스에 등장한 은행장들이 한 목소리로 'MZ세대'를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젊은' 플랫폼을 미리 익혀 잠재적 미래고객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네이버에 따르면 현재 제페토의 글로벌 가입자 수는 약 2억 명으로 이 가운데 80% 이상이 10대다. [비즈니스포스트 공준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