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묵 삼성생명 대표이사 사장이 즉시연금보험 소송에서 져 대규모 충당금 적립에 따른 실적 감소라는 부담을 안게 됐다.
고객과 오랜 법적 공방에 따른 브랜드 이미지 하락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21일 삼성생명은 4300억 원이 걸린 즉시연금보험 소송에서 패소했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판결문을 받아본 뒤 내용을 검토하고 이에 따라 대응방안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25부는 21일 삼성생명 즉시연금 가입자 57명이 삼성생명을 상대로 낸 즉시연금보험 미지급금 반환 청구소송 1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2018년 10월 소송이 시작된 지 2년9개월 만에 판결이 나온 것인데 삼성생명은 즉각 항소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NH농협생명이 관련 소송에서 승소하기도 한 만큼 삼성생명이 1심에서 패소한 뒤 곧바로 보험금을 지급한다면
전영묵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배임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미래에셋생명 동양생명 교보생명 등 삼성생명보다 앞서 즉시연금보험 소송에서 패소한 보험사들도 항소했다.
전 사장은 우선 충당금 적립에 따른 삼성생명 실적 감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즉시연금보험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항소심에 이어 대법원까지 이어질 수 있는 점에서 당장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1심에서 패소한 만큼 최종 결론을 대비해 충당금을 적립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한화생명 미래에셋생명 동양생명 KB생명 등 즉시연금보험 소송에서 패소했거나 선고를 앞둔 보험사들이 지난해 충당금을 쌓은 것과 달리 삼성생명은 충당금을 적립하지 않았다.
삼성생명은 즉시연금보험 가입자의 일부가 소송을 제기했지만 소송결과에 따라 모든 가입자에게 미지급금을 지급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이에 충당금 적립규모는 최대 43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삼성생명은 1분기 삼성전자로부터 받은 특별배당금을 제외한 순이익 4406억 원과 충당금으로 적립해야 하는 금액이 비슷한 만큼 연간 실적 전망치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더욱이 삼성생명은 주주친화정책의 일환으로 2023년까지 배당성향을 50%까지 끌어올리기로 한 상황에서 충당금 적립에 따른 실적 감소는 전 사장으로서 아쉬울 수 있는 부분이다.
전 사장은 보험금 지급이 까다롭고 고객과 법적 분쟁이 잦다는 삼성생명 이미지를 개선하기도 쉽지 않게 됐다.
삼성생명은 즉시연금 분쟁 이외에도 요양병원 입원 암보험금 지급을 놓고 암환자 모임과 오랜 갈등을 겪다 최근 합의를 한 바 있다.
합의 이전 삼성생명은 요양병원 암 입원비를 지급하라며 암환자모임 대표가 제기한 소송으로 오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최종적으로 승소하기는 했지만 고객과 분쟁에서 이겨 '상처뿐인 영광'이란 평가를 받았다.
전 사장으로서는 고객과 상생을 강조하며 삼성생명 브랜드 평판을 높이는 데 공을 들이고 있는 만큼 법적 분쟁은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전 사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소비자 권익을 되찾아 주기 위한 제도와 시스템을 강화하고 혁신적 상품과 새로운 서비스로 고객 가치를 창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즉시연금보험은 가입자가 목돈을 맡긴 뒤 연금 형식으로 달마다 보험금을 받는 상품이다.
즉시연금 관련 분쟁은 2017년 삼성생명 즉시연금 가입자가 달마다 받는 연금수령액이 예상했던 지급액보다 적다며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보험사들은 보험료에서 사업비 등을 공제하고 만기 때 원금을 돌려주기 위해 환급재원(책임준비금)을 쌓았는데 이를 약관에 명확히 기재하지 않아 과소지급 논란이 벌어졌다.
당시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도 만기보험금 지급재원 공제와 관련해 구체적 설명이 약관에 없다며 보험사들에게 보험금을 더 지급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삼성생명 이사회는 2018년 7월 이사회를 열고 상속만기형 즉시연금상품의 안건을 놓고 법원의 판단에 따르기로 결정했다. 법적으로 다툴 여지가 크고 지급할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금융소비자연맹이 가입자들을 모아 △미래에셋생명 △동양생명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KB생명 등을 대상으로 공동소송을 진행했다.
금융감독원이 2018년 파악한 즉시연금 미지급 분쟁규모는 가입자 16만 명, 보험금은 8천억∼1조 원이다. 이 가운데 삼성생명이 5만5천 명에 4300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이 850억 원과 700억 원으로 뒤를 이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남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