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준석 국민의힘 신임 대표가 2021년 6월14일 오전 대전 유성구 갑동 국립 대전현충원 천안함 46용사 묘역에서 분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
△보수의 변화 기조 유지와 조직문화 개선 추진
이준석은 국민의힘 대표에 선출된 뒤 당을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힘쓰고 있다. 기존의 관행을 벗어나는 모습을 자주 보이고 있다.
세대교체를 비롯한 변화를 바라는 민심에 힘입어 젊은 나이에 당대표에 오른 만큼 기존 보수정당의 과오를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면모를 보이는 데 주력하는 것으로 보인다.
앞서 국민의힘을 이끌었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체제의 방침도 상당 부분 유지하고 있다.
이준석은 2021년 6월14일 당대표에 오르자마자 취임 첫 일정으로 대전현충원을 찾았다. 일반적으로 정치권의 취임 뒤 첫 방문지는 서울현충원인데 관행을 따르지 않은 셈이다.
여기서 이준석은 2010년 천안함·연평도 포격에서 희생된 장병의 넋을 기리며 보수의 전통 가치인 안보를 강조하는 행보를 했다.
친호남 행보에도 힘을 쏟는다.
이준석은 2021년 6월1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앞으로 국민의힘은 호남에 일자리와 산업인프라 확충에 관한 구체적 메시지를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에서 시작된 호남을 향한 노력은 결코 우리의 잘못된 과거의 반성에 그쳐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다음날인 6월18일 전북 군산과 전주의 자동차공장 등을 찾았다.
경직된 당의 조직문화를 바꾸는 일도 진행하고 있다. 당 대변인을 뽑는 데 경연 방식을 도입해 공개 오디션을 진행했다. 2003년 출생부터 1942년 출생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했고 다양한 직업과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 대변인에 도전하며 여론의 관심을 받았다.
△국민의힘 대표로 선출
이준석은 2021년 6월11일 국민의힘 대표에 선출되며 헌정 사상 처음으로 30대로서 국회 교섭단체 대표가 됐다. 집권여당과 제1야당을 통틀어 30대 당대표는 이준석이 처음이다.
이준석은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낙선한 뒤에도 꾸준히 방송활동을 하며 주요 정치사안에 목소리를 내며 인지도를 키웠다.
2021년 4월 열린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선거대책위원회 뉴미디어본부장을 맡아
오세훈 후보의 당선에 기여하기도 했다.
이준석은 2021년 5월2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당대표 출마 의사를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당대표가 되고 싶다. 그래서 대통령선거에서 멋지게 승리해 보이고 싶다”며 “우리 당에 쏟아질 무수한 젊은 생각들, 그들과 힘을 합쳐 꼭 구현해 내겠다”고 말했다.
처음 이준석이 당대표 출마 의사를 밝혔을 때만 해도 그의 당선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당원들의 의사가 많이 반영되는 경선 규칙 아래 진행되기에
나경원, 주호영 후보와 같은 중진 정치인들이 유리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그런데 이준석은 곧바로 여론조사에서
나경원 후보와 박빙인 것으로 나타났고 점차 이준석이 앞서나가더니 이내 그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2021년 6월11일 전당대회 결과를 보면 이준석은 43.8%를 득표해 1위로 당대표에 올랐다.
이준석은 당대표 수락연설을 통해 “다양한 대선주자와 그 지지자들과 공존할 수 있는 당을 만들겠다”며 “상대가 낮게 가면 더 높게 가고 상대가 높다면 더 높아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경쟁원칙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 ▲ 이준석 국민의힘 새 대표가 2021년 6월11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선출된 뒤 당기를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
△제3정당 정치와 보수 재통합
‘박근혜 사태’이후 이준석은 한동안 양대 정당이 아닌 제3정당에 머물며 정치활동을 했다.
2016년 12월 새누리당에서 탈당한 30명이 국회 교섭단체를 결성한 뒤 창당 절차를 거쳐 2017년 1월 바른정당이 탄생했다. 이준석도 여기 합류했고 2020년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보수통합이 이뤄지기 전까지 제3정당에 머물게 됐다.
이준석은 바른정당에서 청년 최고위원으로 일했고
유승민 전 의원이 제19대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자 유 전 의원을 도왔다. 유 전 의원은 19대 대선에서 6.76% 득표율로 4위에 머물렀다.
바른정당은 대선이 끝난 뒤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과 통합을 추진했고 2018년 2월 두 당의 통합으로 바른미래당이 결성됐다. 이준석 역시 자동적으로 바른미래당의 일원이 됐다.
이준석은 2018년 6월 지방선거 때 안철수 대표가 서울시장후보로 출마하며 공석이 된 서울 노원구병에 예비후보로 출마했다. 이곳은 이준석이 새누리당 시절부터 당협위원장을 맡았고 제20대 총선 때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던 지역구다.
하지만 이때 공천이 보류됐는데 안 대표가 이준석의 공천을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참 뒤 이준석은 결국 공천을 받았지만 이 일은 이준석과 안 대표 사이를 멀어지게 된 원인의 하나로 꼽힌다.
당시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대부분 지역에서 선전했고 이준석도 노원구청장 출신 김성환 후보와 대결에서 고배를 마셨다.
이준석뿐 아니라 바른미래당 전체가 지방선거에서 패배했는데 이 때문에
유승민·박주선 공동대표가 책임을 지고 사퇴했고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를 선출하게 됐다.
이때 이준석도 전당대회에 출마했고 36.92%를 득표해 3위로 최고위원에 올랐다. 당시 손학규 전 대표(54.04%)가 1위로 당대표에 올랐고 2위 하태경 의원(45.72%)는 이준석과 함께 최고위원이 됐다.
권은희 의원는 13.7%를 얻어 6위를 했으나 여성 몫으로 최고위원에 선출됐다.
하지만 바른미래당에는 이준석을 비롯한 바른정당 출신뿐 아니라 안철수계, 손학규계가 섞여 있었던 탓에 잡음도 적지 않았다. 2019년 선거법·공수처법 패스트트랙 사태와 관련해 바른정당계는 손학규 대표의 방침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서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결국 이준석을 비롯한 바른정당계는 2020년 1월 들어 제21대 총선을 몇 달 앞두고 바른미래당을 탈당했고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하기에 이른다. 이후 보수통합이 추진되며 새로운보수당이 자유한국당(새누리당 후신)과 통합해 미래통합당을 결성했고 이준석도 자연스럽게 친정으로 되돌아왔다. 이준석은 미래통합당 최고위원을 맡았다.
제21대 총선에서 직전에 출마했던 서울 노원구병에 미래통합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김성환 민주당 후보와 벌인 두 번째 대결에서 다시 패배했다.
| ▲ 이준석 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최고위원이 2021년 5월20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박근혜 키즈’로 정치 입문
이준석은 2011년 박근혜 전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발탁돼 정치를 시작했고 곧바로 새누리당(한나라당 후신) 비상대책위 위원을 맡으며 일약 당 지도부 일원이 됐다.
20대에 당 지도부에 오르며 ‘박근혜 키즈’로 불렸다.
2014년 새누리당에서 ‘새누리당을 바꾸는 혁신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준석은 JTBC ‘썰전’에 출연하는 등 방송활동을 이어갔다.
젊은 나이에 박 전 대통령에게 발탁됐을 뿐 아니라 방송활동도 많이 했기 때문에 인지도도 높일 수 있었다.
이준석은 새누리당 서울 노원구병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을 맡았고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노원구병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비록 박근혜 키즈로 정치를 시작했지만 박 전 대통령과 얽힌 국정농단 사태 이후로는 박 전 대통령이나 ‘친박근혜’와는 결별했다. 이준석은 새누리당 안에서 박 전 대통령의 퇴진을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던 사람 가운데 하나다.
결국 새누리당을 탈당해 2017년
유승민 전 의원 등이 창당한 바른정당에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