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브로드밴드가 넷플릭스 등 해외 대형 콘텐츠사업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망 사용료 분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을까?
SK브로드밴드에게 넷플릭스와 벌이고 있는 망 사용료 관련 소송은 개별 기업으로부터 서비스 이용의 대가를 받아내는 것을 넘어서는 의미를 지닌다.
▲ 최진환 SK브로드밴드 대표이사 사장.
유선통신망 트래픽에서 동영상 콘텐츠가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콘텐츠시장의 큰손인 해외 온라인동영상 사업자들로부터 망 이용대가를 받지 못하면 결국 인터넷망 서비스를 제공하는 SK브로드밴드의 출혈만 커질 수밖에 없다.
24일 SK브로드밴드에 따르면 넷플릭스와 1년 넘게 진행해온 망 사용료 관련 소송의 1심 판결이 25일 오후 2시에 나온다.
아직 1심이기 때문에 이번 판결로 최종 결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SK브로드밴드 같은 국내 기간통신서비스사업자와 해외 콘텐츠사업자 사이 망 사용료 문제에 관한 법원의 태도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SK브로드밴드는 현재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넷플릭스 등 해외 온라인 동영상 사업자의 트래픽 증가에 따른 네트워크 증설 등 인터넷망 품질 관리와 유지에 관한 비용을 떠안고 있다.
앞으로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 아마존프라임비디오 등 많은 해외 온라인 동영상 사업자들이 속속 한국 서비스를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SK브로드밴드는 우선 넷플릭스와 망 사용료 분쟁에서 승기를 잡는 것은 중요하다.
SK브로드밴드는 2019년과 2020년 넷플릭스를 이용할 때 화질이 떨어진다는 인터넷 가입자들의 항의에 비용을 들여 넷플릭스 콘텐츠 서비스 등에 쓰이는 회선의 용량을 해마다 2~3배가량 증설해온 것으로 파악된다.
SK브로드밴드에 따르면 넷플릭스 관련 트래픽은 넷플릭스가 한국 시장에 진출한 3년 동안 30배가 넘게 증가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0년 4분기 기준 한국 하루 평균 인터넷 트래픽 점유율 자료를 봐도 넷플릭스가 발생시키는 트래픽은 전체의 4.8%로 구글(25.9%)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트래픽 양으로 5위권 안에 든 한국기업인 네이버(1.8%), 카카오(1.4%), 콘텐츠웨이브(1.2%) 등의 점유율을 모두 더한 것보다 높은 수치다.
넷플릭스가 서버를 두고 있는 일본과 한국의 SK브로드밴드 인터넷망 용량 변화에서도 넷플릭스 트래픽 증가세를 가늠해볼 수 있다.
SK브로드밴드의 한국과 일본을 잇는 인터넷망 용량은 2021년 5월 기준 900Gbps로 파악된다. 2018년 말만 해도 50Gbps 수준이었는데 2년 5개월여 사이에 급격하게 늘어났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인터넷 트래픽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은 수치로도 확인할 수 있고 특히 넷플릭스 등 글로벌 빅테크기업이 사업을 하면서 발생시키는 트래픽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 이를 처리하기 위한 선행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하지만 넷플릭스는 인터넷망 이용과 관련해 전혀 아무런 비용도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와 소송에서도 그들은 서버를 한국이 아닌 일본, 홍콩에 두고 있고 그쪽의 인터넷데이터센터에 접속료를 내고 있기 때문에 콘텐츠를 인터넷망을 통해 한국에 전송하는 데 드는 비용을 따로 낼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가 이번 소송 등을 통해 넷플릭스를 망 사용료 협상 테이블에 앉히지 못하면 한국 콘텐츠사업자들과 관계에서도 곤란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네이버, 카카오 등 한국 콘텐츠사업자들은 SK브로드밴드 등 통신사업자가 해외 콘텐츠사업자에게만 망 사용료를 받지 않는 것은 한국 사업자들을 역차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망 사용료를 내지 않는데 네이버, 카카오, 콘텐츠웨이브 등 국내 콘텐츠사업자들은 계약에 따라 인터넷 전용회선사용료와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서버에서 발생하는 트래픽 관리 비용 등으로 한 해 각각 수백억 원에 이르는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는 유선통신사업 매출의 약 30% 이상을 콘텐츠사업자로부터 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한국 콘텐츠사업자들까지 망 사용료를 못 내겠다고 나온다면 사업에 지장을 줄 가능성이 커진다.
SK브로드밴드가 인터넷서비스 사업도 하고 있지만 인터넷TV 등 사업으로 미디어콘텐츠시장에서 넷플릭스 등과 경쟁하고 있는 사업자라는 점에서도 망 사용료 문제는 간과할 수 없는 사안이다.
SK브로드밴드도 미디어콘텐츠시장 격전에서 살아남기 위해 콘텐츠분야를 비롯해 투자할 곳이 많다. 그런데 현재 상황은 경쟁자인 넷플릭스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서비스하기 위한 출혈도 SK브로드밴드가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넷플릭스는 서비스 품질을 위한 인터넷망 관리 비용을 지출하지 않고 콘텐츠 투자 등에만 집중할 수 있다.
SK브로드밴드는 앞서 2019년 11월 넷플릭스의 한국 이용자가 급격하게 늘어나 트래픽 부담이 증가했기 때문에 망 사용료를 내야 한다며 방송통신위원회에 관련 중재를 요청했다.
넷플릭스는 방통위 심의 결과 발표 직전인 2020년 4월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채무 부존재 확인의 소’를 제기하면서 사안을 법정으로 가져갔다.
SK브로드밴드가 요구하는 망 사용료라는 채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한 것이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가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겠다는 것은 택배회사에 택배비를 부담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내세우는 망 중립성 원칙도 인터넷망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어 차별을 금지하기 위한 것이지 망을 공짜로 사용하라는 취지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현재 미국과 프랑스 등에서는 통신사와 계약에 따라 망 사용료를 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