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SK텔레콤은 자사주 869만 주, 약 2조6천억 원 규모를 전격 소각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자사주의 90%가량을 처분하는 것이다.
SK텔레콤 인적분할 과정에서 일명 ‘자사주의 마법’같은 꼼수로 대주주 SK의 영향력만을 높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분할의 방식에는 인적분할과 물적분할이 있다. 인적분할은 기존 회사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분할법인의 주식을 나눈다.
이렇게 분할법인의 신주가 배정되는 과정에서 원래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에도 의결권이 되살아난다. 기업들이 인적분할 방식의 이런 점을 오너 등 대주주의 지배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비판이 거셌다.
SK텔레콤의 중간지주체제 전환도 비통신 성장사업 부각을 통한 기업가치 높이기보다는 SK텔레콤 자회사 SK하이닉스를 그룹 지주회사 SK의 손자회사에서 자회사로 끌어올리는 데 목적이 있다는 관측이 우세했다.
SK그룹의 ‘황금알’이자 주력 계열사인 SK하이닉스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SK의 직접적 영향력 아래 두기 위한 ‘지배구조 개편’이 진짜 목적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SK텔레콤은 자사주 비중도 발행주식의 12%가량으로 높은 편이다.
박 사장이 2017년 SK텔레콤 대표에 선임될 때 그룹 차원의 지배구조 개편 과제를 풀어낼 적임자라는 시선이 있었다.
박 사장은 앞서 2015년 SKC&C와 SK의 합병과정을 이끌어 최태원 회장이 지주회사 SK의 최대주주에 올라 그룹 지배력을 높이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합병 전 SK그룹은 최 회장이 지분 38%를 보유한 SKC&C를 통해 SK를 지배하는 ‘옥상옥’ 구조였다. 당시 최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은 0.02%에 불과했는데 SKC&C와 SK 합병 뒤 SK 지분 23.2%를 확보하게 됐다.
이런 점 때문에 SK텔레콤이 4월14일 통신사업회사와 중간지주사로 인적분할을 공식화하면서 중간지주사와 SK의 합병계획이 없다고 밝힌 뒤에도 여전히 시장의 관심은 SK와 합병 가능성이 집중돼왔다.
SK하이닉스를 비롯해 미디어, 보안, 커머스, 모빌리티 등 미래 잠재력이 높은 성장사업 자회사들을 거느리는 중간지주사가 결국 SK와 합병하면 SK 기업가치에만 좋은 일이 아니냐는 것이다.
신설 중간지주사가 SK와 합병이라는 불확실성을 안고 있는 한 시장에서 기업가치가 과도하게 저평가 받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김홍식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SK텔레콤이 시장에서 예상하는 대로 인적분할 뒤 투자회사와 SK 합병을 추진하는 방안을 강행하면 기업분할 과정에서 상당한 잡음이 발생함과 동시에 주주총회에서 분할안건 통과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고 바라봤다.
하지만 SK텔레콤은 이번 자사주 소각을 통해 시장과 주주들에게 기업가치 제고와 주주환원 정책을 향한 의지를 확인시켜준 것으로 보인다.
자사주 소각으로 SK와 합병 가능성을 차단한 셈이기 때문이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SK텔레콤이 자사주를 사실상 전량 소각하게 되면 추가 지배구조 개편작업 없이 통신사업회사와 중간지주사 체제를 유지할 것이다”고 말했다.
자사주 소각은 SK과 합병 가능성을 없애는 데다 SK텔레콤 주식가치도 높여 기존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능성을 낮추는 데도 보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주식매수청구권은 회사의 분할,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이 회사에 ‘내 주식’을 되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SK텔레콤은 현재 미디어콘텐츠, 모빌리티, 커머스 등 비통신분야의 치열한 시장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고 사업을 키워가기 위해 돈이 들어갈 곳이 많다. 4차산업혁명시대 빅테크기업으로 도약을 목표로 하고 있는 만큼 인공지능, 로봇 등 첨단기술분야 연구개발에도 힘을 실어야 한다.
박 사장은 4월14일 SK텔레콤 대표에 오른 뒤부터 숙원과제였던 중간지주사 전환을 공식화하면서 회사 내부행사를 통해 “지금까지 구성원들의 노력으로 잘 키워온 SK텔레콤의 자산을 온전히 평가받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시점”이라고 말했다.
박 사장은 올해 안에 통신사업회사와 투자업무를 담당할 중간지주사로 기업분할부터 신설법인인 중간지주사의 상장까지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뒀다. [비즈니스포스트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