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담배시장에서 던힐 신화를 쓴 김은지 BAT코리아 사장이 구원투수로 등판해 적자 탈출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선택은 한국시장에 특화된 캡슐형 가향담배를 앞세운 젊은층 공략이다.
BAT그룹은 연초담배시대를 종식하고 전자담배시대로 전환하려는 전략을 추진해 왔는데 김 사장은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BAT코리아 관계자는 31일 2월 내놓은 캡슐형 가향담배 켄트더블후레쉬제품의 시장 반응과 관련해 "폭발적 반응까지는 아니지만 기존 켄트 팬층을 중심으로 괜찮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BAT코리아는 2월 연초담배 브랜드인 켄트의 신제품을 내놓고 가향담배시장에 집중한다고 밝혔다.
이는 연소형(일반담배) 제품을 점진적으로 퇴출시켜 ‘탄소제로’ 목표를 달성한다는 비전을 제시했던 BAT그룹 방침과 배치되는 것이라 담배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BAT그룹은 2030년까지 비연소(전자담배) 제품 고객 5천만 명을 확보하고 제품 생산과 소비에 따른 탄소발생을 '제로(0)'로 줄인다는 비전을 추진하고 있었다.
이런 BAT그룹의 비전은 전자담배 '글로'에서 엿볼 수 있는데 경쟁사 제품들과 달리 글로는 독자적 가열방식을 사용해 유해물질 및 악취저감에 초점을 맞췄다.
실제로 글로 제품은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가장들이 많이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글로가 흡연자의 건강과 사회생활이라는 측면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의 첫 번째 목적인 스트레스 해소를 충분히 돕지 못한다는 데 있다.
글로의 국내 전자담배시장 점유율은 5~6%대에 그치고 있다.
흡연자들은 '예열시간이 길다'거나 '연기에서 옥수수 찐내가 난다' 등의 불만을 말하기도 한다.
BAT그룹이 '탄소제로'라는 큰 그림을 그리는 사이 BAT코리아는 주력시장인 연초담배시장에서 영향력을 잃고 있다.
한때 국내시장에서 던힐 브랜드를 앞세워 해외담배 브랜드 1위를 보이기도 했으나 현재는 점유율이 12% 수준으로 한국필립모리스(24%)에 큰 격차로 뒤쳐져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새로운 성장동력이 돼야 할 전자담배시장도 성장세가 정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자담배시장은 2010년부터 빠르게 성장했으나 2019년부터는 점유율이 전체 담배시장의 15%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BAT코리아는 2014년 이후 매출이 연평균 5%씩 하락하고 2018년부터는 2년 연속으로 영업수지 적자를 냈다.
BAT코리아는 2018년 영업손실 7억6천만 원, 2019년 영업손실 51억 원을 냈다. 2020년에는 실적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BAT코리아 경영진도 2016년 이후 1년에 1번 꼴로 바뀌면서 ‘BAT 경영진 잔혹사’를 이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김은지 BAT코리아 사장은 2020년 7월에 지휘봉을 이어받았다.
김 사장은 마케팅 전문가로 과거 던힐의 전성기를 이끈 장본인이다. 이후 BAT그룹의 인도네시아 브랜드 총괄로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줘 사장으로 승진했다.
김 사장은 가향담배시장에 올라타 BAT코리아의 부진을 씻으려고 한다.
그는 BAT코리아 생존을 위해서는 그룹의 전략을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한국시장에 맞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본다.
김 사장은 2020년 11월 취임 100일과 BAT코리아 30주년 기념 간담회에서 "일반담배와 위해성 저감제품 등의 최적화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성장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국내 가향담배시장의 전망은 밝다.
가향담배는 연초담배의 장점은 그대로 들고가면서 캡슐 등의 형태로 함유된 화학성분이 담배 특유의 악취를 잡아주고 기존 담배로는 구현할 수 없는 새로운 맛과 향을 제공하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전자담배가 연초담배의 악취와 건강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담배의 맛과 향을 포기한 선택지라면 가향담배는 악취문제를 해결하면서 담배의 맛과 향을 보장해준다는 점에서 젊은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특히 한국은 세계 가향담배시장 점유율 6.1%로 9위를 차지하고 있다.
시장 조사업체 닐슨에 따르면 한국 가향 및 캡슐 담배의 판매비중은 2015년 18.7%에서 2019년 38.4%로 2배 가량 높아졌고 가향담배시장의 약 80%를 KT&G가 차지하고 있다.
가향담배 규제가 심한 미국과 영국계 회사인 한국필립모리스와 BAT코리아가 가향담배에 소극적 모습을 보이는 틈을 노려 KT&G가 가향담배 신제품 출시에 적극 나선 덕분이다.
김 사장이 선택한 가향담배 브랜드는 과거 시대를 풍미했던 던힐 브랜드가 아닌 켄트였다.
담배업계에 따르면 던힐은 ‘아저씨 담배’ 취급을 받고 있어 새 주력 브랜드로 키우기엔 무리가 있다. BAT코리아는 던힐을 프리미엄 제품으로 키우되 켄트를 통해서 젊은 고객층을 넓혀가고 있다.
김 사장은 과거 켄트를 단종하고 ‘던힐시대’를 만든 인물인데 이번에는 반대로 ‘켄트시대’를 만들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