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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배수의 진을 치고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지분을 담보로 경영전면에 나서 그룹 정상화를 향해 건곤일척의 승부를 하고 있다. 올해 연말까지 그룹 정상화를 이뤄내지 못하면 경영권을 잃게 된다.
올해는 박 회장이 채권단과 약속한 금호아시아나그룹 워크아웃 마지막 해다. 박 회장은 2009년 채권단과 워크아웃 협약을 맺으면서 사재출연을 대가로 5년 동안의 경영권을 보장받았다.
박 회장은 올해 초 시무식에서 “금호타이어는 새롭게 태어나도록 하고 금호산업은 워크아웃을 반드시 졸업하자”고 밝혔다.
박 회장은 지난해 말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사인 금호산업 등기이사로 복귀했다. 그는 당시 무급경영을 선언했다. 올해 안에 금호산업을 정상화시키지 못하면 금호산업과 관련한 모든 지분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금호산업이 금호아시아나그룹 지주사인 점을 감안하면 이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경우 그룹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나야 한다.
박 회장은 지난 3월 시민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를 맡아 경영전면으로 돌아왔다. 2010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지 4년 만에 주요 계열사의 이사를 맡으며 마지막 승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박 회장에게 이제 남은 시간은 반 년이다. 그는 이 승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 박삼구 경영의 중간 성적표
현재 워크아웃에 들어간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두 곳이다. 간판인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간 상태다. 세 곳 모두 2009년 말부터 5년째 경영 정상화 절차를 밟고 있다.
그룹 지주사인 금호산업이 워크아웃을 졸업하려면 요건 가운데 세 가지 이상을 충족시켜야 한다. 채권단은 박 회장에게 자체 자금조달, 2년 연속 경상이익 실현, 2년 연속 경영목표 달성,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 자력추진 등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금호산업은 지난해 588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건설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올해 1분기에도 17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최근 분양시장이 살아날 조짐을 보이면서 워크아웃 졸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금호산업은 지난 21일 ‘길음역 금호어울림’ 청약신청을 받았는데 평균 2.2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조달청을 상대로 제기한 ‘인천도시철도 2호선 담합 부정당업자 제재 행정처분’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도 호재다. 금호산업은 지난달 25일 인천도시철도 2호선 입찰에서 담합한 사실이 드러나 2년 동안 모든 공공기관 입찰에 참여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지난달 말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효력정지 가처분결정을 받아 행정처분 취소소송 판결이 날 때까지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문제는 부채비율이다. 지난해 2분기 1만1876%나 되던 부채비율은 최근 많이 줄어들었지만 올 1분기 현재 840%로 여전히 높은 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분기 자본총계가 자본금을 넘어서면서 자본잠식을 해결한 것이다. 채권단은 지난해 8월 ‘금호산업 경영정상화 방안’을 내놓으면서 자본잠식률을 50% 이하로 낮추라고 요구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말 채권단 자율협약 졸업에 실패해 협약을 1년 더 연장했다. 채권단이 요구한 사항 가운데 영업이익 및 이자보상배율 등의 경영목표 달성과 부채비율 400% 이하를 달성하지 못한 탓이다.
지난해 아시아나항공은 2009년 이후 4년 만에 112억 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기업의 채무상환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이자보상배율은 -0.08%를 기록했다. 영업활동으로 번 돈보다 이자로 나가는 비용이 더 많다는 얘기다. 부채비율은 676%였다.
아시아나항공은 올 1분기 21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그나마 적자폭을 크게 줄였다. 손실규모가 전년동기의 10분의 1이다. 하지만 부채비율은 694%로 오히려 더 증가했다. 아시아나항공으로서 지난해 말 채권단과 자율협약기간을 연장하면서 부채비율요건을 600%로 상향조정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지주사인 금호산업에 대한 아시아나항공의 퍼주기식 지원이 올해도 이어질 경우 자율협약 졸업은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1월 금호산업이 보유한 금호아시아나플라자사이공(KAPS) 지분 50%를 721억 원에 샀다. KAPS는 당시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부실계열사였기 때문에 계열사 부당지원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밖에도 2009년 한 달간 금호산업의 기업어음(CP) 790억 원어치를 사들이는 등 지속적으로 모기업을 지원해왔다.
다만 2분기부터 실적이 개선될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도 나온다.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면서 유류비와 항공기 임차료 등 비용이 줄어들고 해외여행 수요가 늘어 매출과 영업이익이 증가할 것이라고 점쳐진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130억 원의 순이익이 늘어난다. 이에 반해 급유단가 비용은 157억 원 정도 줄어든다.
금호타이어는 올해 워크아웃을 졸업할 가능성이 높다. 금호타이어는 지난해 2년 연속 영업이익과 순이익 흑자 달성에 성공했다. 올 1분기에도 853억 원의 영업이익과 326억 원의 순이익을 냈다. 2009년 3635%에 달하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315%까지 떨어졌고 올 1분기 306%까지 떨어져 200% 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다만 변수는 남아있다. 워크아웃 졸업시기를 놓고 노사간 의견차이가 존재한다. 금호타이어 노조는 2009년 이후 5년째 워크아웃이 이어지면서 임금과 복지가 축소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늦어도 7월 안에 졸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회사는 무리하게 앞당기기보다 올 연말 채권단실사를 거쳐 졸업을 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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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5월 27일 프랑스 툴루즈에 위치한 에어버스 항공기 인도센터에서 열린 A380 1호기 인수행사에 참가했다. 왼쪽은 페브리스 브레지에 에어버스 CEO <뉴시스> |
◆ 박삼구, 경영복귀까지 걸린 4년의 시간
2009년 말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워크아웃 및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갔지만 금융당국과 채권단은 박 회장의 경영권을 최대 5년 동안 보장해주기로 약속했다. 다만 그룹을 위기로 내몬 책임을 물어 박 회장 일가에게 사재출연을 요구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10년 1월 초 인력과 조직을 축소하고 자산을 매각하는 내용을 담은 구조조정 방안을 내놨다. 고통분담 차원에서 그룹 사무직 직원의 경우 1개월 동안 무급휴직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금호산업 등 계열사는 해외자산과 보유지분 매각 등을 통해 총 1조3천억 원의 유동성을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룹 경영권을 두고 마찰을 겪었던 박삼구 회장과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분리경영도 확정됐다. 박삼구 회장은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금호타이어를 맡고 박찬구 회장은 금호석유화학을 맡기로 했다. 채권단 합의에 따라 두 사람을 서로가 보유하던 상대회사 지분을 처분하기로 했다. 분리경영이 정해지자 박찬구 회장은 2010년 3월15일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회장으로 복귀했다.
워크아웃 신청 이후 두문불출하던 박삼구 회장은 2010년 11월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박 회장이 박찬구 회장과 동반사퇴한지 15개월 만이었다. 그동안 박 회장을 대신해 경영을 맡았던 박찬법 회장이 건강을 이유로 물러난 상태라 회장 자리는 공석이었다. 박 회장은 다만 주요 계열사인 금호산업과 아시아나 등기이사로 복귀하지 않았다.
박 회장은 3년 안에 구조조정을 조기에 마무리하겠다며 2011년 말 대한통운을 CJ그룹에 매각했다. 금호산업이 갖고 있던 금호고속과 대우건설,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도 패키지로 IBK컨소시엄에 팔았다.
대한통운은 박 회장이 종합물류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며 2008년 인수한 기업이다. 금호고속은 금호아시아나의 기틀을 마련한 기업이란 점에서 의미가 컸다. 하지만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을 살리려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박 회장은 경영에 복귀하면서 “보다 먼 미래를 바라보고 조직 DNA 중 그룹 미래전략과 관계없는 부문은 과감히 정리하고 수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워크아웃 및 자율협약 조기졸업은 불가능했다. 채권단 평가를 앞둔 2012년 말 금호산업은 자본잠식률이 93.9%에 달하는 등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상태였다. 금호타이어와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비율도 각각 400%와 500%를 넘기며 졸업요건에 한참 못 미쳤다. 경영 정상화는 2014년 말이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박찬구 회장이 이끄는 금호석유화학은 2010년 당시 500%에 달하던 부채비율을 189%까지 낮춰 2012년 말 자율협약 졸업을 승인받았다.
박삼구 회장은 워크아웃 졸업 1년을 앞둔 지난해 11월 금호산업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2014년까지 경영 정상화를 달성하겠다며 연봉을 단 1원만 받겠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경영정상화에 실패하면 금호산업과 관련된 모든 지분을 내놓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지난 3월엔 아시아나항공 정기 주주종회에서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그동안 경영을 맡았던 윤영두 대표이사는 물러났고 김수천 사장이 새롭게 대표이사에 이름을 올렸다. 박 회장은 4년 만에 금호아시아나그룹 주요 계열사 대표이사에 모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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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지난 1월18일 금호건설 전략경영세미나에 참석해 "올해는 꼭 워크아웃을 졸업하자"고 연설하고 있다. |
◆ 박삼구의 무너진 글로벌 종합물류기업 꿈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창업주인 고 박인천 회장이 1946년에 세운 광주택시에서 출발한 대표적 호남계 기업이다. 금호라는 사명은 박인천 회장의 아호에서 따왔다.
지방 운수업체에서 시작한 금호아시아나는 건설과 항공, 화학, 타이어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90년대 중반 계열사 수를 32개까지 늘렸다. 금호아시아나는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을 때도 강력한 구조조정을 통해 극복했다.
금호아시아나는 2006년 자산 기준으로 재계 서열 11위 기업이었다. 2008년 재계 8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그랬던 금호아시아나는 2009년부터 5년째 경영정상화 절차를 밟고 있다. 재계 순위도 지난해 18위까지 떨어졌다.
금호아시아나가 현재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박 회장이 2006년과 2008년 두 차례 진행한 기업 인수합병이 결정적이었다.
박 회장은 2002년 9월 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겠다며 2006년 대우건설을 인수했다. 대우건설은 2000년 모기업인 대우그룹으로부터 분리돼 매물로 나온 상태였다. 박 회장은 한화그룹과 두산그룹 등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2006년 11월 대우건설 인수에 성공했다.
박 회장은 2008년 대한통운도 인수했다. 항공과 고속버스, 렌터카사업을 하고 있던 금호아시아나는 대한통운 인수로 택배사업까지 품으며 글로벌 종합물류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꿈을 꿨다.
박 회장이 금호아시아나를 재계 서열 8위까지 올렸지만 내실이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박 회장이 인수에 필요한 자금의 대부분을 외부차입을 통해 조달하는 등 무리하게 인수했다는 지적이었다.
특히 대우건설 인수가 가장 큰 위험요인으로 지목됐다. 대우건설 인수는 총 금액 6조4255억 원 중 금호아시아나그룹이 2조8946억 원을 조달하고 나머지 3조5309억 원은 차입을 통해 마련했다. 이 때문에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이자비용이 크게 늘어났고, 부채가 2006년 주요 계열사 총 자산규모의 50%에 이를 정도였다. 게다가 건설경기까지 나빠 급속히 유동성 위기에 몰렸다.
더 큰 문제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차입 당시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풋백옵션(매도 선택권)’이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대우건설 주가가 3만1500원을 밑돌면 이 가격에 투자자들이 보유한 주식을 되사주는 계약을 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유동성 위기설이 터진 2008년 7월 말 대우건설 주가는 1만3천 원대였다. 옵션 만기일인 2009년 12월까지 주가가 회복되지 않으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최대 4조1천억 원을 마련해야 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2008년 7월31일 고강도 자구책을 내놨다.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 대우건설 등 핵심 계열사의 자산을 매각해 총 4조5740억 원의 현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9년 6월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체결한 데 이어 같은달 28일 대우건설을 완전히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결국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2009년 12월30일 워크아웃(기업회생절차)을 신청했다. 다만 상대적으로 재무상태가 양호했던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은 주채권단과 함께 경영정상화 방안을 마련하는 자율협약을 맺기로 했다.
박 회장은 워크아웃과 자율협약 직후 채권단과 경영정상화 방안에 합의하고 금호타이어의 이사직만 유지한 채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등 주요 계열사의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