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겸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이 경영권 향방을 가를 정기 주주총회 표대결에서 승리할까?
그동안의 경영을 통해 관록을 입증해왔는데 여기에 의사결정구조를 개선하는 안건들을 더해 표심 잡기에 나서고 있다.
▲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대표이사 겸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 |
금호석유화학 경영권 다툼은
박찬구 회장의 ‘경영 관록’과 조카 박철완 상무의 ‘주주친화정책’ 구도로 정리된다고 11일 화학업계는 바라본다.
박 회장과 박 상무의 경영 지향점은 양자가 내놓은 2025년 금호석유화학 목표에서 차별점이 드러난다. 박 회장은 매출 9조 원을, 박 상무는 시가총액 20조 원을 각각 내걸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2020년 사업연도 정기 주주총회를 26일 연다.
이사진 선임안건과 배당안건 등 주주총회 상정이 예정된 안건 중 다수에서 박 회장의 의중이 담긴 회사 제시안과 박 상무의 주주제안이 대립하고 있어 표대결이 불가피하다.
금호석유화학 지분구조를 살펴보면 주주명부 폐쇄일인 2020년 12월31일 기준으로 박 회장(6.69%)과 아들 박준경 전무(7.17%), 딸 박주형 상무(0.82%)의 보유지분 합계는 14.68%다. 박 상무는 10%를 들고 있다.
국민연금과 소액주주도 각각 7.91%, 50.48%씩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박 회장 측과 박 상무 사이 지분율 차이가 5%도 채 되지 않는 만큼 결국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과 외국인투자자, 소액주주의 표심에 금호석유화학 경영권에 달린 셈이다.
경영성과 측면에서 박 상무와 비교해 박 회장이 주주들의 표심을 얻는 데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는 이견이 많지 않다.
이번 주총에서 승인받을 재무제표에 따르면 금호석유화학은 2020년 연결 영업이익 7422억 원을 거뒀다. 2018년의 5546억 원을 넘어선 역대 최대치다.
금호석유화학은 금호그룹에서 계열분리를 준비하던 2010년 초만 해도 영업이익 1500억 원 안팎을 오갔다. 박 회장은 금호석유화학의 NB라텍스와 페놀유도체 등 고부가 화학제품을 집중 육성하는 ‘한우물 전략’으로 뚜렷한 경영성과를 내고 있다.
박 회장은 관록의 강점에 금호석유화학 이사회의 투명성과 독립성 등 의사결정구조를 개선하는 방안을 더해 국민연금의 마음도 잡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박 상무는 금호석유화학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정관 변경안건을 주주총회에 상정해야 한다는 주주제안을 냈다. 이사회 안에 내부거래위원회와 보상위원회 등 감시기구를 신설하는 방안도 주주제안에 담았다.
박 회장은 이보다 더 공격적으로 이사회를 개편하겠다는 의지를 주주총회 상정안건에 담았다.
금호석유화학은 박 상무의 제안을 모두 수용하는 것을 넘어 이사회 안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위원회도 신설하겠다는 안건을 주주총회에 올리기로 했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ESG경영을 강화하는 것은 글로벌 추세에 발맞추기 위해 당연한 조치다”며 “박 상무의 주주제안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더욱 투명한 의사결정구조를 구축하는 방안을 이전부터 검토해 왔다”고 말했다.
이처럼 박 회장이 이사회 기능 강화에 신경을 쓰는 것을 두고 박 상무가 내세우는 주주친화정책의 득표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시선이 많다.
박 상무는 보통주 1주당 1만1천 원을 현금배당하는 안건을 이번 주주총회에 올렸다. 회사 상정안건인 보통주 1주당 4200원의 2배가 넘으며 2019년도 결산배당인 1500원과 비교하면 7배가 넘는다.
이를 두고 성장동력을 해치는 데도 표심만을 의식한 배당안건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하지만 석유화학업계 평균 배당성향을 고려하면 과도하다고 볼 수만도 없다는 시선도 있다.
박 상무의 배당제안을 바탕으로 산출한 금호석유화학의 2020년 연결 배당성향은 52.7%다. 2019년 석유화학업계 평균인 49.3%보다 소폭 높은 정도다.
반면 금호석유화학은 그동안 10% 안팎의 배당성향을 고수해왔다. 올해 배당성향을 대폭 확대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20% 수준에 그친다.
주주 친화정책에 민감한 소액주주나 외국인 투자자들은 박 상무의 제안에 마음이 움직일 가능성이 충분하다.
박 회장은 경영성과로 입증한 관록만으로 박 상무와의 표 대결에서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국민연금은 기관투자자들의 표심을 이끄는 경향성이 있다. 금호석유화학의 이번 주주총회를 앞두고도 ‘캐스팅 보트’로 떠오르고 있다.
다만 박 회장에게 국민연금은 경영권 적대세력에 가깝다.
국민연금은 박 회장이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던 2016년과 2019년에 열린 주주총회에서 박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건에 오너 리스크를 명분으로 반대표를 던졌다.
박 회장의 배임 재판은 2018년 12월 대법원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2심을 확정하면서 일단락됐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박 회장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점을 들어 이번 주주총회에서도 박 상무의 주주제안 쪽에 기울 가능성이 있다.
의결권자문사 서스틴베스트는 ‘2021년 3월 정기 주주총회 프리뷰’ 자료에서 “3월 주주총회는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열풍과 맞물려 국민연금 등 기관 투자자들의 관심이 ESG 중에서 지배구조 문제에 집중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박 회장도 국민연금을 포함한 기관투자자들을 포섭하는 데서 표 대결 승리의 길을 찾고 있다. 그가 내놓은 이사회 개선책을 국민연금이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열쇠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