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배터리 양극재회사 에코프로비엠과 엘앤에프가 증설을 서두르고 있다. 두 회사의 자금력 수준과 비교하면 상당히 공격적 투자다.
에코프로비엠과 엘앤에프는 고성능 배터리에 필요한 하이니켈 양극재(니켈 함량이 90% 이상인 양극재) 제조기술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 김병훈(왼쪽), 권우석 에코프로비엠 공동대표이사.
배터리 고성능화 추세를 타고 배터리소재시장에서 확실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증설로 승부수를 던지는 것으로 보인다.
21일 배터리업계에 따르면 에코프로비엠이 진행하는 배터리 양극재 5공장(CAM5)의 증설계획이 기존에 알려진 3만 톤을 넘어설 수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5공장의 증설이 건물 건설과 설비 설치를 동시에 하는 일반적 방식이 아니라 건물부터 짓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상황에 따라 설비를 나중에 더 들여놓더라도 일단 공간부터 먼저 확보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에코프로비엠 측에서도 추가 증설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에코프로비엠 관계자는 “증설규모는 양극재 수요에 달린 것이다”며 “고객사의 요청이 있다면 최초 투자계획보다 증설규모를 더 늘리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기차시장이 본격 개화하면서 배터리시장에서는 전기차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한 고성능화 바람이 불고 있다.
LG화학, SK이노베이션,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3사는 고밀도, 고출력의 하이니켈배터리를 시장 점유율 확대의 무기로 삼겠다는 전략을 내세워 배터리 고성능화를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꼭 필요한 것이 하이니켈 양극재다.
에코프로비엠은 하이니켈 양극재 기술력이 ‘독보적’이라고 평가받는다.
경쟁사들이 기술개발 초기에 니켈 함량 60~70% 수준의 양극재를 연구할 때 일찌감치 니켈 함량 80% 이상의 양극재 제조기술을 확보했다.
이런 기술력에 힘입어 글로벌 전기차배터리시장의 점유율 4위 회사인 삼성SDI와 6위 SK이노베이션을 주요 고객사로 뒀다.
두 고객사의 점유율 확대 의지가 에코프로비엠의 증설로 이어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에코프로비엠의 양극재 5공장은 SK이노베이션 수요만을 위한 공장으로 증설 투자금액은 885억 원이다. 이 투자만 해도 에코프로비엠의 2019년 말 기준 자기자본인 3702억 원의 23% 수준으로 규모가 작지 않다.
더 큰 투자도 있다. 에코프로비엠이 삼성SDI와 합작법인 에코프로이엠을 만들어 짓는 6공장(CAM6)은 두 회사가 함께 3644억 원을 들이고 있다.
두 공장의 증설이 끝나는 2023년이면 에코프로비엠의 양극재 생산능력은 올해 5만5천 톤에서 18만 톤까지 급증한다.
에코프로비엠이 앞서가던 하이니켈 양극재시장 경쟁에 엘앤에프도 새로운 방식으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엘앤에프는 3원계 양극재(니켈, 코발트, 망간을 조합해 만든 NCM양극재) 일변도의 배터리 양극재시장에 4원계 양극재(니켈, 코발트, 망간, 알루미늄을 조합해 만든 NCMA양극재)가 등장하는 기술 패러다임의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했다. 2017년부터 4원계 양극재의 연구개발을 시작해 제조기술을 확보했다.
▲ 허제홍 엘앤에프 대표이사.
전기차배터리시장 점유율 1위 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은 니켈 함량이 높은 4원계 배터리를 앞세워 경쟁자인 중국 CATL을 상대로 확실한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엘앤에프가 이 전략의 파트너로 선택됐다.
엘앤에프는 4원계 양극재 제조기술을 바탕으로 앞서 16일 LG에너지솔루션과 양극재 공급계약을 맺었다. 계약금액 1조4547억 원은 엘앤에프의 2019년 매출 3133억 원의 4.6배 수준이다.
이에 앞서 11월 엘앤에프는 2023년까지 대구에 양극재 생산공장을 짓는 데 2500억 원을 투자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공장이 완공되면 엘앤에프의 양극재 생산능력은 현재 3만 톤에서 8만 톤까지 늘어난다.
그런데 이 증설공장의 완공시점이 1년 반 앞당겨진 것으로 확인됐다. 양극재 공급시기를 앞당겨 달라는 LG에너지솔루션의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엘앤에프 관계자는 “증설계획의 마무리시점을 2023년 말에서 2022년 중순으로 1년 반 앞당기기로 했다”며 “고객사의 양극재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어 이에 대응하기 위해 증설에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현재 에코프로비엠과 엘앤에프가 하이니켈 양극재시장의 기술 트렌드를 선도하는 회사로 꼽힌다.
다만 이들의 실적은 아직 공격적 증설을 뒷받침할 수준이 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우려의 시선도 나온다.
올해 연결기준으로 두 회사 실적의 시장 전망치(컨센서스)는 에코프로비엠이 매출 8847억 원에 영업이익 602억 원, 엘앤에프는 매출 3818억 원에 영업이익 45억 원이다.
두 회사 모두 미래 성장 가능성을 지렛대(레버리지)로 삼아 공격적 증설에 나서는 셈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이들의 도전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전기차배터리 수요 증가에 따른 하이니켈 양극재시장의 중장기적 성장성을 고려하면 에코프로비엠은 2024년 매출이 4조 원에 이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준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엘앤에프는 2022년 증설이 끝나면 완전히 전기차배터리용 하이니켈 양극재회사로 거듭날 수 있다”며 엘앤에프의 2022년 매출 전망치를 기존 1조2천억 원에서 1조5천억 원으로 높여 잡았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