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응우옌 쑤언 푹 총리와 면담하고 있다. <삼성전자>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베트남에 반도체 생산기지를 구축할까?
베트남 정부의 요청이 간절한 데다 삼성전자의 투자 확대 필요성도 떠오르고 있어 베트남 반도체공장 설립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21일 베트남 언론 등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20일 베트남 정부청사에서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를 만나 반도체공장 투자를 요청받았다.
푹 총리는 베트남에 투자하면 천시(하늘의 때), 지리(땅의 이로움), 인화(사람의 화합)을 얻을 수 있다면서 삼성그룹이 베트남에 투자를 진행하는 과정에 동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특히 푹 총리는 삼성전자의 반도체공장 설립을 적극적으로 요청했다. 삼성전자의 주력사업인 모바일, 가전, 반도체 가운데 모바일과 가전공장이 베트남에 있다며 반도체공장을 투자해 베트남에서 전기·전자 공급망을 강화하길 희망했다.
푹 총리는 반도체 공장에 강력한 지원 의지를 보였다. 그는 “삼성전자가 하이테크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투자지역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베트남은 삼성전자에 최고로 유리한 여건을 마련해주겠다”고 말했다.
푹 총리는 이 부회장과 이번까지 모두 세 차례 만났는데 매번 반도체 투자 유치를 요청하고 있다. 법인세 면제를 약속하는 등 투자를 요청하는 태도도 적극적이고 간절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 부회장이 어떤 답변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사업지역 검토까지 언급한 푹 총리의 발언 내용을 봤을 때 적어도 투자 가능성을 놓고 베트남에서 품는 기대감은 낮지 않는 것으로 읽힌다.
푹 총리가 1년 전 방한해 베트남 반도체 투자를 요청했을 때만 해도 실제로 삼성전자가 베트남에 반도체공장을 세울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시각이 많았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반도체산업에서 인건비가 크게 중요하지 않은 데다 메모리반도체 공급과잉이 이어지고 있어 단기적으로 베트남에 삼성 반도체 생산기지가 세워질 가능성은 낮다”고 바라봤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경영환경이 빠르게 변하면서 베트남 투자환경도 달라졌다는 말이 나온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심화로 베트남이 새로운 글로벌 제조기지로 떠오르고 있는 점이 대표적이다.
코트라 베트남 하노이무역관에 따르면 베트남은 최근 무역분쟁과 코로나19 사태에서 ‘탈중국’ 대체지로 기대를 받고 있다. 애플 무선이어폰 에어팟 생산, 아마존 단말기 킨들과 스마트스피커 에코 생산 검토, 퀄컴 중국 공장 베트남 이전, 일본 15개 전자·자동차 기업 이전 등이 이뤄졌다.
당장 삼성전자만 해도 중국 스마트폰·TV 생산라인을 베트남으로 이전했고 LG전자 역시 스마트폰 생산라인을 베트남으로 옮겼다.
삼성전자가 유일한 해외 메모리반도체 생산기지를 중국 시안에 두고 있는 것은 중국 내 풍부한 수요와도 무관치 않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으로 화웨이에 반도체 공급이 차단되고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추진해 자체 반도체 생산을 확대하는 등 중국 수요의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다.
반면 주요기업을 유치한 베트남은 향후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투자대상으로 매력이 있다는 시선이 나온다. 특히 삼성전자의 최대 고객 애플이 베트남을 생산기지로 검토하고 있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글로벌시장 조사기관 테크나비오는 최근 보고서에서 베트남 반도체시장 규모가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연평균 19%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반도체업황이 격변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의 투자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대목도 주목된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의 초격차 유지와 시스템반도체 1위 도전 등 반도체산업 지배력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
최근 SK하이닉스는 인텔 메모리사업을 인수해 글로벌 낸드시장 2위로 삼성전자 추격에 나섰다. 이순학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 경쟁 강도가 높아져 삼성전자의 공격적 설비투자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바라봤다.
공급부족이 심화하고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역시 투자를 확대할 가능성이 떠오른다. 파운드리 1위인 TSMC는 3나노 공장에 이어 2나노 공장 건설 계획까지 구체화하고 있어 삼성전자도 설비투자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경민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TSMC와 차이를 좁히기 위해 선단공정 시설투자가 지속해서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