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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과 김대중의 '양김시대' 저물다

조은아 기자 euna@businesspost.co.kr 2015-11-22 16: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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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삼과 김대중의 '양김시대' 저물다  
▲ 김영삼(왼쪽)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

'양김 시대'로 대표되던 한 시대가 저물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88세로 22일 서거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김영삼 전 전 대통령까지 사망하면서 현대정치사에 한 획을 그었던 ‘양김시대’의 주역들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두 전 대통령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손을 맞잡은 동지였지만 영원한 맞수이기도 했다. 이희호 여사는 두 사람에 대해 ‘물과 기름’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스스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관계를 “가장 오랜 경쟁관계이고 협력관계”라며 “세계에서 유례없는 특수한 관계”라고 말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 직전 병상에 누워있을 때 병문안한 자리였다.

◆ 함께 민주화 이끈 동지이자 영원한 맞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영남권을 대표하는 민주화의 리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호남권의 정치거물로 각각 민주화의 토대를 구축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54년 자유당 공천을 받아 25세에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는 최연소 국회의원 기록이다.

하지만 1년도 채 되지 않은 1955년 4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하며 자유당을 탈당했다. 그 뒤 야당인 민주당 창당발기인으로 나섰다.

김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 시절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존재로 통했다.

두 사람은 한국야당의 대표 정치인으로 중대한 정치적 고비마다 협력과 경쟁을 이어갔다. 1970~1980년대 군사정권시절 반독재 투쟁을 국내외에서 이끌었고, 역사상 최초로 여야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뤄내기도 했다.

두 사람은 25여 년 동안 모두 4차례 정면대결을 펼쳤다.

1968년 신민당 원내총무 경선을 시작으로 1970년 대선후보 경선, 1987년과 1992년 대선에서 맞붙었다.

첫 번째 대결이던 신민당 원내총무 경선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승리였다.

그 뒤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선에서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다시 한 번 맞붙었다.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고배를 마셨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후보수락 연설문까지 작성해 놓았을 정도로 압승을 예상했지만 역전당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대중의 승리가 곧 나의 승리”라고 결과에 승복했고 그 뒤 유신반대 투쟁도 함께 나섰다.

두 사람은 1980년 신군부의 탄압을 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석방돼 미국으로 망명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가택연금을 당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3년 민주화를 요구하며 23일 동안 단식투쟁을 벌였다. 당시 “나의 투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겨우 시작을 알렸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 뒤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1983년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했고, 1987년 통일민주당을 창당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1987년 6월 항쟁을 이끈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했다.

두 사람은 함께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1987년 대선에서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대선에서 패배했다.

당시의 패배로 민정당 정권이 다시 집권하면서 군사정부가 연장되자 야권에 큰 상처를 남겼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뒤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당시의 일에 대해 “천추의 한”이라고 표현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자서전에서 “나라도 양보를 했어야 했다”며 “너무도 후회스럽다”고 밝혔다.

  김영삼과 김대중의 '양김시대' 저물다  
▲ 1992년 6월12일 민자당 김영삼(가운데), 민주당 김대중(오른쪽), 국민당 정주영(왼쪽) 대표 등 3당 대통령 후보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회담을 갖기에 앞서 밝은 표정으로 악수하고 있다.

◆ 3당합당으로 돌아올수 없는 강 건너


그러나 두 사람은 그 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88년 13대 총선에서 통일민주당이 3당으로 전락하자 1990년 1월 당시 여당인 민자당과 김종필 총재가 이끌던 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결정했다.

김 전 대통령은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그 뒤 집권당이던 민자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됐고 1992년 대선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숙명의 대결을 벌여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 뒤 두 사람은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먼저 눈을 감기까지 22년 동안 반목의 세월을 보냈다.

두 사람이 모두 대통령직을 마친 뒤에도 불편한 관계는 이어졌다. 서로를 공개석상에서 배신자로 불렀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자 이를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두 사람이 화해한 건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죽음을 눈앞에 뒀을 때다.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재진들에게 “이제 화해한 것으로 봐도 좋다”며 “그럴 때가 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민주화를 이뤄냈다는 공헌에도 불구하고 영남과 호남의 지역분열과 보스 중심의 정치, 계파갈등 등 한국정치의 고질적 병폐도 키웠다는 비판도 받는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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