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의 ‘여성’들이 그룹 계열사 가운데 광고회사를 차지하는 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여성 특유의 감수성과 꼼꼼함이 광고회사에 적합하다는 점도 있지만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한다. 광고업이 사람 중심의 일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적은 투자를 해도 되는 데다 계열사의 일감으로 손쉽게 현금장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서현 제일기획 사장과 정성이 이노션 고문이 광고회사를 차지한 대표사례다. 상암커뮤니케이션즈의 박현주 부회장과 농심기획의 신현주 부회장도 사정은 비슷하다.
상암커뮤니케이션은 대상그룹 계열이고 농심기획은 농심그룹 계열이다. 두 회사 모두 30위권 안에 들어가는 광고대행사다.
◆ 실적 내기 쉽고 전문성 필요 없어
우리나라 재벌들은 대부분 계열사로 광고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제일기획(삼성), 이노션(현대), HS애드(LG), 대홍기획(롯데) 등 취급액 기준 상위 10위권 안에 있는 광고회사들이 대부분 재벌의 계열사들이다.
재벌이 광고회사에 진출한 이유는 몇 가지 특징에서 비롯된다.
표면적 이유는 ‘정보’다. 광고회사는 기업의 영업기밀이나 마케팅 전략 등 대외비적 내용들을 많이 다루게 된다. 기업을 둘러싼 정보에 더욱 민감해지는 상황에서 재벌들은 상품과 마케팅 전략 등 핵심내용들이 밖으로 흘러가는 것을 꺼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광고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광고회사는 계열사의 일감 몰아주기로 빠른 속도로 성장할 수 있고 광고업종의 특성상 인적자본 외에 별다른 투자가 필요하지 않다. 이 때문에 재벌의 광고 계열사는 ‘현금장사’로 꼽힌다. 최소의 자본금으로 안정적 수익을 확보할 수 있어 자산을 불리기에 적합하다.
현대차그룹의 광고 계열사 이노션은 2005년 만들어졌다. 그런데 계열사의 대대적 지원에 힘입어 단숨에 업계 2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재벌 오너 일가 가운데 여성들이 광고 계열사를 맡는 것도 역시 광고업의 특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다른 업종에 비해 전문성이 부족해도 크게 티가 나지 않는다. 또 여성 특유의 감수성과 꼼꼼함을 발휘할 수 있다.
재벌가 여성들이 백화점 등의 유통업이나 호텔 등의 서비스업, 패션분야에 진출해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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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현주 상암커뮤니케이션즈 부회장 |
과거 재벌가 여성들은 미술을 전공한 뒤 갤러리나 미술관 관장을 많이 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수준을 넘어 경영에 직접 참여하려 한다. 이들은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길을 찾는 과정에서 광고 계열사에 안착한다.
제일기획의 이서현 사장과 농심기획의 신현주 부회장은 모두 모두 미술을 전공했다. 신현주 부회장은 전업주부 출신으로 뒤늦게 광고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미술 전공자답게 섬세한 감각이 돋보인다는 평가도 듣는다.
이 때문에 재벌가 여성들이 광고 계열사를 차지하는 데 대해 "여성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얘기와 함께 "쉽게 돈 벌 수 있는 영역"이라는 비판이 함께 나온다.
◆ 피해갈 수 없는 일감 몰아주기 논란
재벌의 광고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논란은 끊임없이 지적돼 왔다.
상암커뮤니케이션즈를 이끄는 박현주 부회장은 대상그룹 임창욱 명예회장의 부인이다. 그는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의 딸이자 박성용 명예회장의 여동생이다.
상암커뮤니케이션즈는 대상그룹의 계열사다. 대상홀딩스가 지분 100%를 갖고 있다. 대상홀딩스는 임상민, 임세령을 비롯해 임 명예회장의 친족 5명이 67.14%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박현주 부회장이 이끄는 상암커뮤니케이션즈의 주요 고객은 시댁인 대상그룹과 친정인 금호그룹이다.
상암커뮤니케이션즈는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 금호건설, 금호타이어, 금호고속, 에어부산 등의 광고를 20여 년 동안 거의 독점하고 있다. 업계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광고가 상암커뮤니케이션즈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농심기획도 마찬가지다. 신현주 부회장은 신춘호 농심 회장의 장녀다. 농심기획은 대부분의 농심그룹 제품 광고를 도맡아 한다. 농심기획의 최근 7년 동안 내부거래 비율은 50%를 웃돈다. 내부거래로 받은 금액은 2007년 87억 원에서 2010년 141억 원을 정점으로 120억 원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농심기획의 지분은 애초 농심홀딩스 50%, 신동원 부회장 30%, 신현주 부회장 20%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지분을 모두 농심에 넘겼다. 이에 따라 농심기획은 농심의 자회사로 편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