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현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이 12일 대전광역시 본사에서 전북 용담댐 하류 지역의 홍수 피해지역 지방자치단체장 4명을 만나기 전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
박재현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이 전국 곳곳의 홍수 피해에 따른 책임론에 휩싸이게 됐다.
이번에 홍수가 난 지방자치단체 곳곳에서 수자원공사가 댐의 수위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피해 규모가 커졌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박 사장은 12일 수자원공사 대전시 본사에서 충청북도의 박세복 영동군수, 문정우 금산군수, 김재정 옥천군수와 전라북도의 황인홍 무주군수를 만나 피해보상과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받았다.
이 지역들은 수자원공사에서 관리하는 전북 용담댐의 하류에 있다. 최근 집중호우가 쏟아졌을 때 도로와 농경지 등이 대거 물에 잠기는 피해를 겪었다.
지방자치단체장 4명은 공동입장문을 통해 “수자원공사는 용담댐의 홍수 조절 실패가 불러온 이번 재난의 직접적 원인 제공자로서 최종 책임이 있다”며 “공식 책임을 표명하면서 대국민사과를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수자원공사가 관리하는 전라남도 섬진강댐과 경상남도 합천댐과 하류 지역에서도 댐의 방류량 증가로 침수 피해가 커졌다는 주장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섬진강댐 하류에 있는 전남 광양군수·곡성군수·구례군수와 전북 남원시장·임실군수·순창군수도 12일 공동 성명을 통해 “이번 수해는 수자원공사 등의 댐 관리기관이 집중호우 예보에도 선제적 방류는커녕 담수만 고집하다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문준희 합천군수도 10일 성명을 통해 “합천댐 방류량이 집중호우 기간에 급격하게 늘어났다”며 “이번 폭우 피해는 방류량 조절 실패에 따른 인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지자체장들은 이번 홍수 피해가 수자원공사의 물관리 실패로 더욱 커졌다고 본다. 수자원공사가 집중호우 예보에도 불구하고 사전방류로 수위를 미리 낮추지 않았다가 비가 쏟아지자 급하게 방류량을 늘리면서 피해가 커졌다는 것이다.
문제된 댐들의 방류량을 살펴보면 8일 용담댐의 방류량은 1초당 3천t에 이르렀는데 기존의 1500t보다 2배 많은 수준이다. 당시 옥천과 영동 지역의 8~9일 강우량은 각각 76㎜와 64㎜에 머물렀다.
영동·금산·옥천·무주군은 긴급공문을 통해 용담댐의 방류량을 줄여달라고 요청했지만 수자원공사에서 이 요청을 무시하면서 피해가 커졌다고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합천댐 방류량도 7일 오후 1초당 500t에서 집중호우가 시작된 8일 오후 2700t까지 늘어났다. 섬진강댐도 8일 오전 최대 방류량인 1초당 1870t을 방류했다.
박 사장은 장마에 접어든 7월 말 홍수기 물관리 대응상황을 점검했다. 연이어 8월 초 중부지방에 집중호우가 내리자 긴급점검회의를 열어 전국의 댐과 보 등의 대비태세를 챙겼다.
그러나 수자원공사를 향한 지자체의 문제제기가 거세지면서 박 사장도 홍수 피해를 사전에 막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더구나 박 사장이 추진해 왔던 수질과 물 이용 중심의 물관리정책 기조에도 불똥이 튀고 있다. 수자원공사가 댐에 채워진 물을 관리하는 ‘담수’에 치중해 홍수 예방이라는 ‘치수’에는 상대적으로 잘 대처하지 못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섬진강 유역의 환경단체 연합인 ‘섬진강유역환경협의회’는 12일 성명에서 “수자원공사는 물의 이용만을 위한 욕심에 담수를 위한 유입량을 잘못 계산하면서 댐 하류의 주민 안전대책 마련에는 소홀했다”고 비판했다.
국회에서도 홍수 피해 지역의 의원들을 중심으로 수자원공사의 책임론이 제기되고 있다. 향후 상황에 따라 10월 국정감사에서 박 사장을 향한 공세가 이어질 가능성도 나온다.
합천 지역구인 김태호 무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수자원공사에 댐 수위와 관련된 자료를 요청했다”며 “자료를 받은 뒤 수자원공사가 댐의 안전만을 위해 방류량을 급격하게 늘린 것인지 파악해 대응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순천·광양·곡성·구례을 지역구인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도 “이번 피해 원인은 강우량보다는 댐의 방류량이 문제였다고 본다”며 “홍수조절체계 문제가 심각해 보이는 만큼 국회 본회의 등을 통해 수자원공사 등에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홍수 피해지역의 문제제기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지키고 있다.
그는 12일 지자체장들과 만나기 전 기자들에게 "현재 진행 중인 홍수 원인의 조사 결과가 나오면 댐의 수위 조절에 관련된 부분은 충분히 설명될 것"이라며 "국가 차원의 정밀 조사에 최대한 협조한 뒤 결과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수자원공사는 집중호우 전에 사전방류를 통해 댐의 수위를 미리 조절했으며 강수량과 댐의 안전, 상류와 하류 상황 등을 고려하면서 댐을 운영해 왔다는 해명도 내놓았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지역의 홍수 방어는 댐과 하천이 분담하고 홍수 피해양상도 제방 붕괴 등의 복합적 요인으로 생기는 만큼 관련 기관이 면밀한 조사와 원인 분석을 함께 진행해야 한다”며 “원인 분석과 대책 수립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