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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용 전 LG전자 부회장 |
“휴대폰사업 등 핵심사업이 시장변화를 선도하지 못하고 부진에 빠지게 된 점을 아쉽게 생각하고 최고경영자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2010년 LG전자 최고경영자(CEO)였던 남용 부회장이 물러나며 임직원들에게 이메일을 통해 남긴 말이다. 남 부회장은 LG전자를 2010년까지 ‘글로벌 톱3’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품고 2007년 1월 사령탑에 취임했다. 하지만 남 부회장은 취임한지 3년9개월이 지난 2010년 9월17일 실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했다.
남 부회장은 고별사에서 임기 동안의 성과에 대해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남 부회장의 퇴임 후 5년이 되는 지금 LG전자의 상황을 지켜보면 실패의 그림자가 너무도 짙게 드리워져 있다.
◆ LG전자에 ‘좋은 시절’ 안겨다준 남용
남 부회장은 LG전자의 최전성기를 이끈 인물이다. 남 부사장 시절 LG전자는 노키아, 삼성전자와 함께 ‘세계 3대 휴대전화회사’를 이루며 세계 휴대전화시장에서 이름을 떨쳤다.
남 부회장이 취임하기 직전 2006년 4분기 LG전자는 2002년 기업분할 후 처음으로 434억 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특히 휴대전화사업을 담당하는 모바일 커뮤니케이션(MC) 사업본부의 실적악화가 두드러졌다. MC사업부는 2006년 3분기보다 27.2%, 2005년 4분기보다 무려 67.1%나 감소한 715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는데 그쳤다.
LG전자 휴대전화의 세계 시장점유율도 떨어졌다. 2005년 4분기 6.6% 점유율을 차지하며 세계 4위 자리를 지켰던 LG전자는 2006년 4분기 5.7%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같은기간 소니에릭슨이 8.7%의 점유율을 차지해 LG전자를 누르고 4위에 올라섰다.
남 부회장은 취임사에서 “LG전자는 왜 노키아보다 못해야 하나”며 “매출뿐 아니라 시장점유율과 수익성, 성장률, 주주수익률에서도 글로벌 톱3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 부회장은 단기적으로 휴대전화 점유율을 회복하고 장기적으로 세계 시장점유율 10%를 달성해 노키아, 모토로라,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4위에 오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남 부회장 시절 LG전자는 이른바 ‘대박상품’들을 잇달아 선보였다. LG전자가 2007년 세계에 출시한 ‘샤인폰’은 전 세계에서 1천만 대 이상을 팔아치워 전작인 ‘초콜릿폰’의 명성을 이어갔다. 같은해 명품 브랜드인 프라다와 손잡고 선보인 ‘프라다폰’은 세계 최초로 정전식 터치스크린을 탑재했다. 2008년 출시한 ‘뷰티폰’은 500만 화소 카메라와 풀 터치스크린을 장착해 프리미엄 피처폰시대를 열었다.
LG전자는 빠른 속도로 경쟁자들을 추격했다. LG전자는 2007년 휴대전화 8050만 대를 판매하며 MC사업부에서만 9325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1526억 원에 그쳤던 2006년보다 6배나 많은 액수였다. 다만 4위를 차지하고 있던 소니에릭슨이 1억 대를 넘겨 4위 탈환은 내년으로 미뤄야 했다.
2008년 4월 당시 LG전자 MC사업본부장이었던 안승권 LG전자 사장은 “올해 세계 휴대폰 시장점유율을 10%까지 끌어올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안 사장의 말대로 LG전자는 2008년 휴대전화 시장점유율 10%를 달성하는 듯 했다. LG전자는 2008년 총 1억70만 대의 휴대폰을 팔아 3위 모토로라와 4위 소니에릭슨을 제치고 세계 3위 자리에 올랐다. 연간 판매량 1억 대도 사상 처음으로 돌파했다. MC사업부의 영업이익은 1조5342억 원을 달성해 최고기록을 갈아치웠다.
하지만 10% 달성은 뒤로 미뤄야 했다. 2008년 불어 닥친 세계 경제위기의 영향으로 매출이 예상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안 사장은 2008년 12월 기자간담회에서 “세계시장 전망이 불확실해 아직 목표 판매대수를 정하지 못한 상태”라며 “다만 내부적으로 2009년 세계 시장점유율을 10%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세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LG전자는 2009년 2분기 드디어 10%대 점유율 달성에 성공했다. LG전자는 당시 역대 최고 실적인 4조8769억 원의 휴대폰 매출액을 기록하며 세계 휴대폰 시장점유율 10.85%를 기록했다. LG전자는 꾸준한 판매량 증가에 힘입어 2009년 10.5%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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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
◆ 피처폰 집착하다 5위로 추락
LG전자가 2009년 최고실적을 냈지만 시장상황은 점차 LG전자에 불리한 방향으로 흘렀다. 2007년 첫 선을 보인 애플 아이폰이 돌풍을 일으키며 휴대전화시장의 주도권이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LG전자는 시장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LG전자는 스마트폰 돌풍이 ‘찻잔 속의 태풍’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2009년 3분기부터 실적 하락세가 이어졌지만 이는 스마트폰 때문이 아니라 불황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그도 그럴 것이 LG전자는 2009년 목표한 1억 대 판매와 점유율 10%를 모두 달성했다. 영업이익은 2008년보다 조금 감소했지만 1조 원을 쉽게 넘겼다. 피처폰의 성공이 LG전자의 눈을 가린 것이다.
2009년 11월 KT를 통해 아이폰 3GS가 국내에 출시되면서 국내 휴대전화시장도 스마트폰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었다. 스마트폰에 미처 대비하지 못한 LG전자는 바빠졌다.
안 사장은 2010년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0’에 참석해 스마트폰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겠다고 밝혔다. 안 사장은 “스마트폰에 대한 소비자 반응이 이렇게 빠를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며 “스마트폰시장에서도 일반 휴대폰과 비슷한 10%대 시장점유율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는 애플과 구글이 스마트폰시장을 선점한 상황에서 사업 파트너로 마이크로소프트(MS)를 택했다. 남 부회장은 2009년 2월 MWC에서 스티브 발머 MS 최고경영와 만나 스마트폰을 공동으로 개발하겠다고 선언했다. 남 부회장은 “MS의 윈도 모바일이 탑재된 LG스마트폰이 스마트폰시장을 주도하게 될 것”이라며 성공을 자신했다.
하지만 LG전자가 MS를 사업파트너로 선택한 것은 스마트폰사업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었다. 윈도 모바일이 휴대전화에 맞지 않은 운영체제라는 것은 삼성전자가 2008년 6월 출시했던 ‘옴니아’의 실패사례를 통해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결국 MS는 애플의 ‘iOS’나 구글의 ‘안드로이드’에 대적할만한 운영체제를 LG전자에 제공하지 못했다. LG전자는 줄어드는 시장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피처폰에 더욱 더 매달렸다. LG전자는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며 2009년 6월 ‘프라다폰2’를 국내에 출시했다. 2010년 3월 스마트폰의 대항마라며 하드웨어 스펙만 높인 ‘맥스폰’을 내놨다. 하지만 이미 시장은 스마트폰이 점령한 상태였다.
스마트폰시장에 대처하지 못한 LG전자는 2010년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남 부회장이 2010년 7월 간담회에서 “스마트폰사업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시키겠다”고 했지만 이미 때늦은 결정이었다. LG전자 MC사업부는 2010년 7088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휴대전화사업의 엄청난 손실로 LG전자는 2010년 개별기준으로 총 1조1046억 원의 영업적자를 냈다고 발표했다.
남 부회장은 실적부진을 버티지 못하고 결국 물러났다. 남 부회장의 자리를 대신해 LG전자의 새로운 수장으로 임명된 사람은 구본준 부회장이었다. 구 부회장은 ‘휴대전화 명가 LG전자’를 재건하라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특명을 받고 2010년 10월부터 LG전자를 이끌고 있다.
구 부회장이 LG전자를 맡은 지 4년이 되고 있지만 LG전자는 아직 예전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남 부회장 시절 실패로 입은 상처가가 너무도 깊게 남아있다. LG전자는 최근 중국기업들에게 밀려 세계 시장점유율 5위까지 추락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