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승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사업부장 사장이 세계 최대 파운드리기업 대만 TSMC를 따라잡는 데 더욱 고전하게 됐다.
TSMC에서 가장 큰 매출을 차지하는 애플이 인텔을 벗어나 자체 설계한 반도체를 준비하면서 TSMC에 더 많은 반도체 일감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23일 애플이 ‘WWDC(세계개발자회의)2020’ 행사에서 PC ‘맥’에 자체 반도체 ‘애플실리콘’을 탑재해 연말에 내놓겠다고 발표하면서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국 블룸버그는 애플실리콘이 영국 ARM의 설계자산을 기반으로 개발돼 TSMC의 5나노급 공정에서 생산된다고 전했다.
경제매체 포춘 등에 따르면 그동안 맥용 반도체는 인텔 연매출의 5%가량을 차지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2019년 기준으로 36억 달러에 이르는 규모다.
앞으로 애플실리콘이 인텔 반도체를 대체하면 TSMC가 이 일감을 모두 차지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삼성전자와 TSMC의 매출 격차가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삼성전자가 올해 2분기 파운드리 매출 점유율 18.8%(36억7800만 달러)에 그쳐 51.5%(101억500만 달러)를 차지한 TSMC와 30%포인트 이상의 차이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애플이 PC용 5나노급 반도체를 TSMC에 맡긴다는 것은 삼성전자가 TSMC와 비교해 반도체 기술에서 다소 뒤떨어져있다는 점을 나타내는 일이기도 하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는 현재 TSMC와 함께 유일하게 5나노급 공정에 진입한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업계에서는 같은 공정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반도체라도 면적당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구현하는 쪽이 우월한 성능을 발휘한다는 시선이 있다.
반도체전문 조사기관 IC널릿지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5나노급 반도체에 ㎣(제곱밀리미터)당 트랜지스터 1억3300만여 개를 탑재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트랜지스터 탑재량이 1억8500만여 개에 이르는 TSMC보다 훨씬 부족한 수준이다.
정은승 사장은 파운드리시장을 선도하는 TSMC와 경쟁하기 위해 미세공정 개발을 우선해 왔다.
정 사장은 5월21일 삼성전자 평택사업장의 극자외선(EUV) 기반 파운드리 생산라인 구축을 발표하며 "5나노급 이하 공정 제품의 생산규모를 확대해 극자외선 기반 초미세시장의 수요 증가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의 성장은 현재 삼성전자가 전사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반도체 비전 2030’의 성공과 직결된다. 반도체 비전 2030은 2030년까지 파운드리 등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글로벌 1위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TSMC가 삼성전자보다 우월한 공정을 바탕으로 애플과 관계를 다지고 있는 만큼 정 사장은 TSMC를 추격해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 목표로 다가가는 데 더욱 힘들 수밖에 없게 됐다.
애플은 2019년 4분기 매출만 918억2천만 달러에 이르는 세계적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로 TSMC 매출의 23%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애플이 인텔을 배제하며 독자 반도체 노선으로 방향을 잡았기 때문에 앞으로 애플 반도체를 대신 생산해줄 TSMC와 연계는 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은 그동안 맥에 인텔의 중앙처리장치(CPU)를 탑재해 왔다. 하지만 인텔이 최근 반도체 공정을 10나노급 이하로 개선하는 데 차질을 빚자 대안 찾기에 나선 것으로 파악된다.
아이폰과 맥의 생태계를 통합해 더 나은 사용자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방침도 애플의 ‘탈인텔’을 가속화했다.
현재 아이폰은 애플이 ARM을 기반으로 설계한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A’시리즈를 통해 동작한다. 앞으로 애플실리콘이 맥에 탑재되면 아이폰과 맥의 애플리케이션이 서로 호환될 것으로 전망된다.
팀 쿡 애플 CEO는 이날 행사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통합은 애플의 핵심”이라며 “자체 설계한 칩과 소프트웨어의 결합으로 애플 실리콘 칩은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임한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