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5월28일 서울 여의도 본점에서 열린 기간산업 안정기금 출범식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기간산업 안정기금이 본격적 자금 집행을 앞두고 있다.
재원은 한정돼 있는데 너나 할 것 없이 정부에 손을 벌릴 것으로 보여 어느 기업이 얼마 만큼의 지원을 받을지에 시선이 집중된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간산업 안정기금의 첫 번째 수혜자는 대한항공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간산업안정기금운용심의회는 최근 회의를 열어 기금운용 규정과 채권 발행 등을 논의했다. 채권 발행은 이르면 6월 말 이뤄진다.
40조 원 규모로 조성되는 기간산업 안정기금은 코로나19로 일시적 자금난을 겪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재원이 한정돼 있어 ‘선택과 집중’을 통한 ‘운용의 묘’가 절실하다.
대한항공은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데다 규모 등으로 볼 때 산업과 고용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지원 1호 기업으로 선정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간산업 안정기금의 기준 등을 놓고 형평성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미 부실이 발생해 계속 어려움을 겪던 기업과 일시적 어려움을 겪는 기업 등을 어떤 잣대로 분류할지 애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애초에 지원기준을 총차입금 5천억 원, 근로자 300인 이상으로 정한 근거가 무엇이냐는 근본적 의문도 나온다.
빚이 적으면 지원을 못 받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대기업만 살리는 ‘대마불사’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쓴소리도 있다. 차입금 규모는 결국 자산규모에 비례하는데 자산규모가 큰 대기업만 지원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처음 논의 과정에서도 매출로 지원기준을 정하거나 총차입금 규모를 3천억 원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기간산업 안정기금의 설립 취지가 기간산업 보호와 일자리 보호인 만큼 당장 무너지면 산업과 경제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기준이 필요했다는 반론도 나온다.
정부는 기간산업 안정기금의 우선 지원업종을 항공업과 해운업으로 명시했다. 당초 기계·자동차·조선·전력·통신도 포함돼 7개였으나 최종안에서는 2개 업종만 남았다. 다른 업종과 비교해 지원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무구조가 심각하게 악화된 아시아나항공은 지원대상에서 일단 빠졌다. 아직 인수합병이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대부분의 저비용항공사(LCC)도 지원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제주항공과 에어부산을 제외한 저비용항공사들은 총차입금 5천억 원 이상, 근로자 300명 이상이라는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당초 제주항공과 에어부산이 지원대상에 이름을 올릴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다른 저비용항공사들이 반발하는 등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 일단 배제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원업종에 항공과 더불어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해운업종에 대한 지원도 당장 이뤄지지 않는다. 항공업과 비교해 지원이 당장 시급한 상황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자동차부품업계에는 1조 원가량을 지원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 규모와 별개로 국내 경제나 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인데 역시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 부분이다.
당장의 가장 큰 관심사는 쌍용차 지원 여부다. 쌍용차는 2천억 원의 기간산업 안정기금을 요청하기로 했는데 쌍용차가 지원대상인지조차 불분명하다.
최근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은 쌍용차를 기간산업 안정기금으로 지원할지와 관련해 “쌍용차는 구조조정 대상 기업이다보니 판단을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쌍용차 지원 여부를 놓고 어떤 결정이 나오든 한동안 잡음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기간산업 안정기금의 태생부터가 정치권의 입김을 피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도 있다. 운용심의위는 모두 7명으로 구성됐는데 이 가운데 2명이 국회 추천이기 때문이다. 자칫 산업논리보다는 정치논리에 치우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금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운용심의회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이들이 지원 여부는 물론 방식과 한도 등을 결정한다.
국회가 추천한 2명은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미래통합당 추천)과 김성용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더불어민주당 추천)다.
오정근 위원은 한국은행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인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에 부정적 입장을 지닌 대표적 학자다. 김성용 위원은 변호사 출신으로 구조조정과 관련해 학계를 대표해 목소리를 내왔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