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OTT) 넷플릭스가 코로나19의 영향을 받는 극장 대신 영화 개봉까지 맡아 콘텐츠 유통에서 영향력을 더욱 높여가고 있다.
넷플릭스는 최근 코로나19로 극장 개봉이 미뤄진 한국 상업영화 ‘사냥의 시간’을 세계 190개 국가 넷플릭스 플랫폼에서 독점적으로 공개하며 영화 콘텐츠 유통의 새로운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26일 극장업계에 따르면 영화 ‘사냥의 시간’의 넷플릭스 개봉 사례에 국내 영화 제작, 배급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금까지 넷플릭스와 같은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들은 극장에 개봉한 영화를 2차적으로 유통하는 채널로 인식돼 왔다. 또는 극장에 걸리기 어려운 저예산 독립영화, 예술영화 등의 공개 통로로 활용돼 왔다.
하지만 사냥의 시간이 한국 상업영화로는 처음으로 극장 개봉 없이 넷플릭스 공개를 결정하면서 영화 배급시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는 대형 상업영화도 배급방식에서 극장 개봉과 넷플릭스 직행을 두고 저울질을 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사냥의 시간은 영화 ‘파수꾼’으로 유명세를 탄 윤성현 감독이 9년 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배우 이제훈, 안재홍, 최우식, 박정민, 박해수씨 등의 출연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사냥의 시간은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새로운 인생을 위해 위험한 작전을 계획한 4명의 친구와 이를 뒤쫓는 정체불명의 추격자의 이야기를 담아낸 스릴러 영화다. 총제작비가 120억 원에 이른다.
사냥의 시간은 당초 2월 극장에 걸릴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개봉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졌고 사태가 장기화되자 넷플릭스 직행을 선택했다.
넷플릭스는 이미 드라마, 영화 장르를 넘나들며 많은 ‘오리지널’ 콘텐츠를 독점적으로 유통하고 있지만 사냥의 시간은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제작 작품이 아니라는 점에서 다른 의미를 지닌다.
넷플릭스가 자금을 투자해 제작한 작품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영화의 유통에 관한 권리를 확보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드라마와 영화 등 콘텐츠의 기획, 제작 단계부터 투자를 아끼지 않는 공격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미 만들어진 콘텐츠의 2차 유통이 아닌 직접 콘텐츠를 제작해 독점적으로 유통하는 방식으로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의 한계를 허물고 사업영역을 크게 확대해왔다.
넷플릭스는 사냥의 시간과 같은 상업영화 유통을 직접 진행하는 것을 계기로 콘텐츠 사업자로 입지가 더욱 강력해질 것으로 보인다.
영화 제작사들에게 넷플릭스는 극장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는 유통 플랫폼이다. 넷플릭스는 현재 세계 190여 개 국가에서 회원 1억8300만 명가량을 확보하고 있다.
최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열풍으로 세계적으로 한국영화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넷플릭스는 글로벌시장에 효율적으로 영화를 배급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킹: 헨리 5세’처럼 온라인 플랫폼 공개 뒤 영화관에 걸리는 사례도 있는 만큼 넷플릭스 공개 뒤 영화관 재개봉이라는 선택지도 고려할 수 있다.
CJCGV, 롯데컬처웍스, 메가박스중앙 등 극장사업자 3사가 화면과 사운드 등에서 차별점을 둔 ‘특별상영관’을 늘리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도 이런 영화 콘텐츠 소비 방식의 변화에서 고객을 잡기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현재 국내 극장가에는 코로나19 사태로 개봉일정을 연기한 영화가 50여 편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생충: 흑백판’을 비롯해 박상현 감독의 ‘결백’, 손원평 감독의 ‘침입자’, 이충현 감독의 ‘콜’ 등이 모두 홍보활동까지 진행하던 가운데 개봉이 연기됐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3월 극장 전체 관객 수는 183만 명으로 2019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87.5% 급감했다.
한국 한 해 영화 관객 수는 2013년 2억 명을 넘어선 뒤 정체를 지속하고 있어 코로나19에 따른 특수한 상황 이전부터 성장둔화가 나타났다. [비즈니스포스트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