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학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장이 취임 첫 해를 무난히 이끌고 재신임을 받아 앞으로 해외사업에 더욱 힘을 실을 준비를 하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향후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의 승계 과정에서 자금줄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강점을 지니는 해외사업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여야 하는 김 사장의 어깨가 무겁다.
3일 건설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김 사장은 지난해 4월1일 취임 이후 지난 1년 동안 현대엔지니어링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엔지니어링은 2019년에 연결기준으로 매출 6조8천억 원, 영업이익 4081억 원, 신규 수주 10조8천억 원을 올렸다. 2019년보다 매출과 신규수주는 각각 8%와 15% 늘고 영업이익은 10% 줄었다.
영업이익이 다소 줄었지만 6.1%의 영업이익률(개별기준)을 보이며 대형건설사 가운데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익성을 유지했다. 지난해 국내 5대 대형건설사의 개별기준 평균 영업이익률은 5.7%를 보였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외형 확대로 현대건설 연결기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9%까지 늘었다. 2018년보다 1.8%포인트 오른 것으로 역대 가장 높은 매출비중이다.
김 사장은 지난해 4월 취임과 동시에 문재인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해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으로부터 제2 가스화학플랜트사업을 약속 받으며 해외사업에서 기분 좋은 출발을 보였다.
국내 대형건설사의 전반적 해외사업 부진 속에서도 김 사장은 해외사업에서 지난해 36억8천만 달러 규모의 신규 일감을 따내며 국내 전체 해외수주의 16%를 책임졌다.
그 결과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국내 건설사 가운데 6번째로 누적 해외수주 500억 달러를 넘긴 건설사에 이름을 올렸다.
김 사장은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지난해 3월 현대차그룹에 임원 수시인사제도를 도입한 뒤 처음으로 임명된 계열사 대표라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김 사장은 애초 전임 사장의 임기를 이어받아 대표에 올랐는데 올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재선임되며 임기를 3년 연장했다. 지난해 성과를 통해 경영능력을 입증받았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현대엔지니어링이 현대차그룹에서 지닌 의미를 고려할 때 김 사장이 기업가치 강화를 위해 가야할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정 수석부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의 지분 11.7%를 지닌 개인 최대주주인데 시장에선 현대엔지니어링이 자체 상장하거나 현대건설과 합병하는 방식 등을 통해 정 수석부회장이 보유한 지분가치를 높일 것으로 보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이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을 팔아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를 향한 지배력을 높이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엔지니어링 기업가치가 높아질수록 향후 정 수석부회장이 지분 매각을 통해 많은 자금을 손에 쥘 수 있어 기업가치 강화를 책임진 김 사장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김 사장은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지속해서 해외사업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매출 기준 해외와 국내사업 비중이 51 대 49로 안정적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다만 국내사업은 정부의 규제 강화 등으로 신규 일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모회사인 현대건설과 사업영역이 겹치는 만큼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데는 다소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도시정비사업을 놓고 볼 때 현대엔지니어링은 현대건설과 같은 사업장에 도전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며 "현대엔지니어링이 현대건설의 자회사일뿐더러 현대건설과 같은 아파트 브랜드 '힐스테이트'를 쓰는 점 등도 고려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 김창학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장(왼쪽)이 2월25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페르타미나 본사에서 ‘황회수설비 및 수소생산설비 설치공사’ 계약을 맺은 뒤 이그나티우스 탈룰렘방 페르타미나 메가프로젝트 이사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 |
하지만 해외사업에서는 현대건설과 주력 공종도 다르고 시장도 다른 만큼 현대엔지니어링이 공격적으로 사업 확장을 시도할 수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해외사업에서 화공플랜트를 주력으로 중앙아시아 시장 텃밭으로 삼고 있다. 플랜트뿐 아니라 토목, 건축 등도 함께 하며 중동과 동남아, 남미 등을 주요 시장으로 둔 현대건설과 다르다.
김 사장도 올해 주총에서 “아시아와 동유럽 및 러시아지역의 대형플랜트사업을 수주하고 해외토목과 건축분야에서도 수주를 추진해 해외진출 분야를 확대하겠다”며 ‘해외시장 다변화’를 2020년 제1과제로 꼽았다.
김 사장은 최근 글로벌 플랜트시장에서 ‘탑 티어 EPC(설계·조달·시공) 솔루션기업’을 목표로 하는 ‘2025년 비전’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대엔지니어링 관계자는 “플랜트사업뿐 아니라 다른 사업부문도 순차적으로 중장기 비전을 발표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해외뿐 아니라 국내사업도 함께 강화해 안정적 포트폴리오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힘쓰겠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