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으로선 매각 무산이라는 최악의 상황만큼은 피해야 하는 탓에 선택지가 많지 않아 보인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HDC현대산업개발이 산업은행에 차입금 상환 유예, 납입일 조정 등의 요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HDC현대산업개발은 영구채 5천억 원의 출자전환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영구채의 이자부담이 큰 상황에서 차입금 상환 유예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은 지난해 4월 아시아나항공이 발행한 영구채 5천억 원을 인수했다.
이 영구채 금리가 7%대로 다소 높게 책정돼 산업은행에 지급해야 하는 이자부담이 만만치 않다.
여기에 2021년 5월부터는 기본금리가 9.5%로 오르고 2022년부터는 조정금리도 추가된다. 빨리 상환하지 않으면 이자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는데 현실적으로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악화를 고려하면 빠른 상환도 쉽지 않다.
이 영구채가 출자 전환되면 정몽규 회장은 일단 이자부담을 크게 덜 수 있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비롯해 채권단이 주요주주에 오르면 정 회장으로선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정상화 과정에서 든든한 우군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출자전환은 이동걸 회장에게는 피하고 싶은 선택지 가운데 하나일 것으로 보인다. 또 다시 부실기업의 주요주주가 되면서 혈세 낭비 논란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항공사를 비롯한 대기업들이 너나 할 것이 정부에 손을 벌리고 있는 상황에서 불거질 수 있는 특혜시비 역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동걸 회장이 HDC현대산업개발의 요청을 무조건 거절하기는 쉽지 않다. 이 회장에게 매각 무산이 최악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 매각이 무산되면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나항공이 기존 대주주 품에 남아있게 되면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간다. 부실경영의 잘못이 있는 대주주로부터 아시아나항공을 떼어놓는다는 매각 취지가 완전히 무색해지는 데다 1년 가까이 아시아나항공 안팎에서 불필요한 혼란을 불러왔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이 회장이 명분도 실리도 얻지 못한 채 1년 동안 ‘헛발질’만 하게 된 셈이다.
채권단의 출자전환과 대주주의 감자 과정을 거쳐 채권단이 최대주주에 오르는 시나리오 역시 가능하다.
이 때 산업은행이 다른 원매자를 빨리 찾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을 오랫동안 떠안게 되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
현재 항공업계를 둘러싼 상황 등을 볼 때 아시아나항공의 새로운 원매자를 금방 찾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찾는다 해도 금호아시아나그룹이나 HDC현대산업보다 나으리란 보장은 없다. 실제 항공업황이 지금처럼 나빠지기 이전에도 인수전에 참여한 대기업은 HDC현대산업개발이 유일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완주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상황에서 산업은행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매각 철회 가능성을 꺼내고 있는 것으로 본다”며 “산업은행이 HDC현대산업개발의 지원 요청을 무조건 거부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양쪽 모두 공식적으로 요청하지도, 요청받은 적도 없다며 이를 부인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조은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