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P2P(개인간거래)금융업체의 진출요건을 강화하고 업무범위와 투자한도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P2P금융법 시행령 개정안을 내놓았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임기 초반부터 혁신금융과 핀테크분야 활성화를 위한 P2P금융의 역할에 큰 기대를 보여 왔는데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속출하자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꿨다.
금융위는 30일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 및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P2P법) 감독규정과 시행안을 수정해 내놓았다.
8월 시행되는 P2P법 도입을 앞두고 P2P금융업 진출조건과 영업활동 규제 등을 정비한 것이다.
금융위가 1월 말 발표한 시행안과 비교해 P2P금융업체가 할 수 있는 업무범위가 축소됐고 개인 투자자의 P2P금융분야 투자한도도 크게 낮아진 점이 특징이다.
P2P금융업체는 새 시행안에 따라 신용평가와 대출 중개업무만 할 수 있고 개인 투자한도는 기존 5천만 원에서 3천만 원으로, 부동산분야 투자는 3천만 원에서 1천만 원으로 낮아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최근 부동산과 소상공인, 개인 신용대출에서 연체와 부실이 발생해 투자자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 데 따라 수정안에 이런 내용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취임한 뒤 P2P금융업 육성을 목표로 제시하고 P2P금융 법제화를 통해 시장을 활성화하는 법안 통과도 지지하며 적극적으로 힘을 실었다.
정부가 추진하는 혁신금융분야 육성과 핀테크산업 발전에 성과를 내는 데 P2P금융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걸었기 때문이다.
P2P금융은 대출을 받으려는 개인 또는 기업을 온라인 중개플랫폼으로 투자자와 직접 연결하는 방식인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며 신생기업 및 핀테크기업의 금융시장 진출 확대에 기여해 왔다.
금융위 집계에 따르면 P2P금융업체 수는 지난해 말 기준 모두 239곳으로 누적 대출잔액이 2018년 말 4조8천억 원에서 2019년 말 8조6천억 원까지 늘어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최근 P2P금융시장에서 부동산분야로 자금 쏠림이나 연체 및 부실 발생에 따른 투자자 피해 등 부작용이 계속해 발생하면서 은 위원장이 힘을 실어주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2019년 말 기준 P2P금융 전체 대출잔액에서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포함한 부동산 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66%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고강도 부동산대책을 통해 부동산 분야의 자금 흐름을 차단하려고 애쓰는 상황에서 P2P금융이 규제를 우회하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부동산시장 침체로 P2P방식 부동산대출의 연체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데다 P2P금융업체의 부동산 투자상품에 가입한 소비자 피해 가능성이 높아진 점도 부정적이다.
부동산을 제외한 P2P금융 대출 역시 상대적으로 유연한 규제 때문에 부실위험을 안고 있다.
은 위원장이 P2P금융 혁신사례로 앞세웠던 동산담보 기반 P2P금융업체 팝펀딩이 기업에 대출해준 돈을 돌려받지 못해 투자자의 자금상환을 연기한 일이 발생한 적도 있다.
P2P금융분야가 근본적으로 안고 있던 시장 진출규제 미비와 부실자산 발생 가능성, 투자자의 정보 접근성 부족 등 리스크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은 위원장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 P2P금융에 당초 계획과 달리 강도 높은 규제를 대거 도입하며 시장 활성화보다 소비자 보호를 우선순위에 두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새 P2P금융법 시행안에 따르면 기존 금융회사 수준의 건전성과 신뢰성을 갖춘 기업만 P2P금융업에 진출할 수 있고 투자자 정보 제공과 연체율 관리 책임도 강화된다.
파생상품 등 위험성이 높은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중개할 수 없고 손해배상 의무도 도입된다.
부동산 담보대출에 개인 투자한도가 대폭 낮아진 만큼 부동산 투자상품을 주력으로 하던 대부분의 P2P금융업체는 금융위의 규제 강화로 타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P2P금융시장 진출의 문턱이 높아졌고 담보대출 대상도 제약이 커진 만큼 자칫하면 금융위의 규제 강화가 P2P금융시장의 전반적 위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은 위원장은 최근 금융권에서 연달아 벌어지고 있는 투자자 피해사태의 불똥이 P2P금융 분야까지 튀는 것을 막기 위해 강력한 규제로 선제적 조치를 도입한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위가 이번에 내놓은 P2P금융법 감독규정과 시행안은 P2P법이 도입되는 8월 전까지 심사와 의결 등 절차를 거쳐 시행된다.
다만 금융위 관계자는 "P2P금융시장에서 건전성과 이용자 보호체계가 자리잡는다면 P2P업체의 업무 범위와 개인 투자한도는 단계적으로 조정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