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사장은 KT가 지분을 지닌 케이뱅크를 중심으로 KT 금융사업의 ‘새 판’을 짜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는데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특례법(인터넷은행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함에 따라 ‘플랜B’를 가동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 구현모 KT 대표이사 사장 내정자.
5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인터넷은행법 개정안이 이날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면서 KT가 직접 케이뱅크의 최대주주가 되는 길은 사실상 어려워졌다.
KT는 현재 케이뱅크 지분 10%를 보유하고 있는데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 때문에 지분을 더 늘릴 수 없는 처지에 있다.
KT는 인터넷은행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케이뱅크 지분을 34%까지 늘리고 유상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확충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다.
하지만 개정안이 본회의에서 부결되면서 이 길이 막혔다.
인터넷은행법 개정안은 최대주주 적격성 심사 요건에서 금융 관련 법령을 제외한 법 위반 전력을 삭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만약 이 개정안이 국회에 다시 상정된다 하더라도 4월 총선이 끝난 후에나 희망을 걸어볼 수 있게 된다. 케이뱅크의 현재 자기자본비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것을 살피면 그 때까지 케이뱅크가 자본금 확충 없이 버티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19년 3분기 기준 케이뱅크의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11.85%다. 은행업 감독규정에 따르면 BIS 자기자본비율이 10.5% 아래로 떨어지면 배당 제한을 받고 8% 이하로 내려가면 금융위원회가 은행에 경영개선조치를 권고한다.
금융업계에서는 대체로 구 사장이 우회증자를 통해 케이뱅크에 지배력을 확보하고 자본금을 확충하는 방법을 고려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KT의 자회사인 KT에스테이트, BC카드 등을 활용해 케이뱅크의 지분을 확보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투자금융지주는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자회사 대신 손자회사로 카카오뱅크 지분을 넘기는 방안을 통해 카카오뱅크 지배력을 유지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다만 이 방법은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과 사전협의가 필요한 만큼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이 방법을 실행하기 위해 금융감독원과 3개월 넘게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우회적 방법인 만큼 ‘꼼수’라는 비판을 받게 될 우려도 있다.
구 사장은 케이뱅크의 정상화를 통해 케이뱅크를 주축으로 금융사업의 '새 판'을 짜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KT의 무선통신사업, BC카드의 카드사업, 케이뱅크의 인터넷 금융사업 등을 묶어 ‘생활밀착형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KT 금융사업의 밑그림을 그리려 한다는 것이다.
금융업계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가 급성장할 수 있었던 원인 가운데 하나로 ‘국민 메신저’로 불리는 카카오톡과 시너지를 활용한 생활밀착형 금융서비스 제공을 꼽는 시각이 우세한데 구 사장 역시 이와 비슷한 그림을 구상하고 있었던 셈이다.
KT는 1800만 명이 넘는 무선통신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BC카드의 사용자가 더해지고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KT의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면 생활밀착형 금융서비스의 ‘KT 생태계’를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구 사장이 케이뱅크사업을 아예 포기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케이뱅크를 살리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케이뱅크의 자본금을 확충할 수 있을 정도의 여력이 있는 회사에 KT가 보유한 케이뱅크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KT를 대신해 케이뱅크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할만한 정보통신기술(ICT) 회사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 KT의 케이뱅크 포기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KT 관계자는 “케이뱅크의 다른 주주사들과 논의해 케이뱅크의 자본금을 확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