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회장의 현대그룹이 구조조정의 ‘모범생’이 되고 있다. 현대그룹의 종합물류 계열사인 현대로지스틱스가 조만간 팔린다. 현 회장은 이에 따라 자구계획을 내놓은 지 4개월여 만에 핵심 계열사 3개를 정리했다. 업계는 현대그룹이 곧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졸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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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현대그룹은 현대로지스틱스의 경영권을 일본계 사모펀드인 오릭스에 넘기기로 결정했다고 25일 밝혔다. 현정은 회장 일가와 현대그룹 계열사가 보유한 현대로지스틱스의 지분은 89% 가량이다. 이 가운데 80% 이상을 오릭스에 판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거래로 현대는 8천억 원 이상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며 "재무구조 개선효과가 상당히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릭스보다 앞서 롯데그룹, GS그룹 등도 경영권을 사겠다고 현대와 접촉했다. 그러나 오릭스가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해 승자가 됐다.
사모펀드 오릭스는 지난해에도 위기에 처한 STX그룹에 3600억 원을 대주고 STX에너지의 공동주주가 됐다. 이후 조금씩 STX에너지 경영권 지분을 확보한 뒤 모두 GS그룹에 팔아 큰 차익을 남겼다.
현정은 회장의 입장에서 현대로지스틱스는 팔기에 아까운 회사다. 꾸준하게 현금을 벌고 있는 알짜회사이기 때문이다. 택배, 해운, 항만, 항공배송 등으로 지난해 매출은 1조 원이 넘고 영업이익도 321억 원이나 된다.
현 회장은 처음에 현대로지스틱스를 팔지 않고 기업공개를 하는 방식으로 돈을 마련하려고 했다. 하지만 상장으로 조달할 수 있는 금액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된 데다 산업은행이 구조조정에 속도를 낼 것을 강하게 요구하자 방향을 틀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그룹은 현대로지스틱스를 팔 경우 유입되는 현금이 상장보다 3~4배 많다는 데 매력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현 회장은 지난해 말 3조3천억 원 규모의 자구계획을 발표했다. 현대증권, 현대로지스틱스, 현대상선의 LNG 운송사업을 등을 팔아 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현대그룹은 지난 18일 현대증권 매각방식에 대해 산업은행과 계약했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이 보유한 현대증권 지분(26%)과 현대증권 자사주(10%)를 처분하기로 했다. 여기에 현대증권이 100% 보유한 현대자산운용과 현대저축은행도 포함된다.
현대증권 인수자로 유력한 곳은 현대차그룹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증권은 정주영 명예회장 때부터 이끌어온 회사"라며 "현대라는 프리미엄 때문에 현대가에서 인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현 회장은 이미 현대상선의 액화천연가스(LNG) 운송사업 부문도 사모펀드인 IMM에 팔아 1조1천억 원의 현금을 확보했다. 이 사업은 현대상선이 한국가스공사와 계약을 맺고 10척의 LNG선으로 가스를 운송하는 사업이다. 2028년까지 계약이 되어 있어 지속적 수입이 예상됐지만 현금 마련을 위해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채권단 고위관계자는 "현대상선의 LNG 사업부 매각만 끝나면 큰 고비를 넘기기 때문에 현대증권은 천천히 팔아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현대상선은 컨테이너 2만여 대를 팔아서 600억 원을 확보했고, KB금융지주 주식도 500억 원어치를 처분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 12월 자구안 발표 이후 4개월 만에 60% 이상 이행하는 등 생각보다 자구안이 빠르게 시행되고 있다”며 “올해 안에 재무구조 개선약정을 졸업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홍기택 산업은행장도 현대그룹이 구조조정을 잘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