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5일 서울 중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마친 뒤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정부의 결정 및 대응방안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결정에 따라 후속대책을 놓고 정부와 농업계의 대화가 진행돼야 하지만 농업계의 정부를 향한 불신이 커 앞으로 논의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25일 농업계에 따르면 농민들에게 피해가 예상되는 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결정 과정에서 정부가 농민들의 의견을 반영한 구체적 대책 마련에 미흡했다는 불만이 커지며 정부를 향한 농민의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관계자는 “농업계가 정부에 요구한 사항들과 관련해 정부는 타당한 응답을 내놓고 있지 않고 있다”며 “구체적 대책과 예산 규모 등 실질적 내용이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는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선언 1주일 정도를 앞두고 농업계와 간담회를 열어 요식행위만 하면서 농업계가 만족할 대책은 마련하지 않았다”며 “정부를 향한 신뢰가 무너졌고 농민들의 실망감도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33개 농업인단체로 구성된 'WTO 개도국 지위 유지 관철을 위한 농민공동행동'은 25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단체행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앞으로 세계무역기구 내 협상에서 개발도상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한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정부는 이번 결정에 앞서 농업계와 간담회를 진행하며 농민들의 의견을 듣고 대책을 내놓는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정부와 농업계 사이 의견 차이만 확인하며 논의에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농업계는 애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부 부유한 국가들에 WTO 개발도상국 혜택을 주는 데 본격적으로 문제제기를 시작한 시점이 2월이고 미국 무역대표부에 관련 대책을 지시한 시점이 7월이라는 점을 들며 길게는 8개월, 짧게는 3개월 기간이 있었는데도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한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고 있다.
정부가 이전에 농업계에 약속한 지원대책들이 제대로 실현되지 않은 점도 불신을 더 키웠다.
정부는 2015년 한국과 중국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농어업인을 보호한다는 취지로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활성화한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하지만 기금조성 실적을 보면 연 1천억 원 목표치의 20% 수준만 채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상황 속에서 WTO 개도국 지위 포기 이후 농업계 소득안정을 뒷받침할 가장 실효성 높은 대책으로 꼽히는 공익형 직불제 도입도 만만치 않다.
공익형 직불제는 쌀 중심으로 지불되던 직불금을 모든 작물에 확대 적용하는 방안으로 농가의 소득안정에 도움을 주고 쌀 이외의 농산물로 농업구조를 바꾸는데 기여할 것으로 파악된다.
홍 부총리도 “공익형 직불제는 WTO에서 규제하는 보조금에 해당하지 않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며 “국회 예산심의에 성의 있게 임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공익형 직불제를 두고 의견차이를 보이며 합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가 농민들에게 직불금을 지급하려면 기준이 되는 농산물의 목표가격을 먼저 결정해야 한다. 직불금은 농산물 시세가 목표가격보다 낮을 때 차액의 일부를 보전하는 방식으로 지급된다.
이 목표가격을 놓고 민주당과 한국당이 이견을 보이고 있는데 검찰개혁과 선거제 개편 등 주요 정치 쟁점들을 둘러싼 여야 사이 대립이 지속되고 있어 공익형 직불제와 같은 비쟁점 분야의 협의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된다.
야당이 일제히 '문재인 정부의 농민 무시, 농업 포기'라며 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를 비판하는 가운데 농민 비중이 높은 지역구의 민주당 국회의원들도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라북도 김제 부안 지역구의 김종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5일 성명을 내고 “대책도 없이 식량주권을 포기한 정부의 행태에 국민의 분노와 불신이 커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정부가 직시해야 한다”며 “이제라도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 결정을 당장 철회하고 부당한 압력에 식량주권과 농업을 포기한 것을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류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