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확장법 232조는 외국산 수입 제품이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되면 긴급하게 수입을 제한하거나 높은 관세를 매길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하는 기업에 막대한 부담이 지워진다는 점에서 세계 완성차기업들은 미국 정부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차도 마찬가지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2018년 미국에 자동차를 각각 31만2487대, 18만5097대 수출했다. 합산해 약 50만 대에 이르는 차량을 미국에 보냈다.
단순 계산으로 평균 판매단가를 2500만 원으로 잡고 25%의 관세를 적용하면 현대기아차가 해마다 부담해야 할 금액만 3조 원이 넘는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과거 미국의 관세 부과에 따라 현대차와 기아차가 각각 손실 1조4700억 원, 1조1100억 원씩을 볼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미국에서 높은 판매량을 올리는 현대차 투싼과 기아차 쏘울 모두 한국에서 전량 생산돼 수출되는 차량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대기아차의 타격은 예상보다 더욱 클 수 있다.
현대기아차가 지난해까지 줄곧 실적 내리막길을 걷다가 이제 막 반등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관세 부과는 현대기아차에 찬물을 끼얹는 격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만 보면 한국 완성차기업이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매트 브런트 미국자동차정책협회(AAPC) 회장은 8~9일 워싱턴DC를 방문한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회장을 만나 “폐쇄적 일본시장과 달리 한국시장은 개방됐다”며 “한국에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관세 부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개인적 견해를 내놓았다.
미국 자동차제조자연합회(AAM)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과 한국의 시장 개방 수준, 현대기아차의 미국 직접투자 규모 등을 고려할 때 한국이 관세 부과대상에 들어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바라봤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부 장관이 17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 “(수입차 관세 부과 결정에) 한국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겠다”고 말한 점도 외교상 의례적 발언이긴 하나 한국의 관세 부과 제외 가능성을 높게 보는 관측에 힘을 싣는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9월 말 미국 자율주행 전문기업 앱티브와 총 40억 달러 규모의 합작회사 설립 계획을 내놓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빅뉴스가 있는데 그것은 현대차와 기아차, 앱티브가 미국에서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40억 달러 규모의 합작법인을 설립한다는 것”이라며 “많은 $$(달러)와 일자리를 뜻한다”며 공개적으로 호평하기도 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정 수석부회장은 개인적으로도 국내 완성차기업의 관세 제외를 위해 부단히 움직였다.
정 수석부회장은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한 직후인 2018년 9월16일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 동행 요청을 정중히 거절하면서까지 미국 출장길에 올라 수입차 관세 부과 움직임에 대응했다.
당시 정 수석부회장은 윌버 로스 미국 상무부 장관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을 연달아 만나 현대기아차의 미국 투자 계획 등을 상세히 설명하며 국내 자동차업계의 우려를 전달했다.
해외언론도 한국의 관세 부과 제외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로이터는 5월에 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대부분 중소형 자동차를 생산해 판매하는 한국의 완성차기업은 SUV(스포츠유틸리티 차량)이나 픽업트럭, 대형 세단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미국의 완성차기업들과 직접적으로 경쟁하고 있지 않다”고 보도했다.
애초에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확장법 232조라는 카드를 꺼내든 이유가 미국에서 점유율이 높은 독일과 일본의 완성차기업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한 점도 이런 전망에 설득력을 더한다.
하지만 긴장의 끈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낙관적 예측을 벗어난 사례가 많았던 만큼 마지막까지도 정 수석부회장은 미국 행정부의 행보에 긴장은 끈을 놓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