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가운데)이 22일 서울 청와대에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연장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의 회의 내용을 보고받고 있다. <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 대상의 수출규제를 고수하는 일본 정부에 맞서 한국-일본 군사정보 보호협정(GSOMIA) 파기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에 따라 한국과 일본의 무역갈등도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 연장 거부를 확정한 데는 일본 정부가 한국의 대화 시도에도 수출규제에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은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 정부는 최근 수출규제 문제에 신중하게 접근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 대통령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이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을 연장하되 핵심 정보를 주지 않거나 일본의 수출규제가 계속 풀리지 않으면 그때 파기하는 조건부 연장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대화를 시도하는 와중에도 한국의 화이트리스트(수출심사 우대국) 배제 조치를 되돌리지 않겠다는 태도를 여러 차례 나타냈다.
한일 정상회담 등의 외교적 해법도 한국 정부가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따른 일본 기업의 피해 해결책을 마련하는 일부터 선행된 뒤에야 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21일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면서 대화의 물꼬가 트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지만 의견 차이만 확인한 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문 대통령도 일본 정부가 연장을 원했던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 파기를 선택하면서 강경대응으로 돌아선 것으로 분석된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외교전략실장은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은 우리나라보다 일본에게 훨씬 효용성 높은 협정”이라며 “문 대통령이 한국의 가장 강력한 카드를 뽑아들면서 승부수를 던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은 한국과 일본의 2급 이하 군사기밀을 공유하는 협정이다. 일본이 북한에 대응하기 위한 안보체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고 평가된다.
이 때문에 일본은 수출규제 이후에도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의 유지에 힘을 실어왔다. 북한이 최근 단거리 발사체를 연이어 발사하는 등 안보위협이 높아진 상황도 한몫했다.
이와다 다케시 일본 방위상도 22일 기자회견에서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은 한국과 일본에게 모두 유익하다”며 “연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지지통신 등이 보도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 파기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무역갈등도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정부는 28일로 예정된 한국 대상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그대로 시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별허가만 허용되는 수출규제 품목을 현재 3개에서 추가로 늘릴 가능성도 있다.
이에 맞서 한국 정부도 세계무역기구(WTO)에 일본 정부를 불공정무역 이유로 제소하기 위한 준비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과 미국 관계도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 파기에 따라 경색될 가능성이 있다.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 체결을 미국이 주도한 만큼 이 협정은 한국-미국-일본 안보협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미국 국무부는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 연장을 전적으로 지지하는 태도를 공개적으로 보였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도 최근 한국을 찾았을 때 협정 유지를 요청했다고 전해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 파기 결정은 한국과 일본의 신뢰 문제로 촉발된 상황에서 내린 결정이며 한국-미국 동맹과는 별개 사안임을 미국에 전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일본이 우리의 외교적 노력에 반응하지 않으면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 파기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미국에 알렸다”며 “미국도 우리 정부의 결정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안보 전문가는 “문 대통령이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 파기를 결정한 일은 미국이 일본 수출규제에 관련해 우리 정부의 상황을 고려하게 만드는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이런 결정이 한미관계에 악재로 작용할지는 더 지켜봐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