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문 한국투자증권 대표이사 사장이 고용보험기금 대규모 손실로 자산운용부문에서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을까 걱정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투자증권은 고용보험기금 전담 운용사로서 고용보험기금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1년 만에 500억 원에 이르는 대규모 손실을 내며 고용보험기금 수익률을 대폭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1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고용보험기금 전담 운용사인 한국투자증권은 고용보험기금 운용역량을 놓고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수익성보다 안정성을 추구해야 하는 고용보험기금 자금의 일부를 위험성이 높은 상품에 투자해 대규모 손실을 냈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은 2018년 7월 10년물 독일국채 금리 연계형 파생상품에 584억 원을 투자한 뒤 476억6천만 원 손실을 냈다. 투자를 통해 수익을 거두기는커녕 원금의 80%가량을 날린 셈이다.
한국투자증권이 투자한 파생상품은 기대수익률은 최대 연 5~6%에 그치는 반면 금리가 정해진 범위를 벗어나면 원금 전체를 잃을 수 있는 ‘초고위험’ 상품인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 주요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 완화 기조 등에 영향을 받아 올해 들어 독일국채 금리가 급락한 데 따른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이번 대규모 손실과 관련해 “고용보험기금의 손실을 방지하고 재정안정화에 기여하기 위해 투자의사결정 프로세스를 개선할 것"이라며 "주간운용사와 개별 펀드운용사를 향한 관리감독과 성과평가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보험기금 대규모 손실로 한국투자증권의 자산운용 역량을 놓고 의구심이 커지면서 정 사장은 체면을 구기게 됐다.
한국투자증권은 2015년 7월부터 2019년 6월까지 고용보험기금 전담 운용사를 맡은 데 이어 2019년 7월부터 2023년 6월까지 또 한 번 이를 맡게 되면서 외부위탁 운용관리시장을 선점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외부위탁 운용관리는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의 여유자금을 맡아 운용하는 사업이다. 당장 얻을 수 있는 수익은 크지 않지만 성장 가능성이 높아 증권사들 사이에서 ‘미래 먹거리’로 꼽히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10조 원가량인 외부위탁 운용관리시장 규모가 10년 안에 1천조 원가량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만큼 고용보험기금 전담 운용사 입찰에도 많은 증권사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 고용보험기금 전담 운용사로 선정되면 외부위탁 운용관리시장에 자산운용 역량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이번 고용보험기금 대규모 손실 탓에 앞으로도 외부위탁 운용관리시장에서 자산운용 경쟁력을 보이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용보험기금 전담 운용사로서 지위 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도 일각에서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매년 초 지난해 자산운용 성과 등을 반영해 점수를 매긴 뒤 주간운용사 지위 유지 여부를 평가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점수가 50~70점에 해당하면 주의 조치를 내리고 50점 미만이면 지위를 박탈한다”며 “이번에 대규모 손실을 낸 것도 평가에 반영하며 지위 유지 여부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손실을 본 금액이 500억 원에 이르기 때문에 고용보험기금 수익률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한국투자증권은 파생결합증권(DLS) 불완전판매 논란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은 8월 안에 파생결합증권을 판매한 은행과 증권사를 대상으로 현장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원금 손실 가능성이 높아 논란이 되고 있는 파생결합증권의 기초자산은 주로 미국과 영국의 이자율스와프(CMS) 금리, 독일국채 10년물 금리 등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7일 기준 국내 금융회사의 주요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상품 판매잔액은 8224억 원 수준이다.
금융회사별로 살펴보면 우리은행 4012억 원, KEB하나은행 3876억 원, KB국민은행 262억 원, 유안타증권 50억 원, 미래에셋대우증권 13억 원, NH투자증권 11억 원 등으로 파악된다.
증권사는 은행보다 파생결합증권 판매 규모가 작아 불완전판매 논란에서 비교적 벗어나 있었는데 금감원이 증권사도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조사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진다.
파생결합증권 불완전판매 논란이 증권사로도 번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투자증권은 이를 피해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파생결합증권을 판매한 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이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