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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겸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 |
3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그룹을 대표해 공식석상에 처음 선 시간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과의 자리였다. 공교롭게도 이 부회장의 생일이었다.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실질적 오너로서 국민들과 첫 소통에 나선 자리가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 사태에 대한 사과인 것은 그만큼 삼성그룹의 위기의식이 크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삼성서울병원이 보여준 메르스 사태에 대한 허술한 대응은 ‘1등주의’를 추구하는 삼성그룹의 오만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비판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추진과 겹쳐져 ‘안티 삼성’이 확산되는 상황으로 번졌다.
이는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를 준비하는 삼성그룹에게 위기감을 안겨줬다. 또 이재용 부회장의 리더십도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부회장이 23일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 “사죄‘라는 말을 쓰며 90도 가까이 허리를 숙인 것도 이런 위기감을 반영한 것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을 대표하는 얼굴로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준 셈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은 3분 동안 사과문만 낭독하고 총총히 사라지면서 삼성그룹을 이끌고 갈 리더십에 대한 일말의 의문도 남겨놓았다.
◆ 이재용, 삼성그룹 오너로서 책임감 보여
이 부회장은 이날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으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지 한 달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이 부회장으로서 삼성서울병원 메르스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억울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삼성서울병원 메르스 사태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데에 ‘1등 삼성’이 메르스 사태를 악화했다는 삼성에 대한 반감이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
메르스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병원감염이 늘어났지만 삼성서울병원의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병원상황 등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어 병원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삼성서울병원을 보호한 것이라는 의혹이 일었다.
그런데도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 사태를 따지는 국회에서 과장을 내보냈고, 그 과장은 “정부가 뚤렸다”고 병원의 책임을 회피해 국민적 분노에 불을 질렀다.
삼성서울병원은 병원장이 직접 나서 사과하고 병원 부분폐쇄 조치를 취하고 삼성그룹 사장단은 지난 17일 수요사장단 회의에서 “깊이 반성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과정에서 메르스 사태에 대해 이 부회장이 책임지고 수습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졌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19일 삼성서울병원 정문 앞에서 "일류병원을 추구해 온 삼성서울병원은 환자안전에 무방비였으며 감염예방과 환자안전에서도 낙제였다"며 "이재용 삼성공익재단 이사장이 사태수습의 전면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이 부회장은 직접 나서서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방안을 선택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사과문에서 병상에 있는 이건희 회장을 언급했다. 메르스 환자와 가족들의 불안과 고통에 공감을 표시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승계자로서 책임감을 다진 것이다.
이 부회장은 이날 사과문에서 사죄라는 말과 함께 책임이라는 단어도 여러 차례 사용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사죄는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의 의무이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며 “이번처럼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의 경우 아무나 총대를 메겠다고 나설 수 없는 만큼 이 부회장은 삼성그룹 오너로서 책임감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부회장이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대대적 개혁을 예고한 점도 삼성그룹 최종 의사결정권자로서 책임감을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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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 이재용 리더십에 아쉬움 남겨
이 부회장은 18일 밤 삼성서울병원의 민관합동 메르스대책본부를 찾았다. 이 부회장은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사과의 뜻을 밝혔다고 삼성그룹은 전했다.
그러나 직접 사과를 한 것이 아니라 삼성그룹을 통해 전해진 사과였다. 삼성그룹 사장단의 사과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진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일각에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지나가려고 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 부회장이 이번에 직접 사과에 나섰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이 부회장은 이날 3분에 걸쳐 미리 준비해 온 발표문을 읽는 것으로 사과를 마쳤다. 이 부회장은 기자들의 질의응답도 받지 않았다. 송재훈 삼성서울병원장이 이 부회장을 대신해 후속대책을 설명했다.
미국의 정신과 전문의 아론 라자르는 저서 ‘사과 솔루션’에서 사과가 갈등과 위기를 해소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사과를 나약함의 상징처럼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과의 행위는 위대한 힘을 필요로 한다.” 라자르는 사과행위에서 타이밍을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이 부회장은 직접 사과의 뜻을 밝히면서 삼성그룹에 쏟아진 부정적 시선을 정면으로 돌파하려는 의지를 보였지만 타이밍을 놓쳤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는 곧 이 부회장이 위기상황에서 결단하는 리더로서 모습을 보여주는 데 성공하지는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각에서 이번 사과 역시 이 부회장의 결단이라기보다 수습을 촉구하는 여론에 등이 떠밀려 나선 것이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이번 사태에 대해 직접 나서 무조건적 사과를 한 것은 다행스럽다”면서도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까지 나서 사과를 촉구한 뒤에야 입을 연 것은 다소 때늦은 것이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 이재용, 리더십 의문을 어떻게 해소하나
이 부회장이 사과에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거대그룹 계열사 한 곳의 잘못에 그룹 오너가 직접 나서 사과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이번 사과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놓고 삼성그룹이 엘리엇매니지먼트와 힘겨운 다툼을 벌이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고 나서면서 국내에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삼성그룹 승계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그룹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밝혔을 때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그룹 승계를 위한 합병이라고 여겼지만 당연한 일로 사실상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를 위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의문을 제기했고 이번 합병의 정당성을 따져보는 시각은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삼성서울병원 메르스 사태와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에 대한 정당성과 리더십에 대한 의문을 품도록 만들었다.
메르스 사태와 삼성물산 합병이 이 부회장의 리더십을 시험대에 올렸다는 평가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부회장이 메르스 사태에 대해 직접 사과한 것은 이 부회장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을 불식시키는 것이 아니라 출발선에 세웠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 부회장이 삼성그룹을 승계하고 대표하는 데 동의를 받을 수 있는 리더십과 소통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소통에 인색하고 밀실에서 의사결정하는 시대는 막을 내린 것 같다”며 “이 부회장이 이번 직접 사과를 통해 삼성그룹 대표로서 직접 소통을 시도한 만큼 삼성그룹의 현안들에 대해 오너로서 결단하고 외부와 의사소통하는 리더십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