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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이 2013년 10월 18일 농협중앙회에서 열린 국회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들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시스> |
NH농협금융지주회사는 올해 출범 3년차에 접어들었다. 농협금융지주사 출범까지 많은 고통이 따랐다. 경제사업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길 요구하는 조합원들과 수익사업에 집중하려는 농협의 힘겨루기는 치열했다.
농협중앙회에 회장이 있지만 농협금융지주의 수장도 역시 회장이라고 불린다. 이 직함에는 농협금융지주가 농협중앙회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자적 금융회사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가 담겨있다.
하지만 지난 2년을 돌아보면 여전히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의 입김이 거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농협금융지주사의 회장은 직함만 회장일 뿐 농협중앙회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처지다. 한 전문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어머니 격인 중앙회 회장과 시누이인 중앙회 출신 이사들에게 시달리는 며느리와 같은 처지라는 것이다.
◆ 19년 걸린 ‘NH농협금융지주회사’ 출범
2012년 3월2일 농협중앙회가 신용부문과 경제부분을 분리하고 ‘1중앙회 2지주회사’ 체제로 출범했다. 농협중앙회 신용부문은 ‘농협금융지주회사’로 이름을 바꾸고 은행과 보험기능을 전담하게 됐다. ‘농협경제지주회사’로 이름을 바꾼 경제부문은 농산물 판매와 유통 업무를 담당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 초기부터 줄곧 얘기됐던 ‘신경 분리’가 19년 만에 마무리된 것이다.
농협금융지주사의 출범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금융지주사 출범 전까지 농민들과 정부는 농협에 계속해 개혁을 요구했다. 농민단체들은 “농협이 돈벌이에 급급해 신용사업에만 집중한 나머지 조합원을 위한 판매사업은 손을 놓은 상태”라며 농협을 강하게 비판했다. 농협이 본업인 경제사업에 집중해 조합원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협동조합 본연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부도 농협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농협의 신용(금융)사업과 경제(유통)사업을 분리시키는 이른바 ‘신경 분리’ 방안이 지속적으로 논의됐다. 정부는 농협중앙회가 모든 사업을 총괄하는 종합농협체제를 개혁하고 금융지주사를 설립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농협은 농민단체와 정부의 이런 요구에 반발했다. 농협은 중앙회가 신용사업과 교육지원사업, 경제사업을 모두 담당하는 당시 체제가 훨씬 높은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중앙회의 권한이 축소될 것이라는 내부의 우려가 자리하고 있었다. 지주사 체제로 개편되면 중앙회 회장의 지배권이 축소돼 인사추천 등 내부 장악력이 약화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동안 농협 개혁안이 번번이 좌절됐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농협의 반대였다.
농협 개혁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은 2010년 11월부터였다. 농협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정면으로 맞으며 신용사업이 위기에 빠지게 됐다. 농협 신용사업 수익은 2007년 1조3천억 원에 달했는데 금융위기 이후 2009년 신용사업 수익은 1512억 원까지 급감했다. 당시 농협의 한 관계자는 “비금융권 인사들이 중심인 농협중앙회 이사회에서 신용사업과 관련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신용사업에서 번 돈을 조합원 지원에 쓰는 현 구조로 금융시장에서 생존이 어렵다고 봤다”고 말했다.
농협 개혁은 2011년 3월 농협법 개정안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하면서 마무리됐다. 농협중앙회는 농협의 요구대로 유지됐다. 대신 정부의 신경 분리 방안이 받아들여져 ‘1중앙회-2지주회사’ 체제가 만들어졌다. 농협중앙회가 존속됨에 따라 농협중앙회장은 여전히 두 지주회사의 경영권과 인사권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 15개월 동안 2명이 교체된 금융지주 회장
농협금융지주는 출범한지 겨우 2년 밖에 안됐지만 지금까지 3명의 회장을 맞아들였다. 임종룡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회장직을 맡기 전 불과 15개월 동안 2명의 회장이 교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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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충식 전 NH농협금융지주 회장 <뉴시스> |
초대 회장인 신충식 전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2012년 3월 취임했다. 충남 예산 출신인 신 전 회장은 서울 용산고와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1979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했다.
신 회장은 신경 분리를 앞두고 2012년 2월 다른 임원들과 함께 사의를 표명하며 물러난 상태였다. 하지만 농협중앙회가 신 회장을 불러 농협금융지주회장과 농협은행장으로 내정하면서 두 자리를 모두 겸직하게 됐다.
신 회장은 오랫동안 회장직을 맡지 못했다. 신 회장은 취임 98일 만인 2012년 6월 돌연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다만 은행장직은 유지하기로 했다. 신 회장은 이날 열린 임시 경영위원회에서 “금융지주 출범 당시 조직의 안정이 최우선이라 회장과 은행장직을 겸직했는데 이젠 조직이 어느 정도 추슬러졌으니 은행장직에만 전념하겠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선 신 회장이 회장직에 큰 부담을 느낀 나머지 사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해석했다. 원래 농협은 금융지주사 출범과 함께 회장과 은행장을 따로 둘 예정이었으나 ‘낙하산 논란’ 등이 나오면서 신 회장이 어쩔 수 없이 회장과 은행장을 겸직하게 됐다는 것이다.
농협중앙회가 압력을 가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금융지주사가 출범했지만 농협중앙회장의 입김은 여전히 거셌다. 따라서 신 회장 독자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신충식 회장의 뒤를 이어 금융지주사를 맡게 된 인물은 신동규 전 은행연합회장이었다. 신동규 회장은 2012년 6월 농협금융지주의 신임 회장으로 부임했다.
신 회장은 경남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영국 웨일즈대에서 금융경제학 석사를 받고 경희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해 금융정책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신 회장은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했고 한국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 재무부, 재정경제원 등을 거쳐 2003년 한국수출입은행장으로 취임했다. 2008년부터 전국은행연합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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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규 전 NH농협금융지주 회장 <뉴시스> |
신 회장도 채 1년을 넘기지 못하고 회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신 회장은 “농협금융지주가 새 회장의 리더십 아래 설립 목적에 걸맞게 운영돼 명실상부한 국내 유수 금융지주회사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며 지난해 5월 사의를 표명했다. 신 회장의 사퇴 이후 이성희 감사위원장과 김수공 농업경제대표이사 등 8명 가량의 농협 최고경영진들도 사표를 냈다.
신동규 회장을 비롯해 농협 최고위층 인사들이 대거 물러나는 과정에서 농협중앙회 회장과 농협금융지주 회장 사이의 권력다툼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금융지주사 경영진이 대주주인 농협중앙회와 최원병 중앙회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사실로 드러났다는 말들이 튀어나왔다.
특히 신 회장의 이른바 ‘제갈공명 발언’이 알려지면서 농협중앙회와 금융지주사의 갈등설이 기정사실화됐다. 신 회장은 사퇴 후 언론과 통화에서 “농협법은 대주주를 왕으로 만들어 놨다”며 “금융지주회사법과 농협법이 충돌하는 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제갈공명이 회장이 되어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 회장은 사퇴 이유에 대해 “농협중앙회 쪽에서 최근 불거진 전산망 해킹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달라는 신호가 있었다”며 “내가 책임질 일은 아니지만 내 선에서 물러나주기를 바라더라”고 털어놓았다.
신 회장의 뒤를 이어 임종룡 회장이 2013년 6월 3대 농협금융지주회장으로 취임했다. 임 회장의 취임이 결정되자 신 회장은 “이런 난리를 겪었으니 내 후임은 좀 나을 것”이라며 “농협중앙회도 이젠 좀 달리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 회장은 퇴임 순간까지도 농협중앙회가 금융지주사의 경영에 사사건건 간섭했던 것을 꼬집었던 것이다. 신 회장 바람대로 농협중앙회가 과연 달라질 것인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