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 위탁생산사업을 별도 회사로 분사해 상장하는 등 사업 운영방식에 대규모 변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글로벌 위탁생산 고객사의 신뢰를 얻기 위해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설계사업과 위탁생산을 확실하게 분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23일 외국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삼성전자가 공격적으로 추진하는 시스템반도체 성장 목표를 두고 회의적 시각이 이어지고 있다.
시스템반도체사업의 핵심인 위탁생산분야에서 1위업체인 대만 TSMC의 시장 지배력과 기술력이 막강해 삼성전자가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 이유로 꼽힌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특히 삼성전자가 위탁생산을 맡기는 시스템반도체 고객사의 신뢰를 얻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어 TSMC과 경쟁에서 약점을 안고 있다고 분석했다.
TSMC는 1980년대부터 반도체 위탁생산 중심의 사업모델을 구축하고 다수의 고객사와 오랜 협력관계를 맺어왔지만 삼성전자는 훨씬 늦은 시점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위탁생산은 당초 외부 고객사 확보가 주요 목적이 아니라 삼성전자가 직접 개발하는 모바일 프로세서 ‘엑시노스’ 등 제품의 생산을 위해 시작됐다.
애플의 초기 아이폰용 프로세서와 퀄컴 프로세서 일부를 위탁생산한 경험을 제외하면 대형 반도체기업의 제품을 양산한 경험도 거의 없기 때문에 고객사의 인정을 받기가 쉽지 않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고객사와 이해관계 충돌이 발생할 공산이 크다는 점도 위탁생산사업의 성장에 큰 걸림돌로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과 자체 시스템반도체 등 다양한 사업을 갖추고 있어 대부분의 반도체 고객사와 경쟁하는 상황인데다 고객사의 기술 유출 우려도 해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고객사의 반도체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한 법적 규정과 절차를 강화하며 위탁생산사업의 신뢰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증권사 번스타인은 “신뢰는 단순히 서류상으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삼성전자가 고객사에 신뢰를 받으려면 수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TSMC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를 통해 “TSMC는 삼성전자와 달리 고객사와 절대 경쟁하지 않는다”며 “고객사가 삼성전자를 신뢰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사업영역을 모바일 프로세서 외에 인공지능 반도체와 그래픽반도체, 통신반도체와 자율주행 반도체 등으로 넓혀가고 있는 만큼 고객사의 우려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시스템반도체 설계사업과 위탁생산을 같이 하는 것이 고객사 확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위탁생산을 포함한 시스템반도체에 133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만큼 이런 약점을 계속 안고 가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위탁생산사업을 별도 회사로 분사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검토해야만 한다는 목소리가 증권가를 중심으로 꾸준히 나오는 이유다.
이동주 SK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위탁생산사업을 분리해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는 방안까지 검토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위탁생산사업을 별도로 상장한다면 시스템반도체 설계사업과 더욱 거리를 두고 기업 투명성을 높여 고객사에 신뢰를 높이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위탁생산사업의 인지도 확보와 투자자금 조달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시스템반도체사업은 연간 영업이익 1조 원 안팎을 내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삼성전자가 133조 원의 투자재원을 자체적으로 마련하고 집행하는 것은 부담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연간 연구개발에 3조 원 이상, 시설 투자에 10조 원 이상을 쓰는 TSMC를 따라잡으려면 삼성전자도 적극적으로 투자를 확대해야만 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삼성전자가 미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미국 텍사스주 반도체 위탁생산공장에 대규모 시설 투자계획을 발표할 가능성도 최근 힘을 얻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삼성전자 반도체 위탁생산 성장의 관건은 결국 신뢰와 자금 확보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