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디스플레이소재 수출규제를 도입하면서 삼성디스플레이가 애플에 공급하던 아이폰용 올레드패널 물량 일부를 중국에 빼앗길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일본의 수출규제에 실제로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낮지만 아이폰용 올레드 수급처를 넓힐 기회를 노리던 애플이 이번 사태로 명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10일 대만 디지타임스 등 외국언론 보도에 따르면 애플이 일본의 디스플레이소재 수출규제를 계기로 중국 BOE의 올레드패널 수급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애플은 현재 삼성디스플레이에만 의존하고 있는 아이폰용 올레드패널 수급처를 다변화하기 위해 LG디스플레이와 BOE 등 다른 패널업체와 계속 논의를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BOE는 아이폰에 중소형 올레드패널을 공급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두고 애플에 품질 인증을 받기 위해 꾸준히 기술을 개발하면서 공급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BOE는 중국 화웨이의 ‘P30’ 등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올레드패널을 공급하며 품질과 양산 능력을 검증받았고 이미 애플에 LCD패널도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애플이 BOE와 중소형 올레드 공급계약을 새로 추진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메모리반도체와 올레드패널 등 아이폰 핵심부품 공급사인 삼성전자와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데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으로 미국정부의 눈치도 살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디스플레이 수출규제로 삼성디스플레이가 중소형 올레드 생산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발생하면 애플은 중국으로 패널 수급처를 다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일본정부가 최근 한국에 수출규제 대상으로 삼은 품목에는 중소형 올레드 생산에 활용되는 불화수소와 플루오린폴리이미드가 포함된다.
물론 삼성디스플레이가 일본정부의 규제에도 중소형 올레드 생산에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폴더블(접는) 스마트폰용 필름을 제외한 디스플레이 소재는 국내업체에서 공급하는 물량으로 대체가 가능하고 디스플레이 생산에 쓰이는 불화수소 물량은 반도체와 비교해 훨씬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플은 실제로 삼성디스플레이의 생산 차질 여부를 걱정하기보다 중국업체와 올레드패널 거래를 시작할 정당한 이유가 필요했기 때문에 충분히 이번 사태를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애플은 아이폰용 올레드패널 물량을 약속한 만큼 사들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근 삼성디스플레이에 1조 원 가까운 보상금을 지불한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애플과 올레드 공급 협상에서 우위에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반면 애플이 BOE와 같이 중소형 올레드패널 공급이 절실한 업체에서 물량을 받는다면 삼성디스플레이와 거래할 때보다 가격과 계약조건 등에서 훨씬 유리한 위치에 놓일 공산이 크다.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BOE는 올해 연말과 내년에 잇따라 새 중소형 올레드 생산공장 2곳의 가동을 시작한다. 내년 출시되는 아이폰에 올레드 공급을 염두에 두고 생산능력을 키우는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 조사기관 유비리서치도 “BOE의 중소형 올레드 출하량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며 “양산 기술력까지 확보한다면 내년 출시되는 아이폰에 패널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증권가에서는 일본정부가 세계 전자업계에 미칠 여파와 일본기업이 받을 타격을 우려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소재의 수출규제를 지속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삼성디스플레이는 일본의 규제에 따른 직접적 영향보다 이번 사태가 중국의 중소형 올레드시장 진출을 돕는 데 지렛대가 될 가능성에 촉각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LG디스플레이도 애플에 올해 처음으로 아이폰용 올레드패널을 공급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일본정부의 규제가 변수로 등장하면서 불안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애플은 최근 중소형 올레드시장 진출을 준비중인 일본 재팬디스플레이에 사업 운영자금을 지원하는 등 한국업체에 디스플레이 의존을 낮추기 위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