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비철금속업계에 따르면 영풍그룹의 순환출자고리 가운데 가장 해소가 어려울 것으로 평가됐던 고려아연 고리가 끊어져 계열분리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마무리됐다.
영풍그룹은 1949년 장병희 최기호 공동창업주가 설립한 영풍기업사에서 시작해 70년 동안 공동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지속적으로 영풍그룹의 계열분리 가능성이 나왔다.
장병희 창업주의 가문이 그룹의 대표회사인 영풍을 경영하고 최기호 창업주의 가문이 그룹의 핵심 계열사 고려아연을 이끌고 있다. 영풍과 고려아연 모두 아연 제련이 주력사업이다.
영풍은 그룹 차원에서 영풍전자, 인터플렉스, 시그네틱스, 코리아서키트 등 자회사를 통해 전자재료사업을 새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7개의 순환출자고리를 통해 신사업 육성자금을 마련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순환출자 해소 압력이 거세지자 영풍그룹은 2017년과 2018년에 걸쳐 6개의 순환출자고리를 해소했지만 '고려아연 고리'만은 끊지 못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1천억 원이 넘는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일 장형진 영풍그룹 회장이 서린상사에서 보유한 영풍 지분 10.36%(19만820주)를 1주당 70만 원에 모두 매수했다. 개개인재산 1335억7400만 원을 넣어 그룹의 마지막 순환출자고리를 끊었다.
영풍은 경상북도 봉화군의 석포제련소에서 아연을 제련하는데 석포제련소는 조업정지 120일 처분의 사전통지를 받고 지방자치단체의 청문회를 준비하고 있다.
비철금속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련소의 전기로가 120일 동안 가동을 멈춘다면 곧바로 재가동을 할 수 없다"며 “복구에 드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실제 조업정지 기간이 1년까지 길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 영풍은 전자재료사업 등 새 성장동력으로 추진한 사업의 규모를 상당히 불려뒀다. 때문에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제련소가 1년 동안 조업하지 못하더라도 전자재료사업이 힘을 낸다면 어느 정도 이익을 보전할 수 있다.
실제 최근 10년 동안 영풍의 별도기준 연 매출보다 자회사들의 연 매출 합계가 더 크다. 영업이익은 업황에 따라 부침이 있으나 2017년 영풍의 연결 영업이익 1594억 원 가운데 자회사들이 84.4%에 이르는 1345억 원을 거뒀을 정도로 성장성이 있다.
문제는 전자재료사업을 육성하기 위한 투자자금 마련이다. 2019년 1분기 기준으로 영풍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615억 원에 그친다.
고려아연은 5726억 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여유로우나 영풍그룹이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 제한 대상으로 지정돼 있어 영풍의 계열사에 출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자산규모가 10조 원을 넘는 기업집단은 그룹 내 상호출자가 제한된다.
2019년 1분기 기준으로 영풍의 연결 자산은 4조6647억 원, 고려아연의 연결 자산은 7조1518억 원으로 그룹의 자산 규모가 11조8165억 원에 이른다.
▲ 최창근 고려아연 회장.
하지만 계열분리를 통해 경영체계가 나뉜다면 고려아연이 영풍에 출자할 수 있게 돼 영풍은 이를 통해 전자재료사업 육성에 투자할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
영풍 석포제련소가 조업정지를 면하더라도 계열분리를 통해 신사업을 강화할 기회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영풍그룹에서 3세경영이 본격화되고 있어 지금이 계열분리의 적기라는 관측도 나온다.
최윤범 고려아연 부사장이 지난 3월 신임 대표이사 사장에 오르며 영풍그룹의 3세경영이 본격화됐다. 최 사장은 최기호 창업주 가문의 2세 경영자 가운데 첫째인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의 둘째 아들로 3세 경영자 가운데 처음으로 대표이사를 맡았다.
앞선 2월에는 장세환 서린상사 부사장이 대표이사 사장에 올랐다. 장세환 사장은 장형진 회장의 차남이며 최윤범 사장과 마찬가지로 가문의 3세 경영자 가운데 첫 대표이사다.
영풍그룹은 계열분리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시기상조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영품그룹 한 관계자는 "두 가문이 영풍과 고려아연 지분을 나눠들고 있고 지분 외에도 정리해야 할 사안들이 많아 당장 계열분리를 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최기호 창업주 가문의 특수관계인은 영풍 지분 17.65%(24만773주)를, 장병희 창업주 가문의 특수관계인은 고려아연 지분 3.24%(29만5950주)를 각각 들고 있다. 2일 마감가격 기준으로 지분 가치가 각각 1726억 원가량, 1351억 원가량이라 단기간에 지분관계를 정리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작지 않다.
장세환 사장이 2월부터 고려아연 계열의 서린상사에서 대표를 맡고 있으며 최창규 회장이 영풍 계열의 영풍정밀 대표이사에 올라 있는 등 공동경영을 지속하고 있어 계열분리가 조만간 이뤄질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영풍그룹 관계자는 “고려아연이 영풍의 영업을 도와주는 등 업무적 관계에서도 아직 그룹이 계열분리를 진행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순환출자고리가 해소됐다고 해서 곧바로 계열분리를 이야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강용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