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중공업 갑질 피해자 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인 김도협 대한기업 대표(왼쪽)와 이원태 동영코엘스 대표가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
“일해도 월급을 못 받는 구조다.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관행부터 바꿔야 한다.”
현대중공업에 임금체불 책임을 묻는 하청노동자들의 목소리다. 이번에는 불만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현대중공업이 저가수주를 해놓고 그 손해를 하청업체들에 떠넘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14일 현대중공업 노조에 따르면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사내하청지회와 현대중공업지부 고용법률실은 현재 하청노동자들로부터 체불임금 피해 및 문의를 접수 중이다.
이들은 사내하청노동자 소식지를 통해 “하청노동자들이 모두 뭉쳐서 떼인 돈을 받아내야 한다”며 “체불 당사자들이 피해를 보고하면 조합 차원에서 지원하고 엄호해 원청에 직접 지불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당 울산시당은 최근 울산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협력업체들의 기성금 보장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철저한 조사,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 등을 촉구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하청업체들은 그동안 현대중공업이 기성금을 부당하게 삭감해 적자와 임금체불 사태를 불렀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최근에는 협력업체들이 기성금 전자세금계산서 서명을 거부하는 집단행동에 들어가기도 했다. 2월에도 협력업체들이 작업 개시의 전자서명에 동의하지 않자 현대중공업이 '상생경영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업체마다 1억5천만 원가량씩 20개월 대출을 해줬는데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현대중공업 건조1부의 송광, 예림이엔지, 하양, 화성기업과 건조5부의 성진ENG, 서흥, 성경기업, 중원산업 등 8개 업체는 8일 전자서명을 거부하고 직원들에게 3월분 임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공표했다.
이들과 함께 현대중공업 도장1부의 해도산업, 금영산업, 동영테크, 대선이엔지, 정민과 도장2부의 기린테크, 대건, 동산, 삼우이엔지, 현성기업 등 10개 업체도 임금체불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현대중공업으로부터 받아야할 기성금이 턱없이 낮게 책정돼 임금을 줄 형편이 안된다는 것이다. 하청업체들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이 제시한 기성금은 임금 지불에 필요한 돈의 20~30%이거나 많아야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청업체 대표들로 구성된 '현대중공업 갑질 피해자 대책위원회(대책위)'의 김도협 위원장(대한기업 대표)과 이원태 동영코엘스 대표는 지난해 현대중공업을 공정거래위원회에 고발한 데 이어 현대중공업 울산 본사 정문 앞에서 50일이 넘도록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업체장들뿐 아니라 소속 노동자들도 들고 일어났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2천여 명(하청업체 측 추산, 업계 추산은 1천여 명)은 8일부터 작업거부에 돌입했다.
이후 현대중공업이 협력사들에게 도급계약이행 공문을 보내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경고하면서 2개 업체를 제외한 대부분의 업체가 12일쯤 전자서명을 했지만 작업 거부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김도협 대책위원장은 "전자서명은 작업을 재개하겠다는 '의사 표시'인데 지금은 업체장들뿐 아니라 노동자들이 직접 행동에 나섰기 때문에 업체장들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으나 현재 1천여 명 정도가 여전히 작업을 거부 중이고 앞으로도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만든 단체에 소속된 500여 명은 확실히 작업 거부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청업체들은 대규모 체불이 계속되는 이유로 현대중공업이 폴라리스쉬핑 등 선주사로부터 초대형 광석운반선(VLOC)과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을 저가수주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 선종을 현대중공업 1,2,8,9도크에서 내년까지 작업해야 하는데 그에 따른 손해를 고스란히 하청업체들에게 전가했다는 것이다.
하청업체 관계자는 "지금 구조대로라면 4월을 지나 하반기까지 1,2,8,9 도크는 일을 해도 월급이 체불될 수 밖에 없다"며 "시스템 자체가 바뀌어야 하는 것이지 무턱대로 일을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등 조선3사는 고질적으로 '하도급 단가 후려치기' 의혹에 시달려왔다.
도급계약서상 원칙적으로는 하청업체들이 현대중공업에서 시공의뢰서를 받고 이를 토대로 견적서를 작성해 개별 계약서를 체결한뒤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
그러나 대책위는 현실은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주간 공정일정이 먼저 나오고 공정대로 작업을 진행하면 계약은 월말에 이뤄진다는 것이다. 하청업체들이 공사금액을 전혀 알지 못한 채 공사를 진행하는 '선공정 후계약'으로 공사가 진행되며 이후에 현대중공업이 일방적으로 공사대금을 매긴다는 것이다.
대책위에 따르면 동영코엘스는 현대중공업과 24년 동안 해상용배전반 협력업체로 일했는데 2015년 원견적금액보다 35% 낮은 528억 원에 일괄발주방식의 납품계약을 했다. 이후로도 손실을 떠안고 납품하다 1년 만에 100억 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보고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또 다른 협력업체인 대한기업도 시공비용을 5억5천만 원 썼지만 현대중공업이 기성금으로 3억3천만 원만 주는 등 '대금 후려치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현대중공업은 미리 합의된 계약에 따라 기성금을 정상적으로 지급했다고 반박한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협력사와 계약은 물량 도급계약으로 매달 공정률에 따라 공사대금을 지급하는 형태이며 공사가 마무리되면 계약상 공사금액 가운데 남은 부분을 모두 지급한다"며 "경영이 어려운 협력사에 상생발전기금 운용 등 자금 지원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논란을 두고 지난해부터 공정위 조사도 진행 중이다. 비슷한 혐의를 받은 대우조선해양이 과징금 108억 원과 검찰 고발 처분 등을 받은 점을 감안하면 현대중공업도 안심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현대중공업의 하도급 횡포에 관한 공정위 조사결과는 6월 발표된다. [비즈니스포스트 고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