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회장이 올해 공개석상에서 잇달아 내년 3월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을 두고 정치권의 흔들기가 잦아들기를 바란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지만 상황은 이런 기대와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 황창규 KT 대표이사 회장이 1월1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회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KT 새 노조와 시민단체 약탈경제반대행동은 이날 KT 회장을 배임죄 등으로 고발하겠다고 밝히며 회장 사퇴를 촉구했다.
새노조는 성명을 통해 “자문위원들이 회사를 위한 조직이 아니라 회장을 위한 조직이라는 문제 제기가 꾸준히 이어져 왔다”며 “황 회장 등 관련 경영진을 놓고 자문료 지급 경위를 추가로 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 회장을 향한 정치권의 의혹 제기가 사퇴 압박과 검찰 고발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이에 앞선 25일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황 회장이 직접 정치권 인사, 고위 공무원 출신 등을 경영고문으로 위촉하고 민원 해결 등 로비에 활용했다는 주장과 함께 관련 문건을 공개했다.
정치권이 특정 기업의 최고경영자를 향해 집중적으로 공세를 취하는 것이 이례적이라는 점에서 황 회장의 연임 자체가 ‘괘씸죄’에 걸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황 회장이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에 연루됐다는 논란에도 연임을 한 것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이 정치권에서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황 회장의 연임이 확정된 것은 2017년 3월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뒤 정치권에서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고 있어 여야 모두 KT 회장의 연임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던 때다.
KT나 포스코 회장은 정권교체와 함께 교체돼 왔지만 회장 교체시기가 대통령 권한대행체제라는 권력 공백기와 맞물리면서 황 회장이 연임을 할 수 있었다는 관측이 당시 우세했다.
이후 제19대 대통령 선거로 더불어민주당이 집권에 성공하면서 황 회장은 ‘이전 정권’의 인사로 여겨진 만큼 자진해 사퇴할 것이라는 시각이 있었지만 황 회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권오준 전 포스코 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도 황 회장은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황 회장은 지난해 정치권 ‘쪼개기 후원금’과 관련해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경찰수사를 받는가 하면 황 회장 이름 앞으로 구속영장도 청구됐다. 하지만 황 회장은 흔들림이 없었다.
아현 통신국사 화재를 놓고 국회에서 사퇴요구까지 받았지만 황 회장은 버텼다.
황 회장이 '로비 사단'을 운영했다고 주장해 궁지에 몰고 있는 이철희 의원은 1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황 회장이 아현국사 화재와 관련해 책임질 부분은 책임지고 사퇴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사퇴를 요구했다.
같은 달 김종훈 민중당 의원은 KT민주동지회와 함께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과거 국정농단 사태와 통신대란까지 황 회장이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과정에서 황 회장이 남은 임기를 채우고 더 이상 연임하지 않겠다고 거듭 밝히면서 정치권의 공세가 잦아드는 듯했으나 잠시였다.
이 의원이 회삿돈 20억 원을 들여 ‘로비사단’을 운영했다며 황 회장을 다시 겨냥하고 KT안팎에서 황 회장을 놓고 검찰 고발이 이어지면서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검찰은 KT의 쪼개기 후원금 수사에 다시 본격적으로 나섰다.
황 회장이 최근 실시한 KT 인사가 정치권의 공세와 무관치 않다는 시각도 있다.
황 회장은 지난해 11월 그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인회 KT 경영기획부문장을 사장에 임명한 데 이어 11일에는 김 사장을 KT 사내이사로 올렸다. 이를 두고 KT 안팎에서는 김 사장이 차기 회장에 가장 가까운 자리에 배치됐다는 말이 나오고 황 회장이 자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섭정’이 가능한 구조를 짰다는 억측도 나돌았다.
황 회장의 심경은 복잡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검찰이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자녀의 특혜 채용 문제에 이어 국회의원 쪼개기 후원 의혹은 물론 고문 위촉을 통한 로비 문제까지 들여다본다면 황 회장이 책임을 져야 할 일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편 KT 관계자는 이날 “경영고문과 관련해서는 관련 사업부서의 판단에 따라 정상적으로 계약을 맺고 자문을 받아왔다”고 해명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