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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오롱과 듀폰, 그 치열했던 5년 소송

이민재 기자 betterfree@businesspost.co.kr 2014-04-04 19:4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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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오롱과 듀폰, 그 치열했던 5년 소송  
▲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뉴시스>

코오롱인더스트리가 듀폰과 벌인 1조 원대 항소심에서 승리했다. 소송 5년 만에 이웅열 코오롱 회장에게 웃음을 선사한 것이다. 이번 승리로 코오롱이 재판에서 승기를 잡음에 따라 앞으로 이어질 소송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소송의 핵심인 ‘아라미드’는 첨단 합성섬유다. 아라미드는 강력한 내구성을 보유하고 있는데 같은 무게의 강철보다 강도가 5배나 높다. 열과 화학약품에 대해서도 강한 내성이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현재 방탄복과 헬멧, 산업현장에서 사용되는 밧줄이나 케이블 등의 소재로 쓰인다. 현재 2조~3조 원 규모로 추정되는 아라미드 섬유 시장은 매년 10% 이상 가파른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업계는 앞으로 용도가 늘면서 성장세가 더 커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아라미드 시장에 먼저 뛰어든 곳은 미국 화학회사인 ‘듀폰’이었다. 듀폰은 1965년 아라미드 섬유를 세계 최초로 시판했고 1973년 ‘케블라’라는 브랜드를 출시했다. 듀폰에 이어 일본 화학회사인 ‘데이진’이 아라미드 시장에 진출했다. 데이진은 ‘트와론’이란 자체 브랜드를 만들며 듀폰과 시장을 양분해왔다.


◆ 코오롱과 듀폰의 ‘질긴 인연’


아라미드를 둘러싼 코오롱과 듀폰의 전쟁은 기원이 상당히 오래됐다. 두 회사는 무려 30년 전부터 격돌했다.


코오롱은 1979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윤한식 박사팀을 지원하며 아라미드 기초연구를 시작했다. 윤 박사팀은 1984년 아라미드 섬유 펄프를 만드는 원천기술을 개발했고 이듬해 코오롱과 상용화를 위한 공동개발에 들어갔다. 하지만 상용화에 오랜 시일이 걸렸다. 코오롱은 1986년 처음으로 시험생산에 성공했지만 제품출시까지 이르지 못했다.


코오롱이 윤 박사팀으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을 무렵 듀폰은 코오롱의 아라미드 시장 진출을 견제할 목적으로 첫 소송을 냈다. 당시 듀폰은 아라미드 섬유 재료를 공급하는 네덜란드의 ‘악소’사와 함께 유럽 특허청에 소송을 냈다. 듀폰과 악소는 코오롱의 아라미드 섬유가 자신들의 중간 제품이라고 주장했다. 코오롱과 듀폰-악소의 국제특허소송은 1991년 12월 항소심판소 합의부가 윤 박사팀의 기술을 독창적인 발명이라고 최종 판결하면서 마무리됐다.


소송에서 승리한 코오롱은 2년 뒤 1993년 아라미드의 양산을 위해 설비에 투자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찾아오면서 사업을 중단해야 했다. 코오롱이 다시 아라미드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01년이었다. 코오롱은 2003년 시제품 생산에 성공했고 2005년 세계 3번째로 ‘헤라크론’이라는 독자적 브랜드를 출시했다. 코오롱은 구미에 연간 5천톤을 생산할 수 있는 규모의 설비를 마련했다.


◆ 코오롱 소송에서 2패를 당해


코오롱이 자체 브랜드를 개발하고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자 듀폰은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듀폰은 코오롱이 퇴사한 듀폰 기술자를 고용해 아라미드 섬유 관련 기술을 불법적으로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사건의 발단은 2006년 듀폰을 퇴사한 마이클 미첼 전 듀폰 직원의 퇴사였다. 미첼은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에 있는 듀폰 공장에서 25년 동안 일했는데 2006년 성과 미달을 이유로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미첼은 퇴사하기 2년 전부터 케블라 섬유 관련 업무를 맡았는데 퇴사당시 듀폰의 기밀문서를 반납하지 않았다.


미첼은 퇴사 후 코오롱과 접촉했다. 코오롱은 미첼이 가진 아라미드 섬유 기술과 마케팅 능력을 활용할 목적으로 코오롱 인더스트리의 컨설턴트로 채용했다. 미첼은 코오롱의 헤라크론 생산과 마케팅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았다.


듀폰은 2007년 미첼이 코오롱을 위해 듀폰의 전 현직 직원들을 접촉하는 사실을 알아냈다. 듀폰은 정부기관에 수사를 의뢰했고 2008년 미첼이 듀폰의 기밀을 넘긴 사실을 발견했다. 미첼은 정부수사에 협력하기로 하고 코오롱 직원과 접촉하는 장면을 증거로 남겼다. 이후 미첼은 2010년 경찰에 자수했다.


2009년 2월3일 증거를 확보한 듀폰은 미국 버지니아 연방지방법원 리치몬드 지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듀폰은 코오롱이 듀폰의 브랜드인 케블라의 영업 비밀을 훔쳤다고 주장했다.


코오롱 측은 영업 비밀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맞섰다. 이미 1991년 국제특허소송 판결에서 헤라크론이 코오롱의 자체 개발 기술이라는 점을 인정받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미첼과 접촉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미 듀폰과 다른 기술을 가지고 있어 듀폰의 영업 비밀을 알 필요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코오롱은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한편 2009년 4월 듀폰을 상대로 아라미드 섬유 시장 독점금지 소송을 제기하며 반격에 나서기도 했다.


2011년 9월14일 미국 버지니아주 동부지방법원 배심원단은 코오롱이 9억1990만 달러(약 1조 원)를 배상해야 한다는 평결을 내렸다. 듀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1심 재판부는 배심원단의 평결을 기초로 같은해 11월22일 코오롱에 영업비밀 침해 배상금 9억1990만 달러와 징벌적 손해배상금 35만 달러(약 3억7천만 원)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코오롱의 패배는 당시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소송을 맡았던 담당판사인 로버트 페인 판사는 판사 임용 전 21년 동안 ‘맥과이어 우즈’라는 로펌(법무법인)의 파트너 변호사로 활동했던 경력이 있었다. 맥과이어 우즈는 오랫동안 듀폰의 법률대행을 맡아왔고 당시 소송에서도 듀폰 측에 있었다. 특히 페인 판사는 1991년 소송 때 듀폰 측 변호인단에 관여했던 적도 있었다.


배심원단의 구성도 코오롱 측에 불리했다. 페인 판사는 듀폰 아라미드 생산 공장이 있는 버지니아주 리치몬드 지역 주민들로만 배심원단을 꾸렸다. 이들은 전문성이 없었기 때문에 기술적으로 난해한 법률공방에서 합리적 평결을 내릴 수 없었다. 재판부와 배심원단 모두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코오롱과 듀폰, 그 치열했던 5년 소송  
▲ 코오롱과 듀폰은 5년 전인 2009년부터 법정 공방을 벌여왔다.
코오롱 측은 판사기피 신청과 함께 재판부의 불공정성 문제를 계속 제기했다. 하지만 코오롱 측 요구는 모두 기각됐다. 1심 배심원들은 겨우 10시간 동안 협의를 거쳐 듀폰의 손을 들어줬다.


2012년 8월30일 미 법원은 코오롱에 향후 20년간 헤라크론을 생산하거나 판매할 수 없다는 금지 명령을 내렸다. 법원 명령에 따라 헤라크론을 생산하는 구미공장 생산라인 가동이 중단됐다. 코오롱은 다음날인 8월31일 1심 법원의 금지명령 등에 대한 가처분 및 긴급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미국 항소법원은 긴급 집행정지 신청만을 승인했고 코오롱은 가까스로 공장 재가동에 성공했다.


◆ 코오롱 2패 끝에 얻은 1승


2012년 9월4일 코오롱이 정식으로 항소를 제기했다. 코오롱은 항소심에서 듀폰의 영업 비밀 주장에 증거가 부족하다는 점과 1심에서 코오롱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증거들이 배제됐던 점 등을 제기했다. 미 연방항소법원은 같은해 9월21일 코오롱 측이 신청한 가처분 신청을 승인했다. 항소심 변론은 2013년 5월17일 종결됐다.


2014년 2월28일 항소심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코오롱에 또 다시 비보가 날아들었다. 듀폰 소송과 관련한 변호사비용 지불 소송에서도 듀폰에 패소한 것이다. 코오롱은 패소가 확정되면 추가로 1883만4175달러(약 198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 코오롱 측은 변호사 비용 관련 소송도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4년 4월3일 코오롱이 소송 5년 만에 웃을 수 있게 됐다. 항소심을 담당한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몬드 제4순회 연방항소법원이 코오롱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미 법원은 코오롱이 합리적으로 제시한 증거를 1심판사가 불합리하게 배제해 부당한 판결을 내렸다며 1심판결 파기환송을 결정했다. 미 법원은 새로운 판사가 다시 재판을 맡도록 명령했다.


이번 판결로 1심에서 확정된 배상금이 모두 무효화됐다. 이와 함께 20년간 아라미드 섬유 생산·판매 금지 명령도 효력을 잃게 됐다. 게다가 재판부가 교체되면서 소송을 진행한 지 5년 만에 드디어 전세를 역전시킬 기회를 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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