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증권가에 따르면 이날 열린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정기 주주총회에서 엘리엇매니지먼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관과 외국인, 일반 투자자들이 현대차그룹을 지지했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총이 열리기 전 보고서를 통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정기 주주총회는 지배구조 변화를 앞두고 열리는 마지막 주주총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득표 수 차이는 향후 지배구조 변화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닐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총에서 진행된 서면투표 결과 현대차그룹이 엘리엇매니지먼트를 압도적 표 차이로 이겼다는 점에서 현대차그룹에 일단 힘이 실린 분위기다.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손을 들어준 주식 수는 전체 의결권 대비 주식 총수의 20%를 넘지 못했다.
외국인투자자들이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지분을 각각 45% 안팎씩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주주는 물론 상당수 외국인투자자들도 현대차그룹의 자발적 변화 의지에 손을 들어준 것으로 풀이된다.
10개월 전 시장의 신뢰를 받지 못해 지배구조 개편안을 철회했던 전례와 비교해보면 현대차그룹의 변화 의지와 방향성에 주주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이 주총 결과에 자신감을 얻어 지배구조 개편에 과감하게 나설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만약 주총 표대결에서 현대차그룹이 엘리엇매니지먼트를 힘겹게 이겼다면 경영권을 방어하는 차원에서 현대글로비스 중심의 지배구조 개편안이 고려될 것으로 예상됐다.
현대글로비스는 정 수석부회장의 지분율이 23.29%라 이를 중심으로 지배구조를 재편하면 개편 과정에서 경영권 위협을 받을 가능성이 낮다.
그러나 주총에서 일반주주들의 확고한 지지가 확인된 만큼 당초 구상했던 대로 현대모비스를 그룹의 최상단 지배회사로 삼는 방식의 지배구조 개편이 유력하게 검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기장비(전장)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미래 자동차시장을 대비하는 차원에서라도 현대모비스를 지배회사로 두는 것이 현대차그룹으로서도 합리적 방안으로 여겨진다.
정 수석부회장은 이미 지난해 초부터 현대모비스를 그룹의 핵심 부품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밝혔으며 이에 따라 현대모비스의 그룹 내 위상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정 수석부회장이 현대모비스를 활용한 지배구조 개편안을 제시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시장에서 거론되는 유력한 시나리오로는 △현대모비스 분할 이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 △정 수석부회장의 현대모비스 지분 직접 취득 등 2가지다.
정 수석부회장이 현대모비스 지분을 직접 사들이는 방식의 지배구조 개편안이 유력한 방안으로 떠오른다.
강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이 일반주주의 지지에 낙관적 가정을 하고 지배구조 변경을 준비할 것”이라며 “정 수석부회장이 핵심지배기업(현대모비스) 지분을 직접 취득하고 지배구조 변화를 조기에 마무리하는 공격적 계획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현재 현대모비스 지분을 단 한 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기아차와 현대제철, 현대글로비스의 현대모비스 지분을 모두(23.3%) 사들이면 재배력을 높임과 동시에 현재 그룹에 존재하는 4개의 순환출자고리 또한 단번에 끊어낼 수 있다.
분할합병과 같은 복잡한 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고 단순히 지분을 사들이겠다는 선언만으로 지배구조 개편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 수석부회장에게는 매력적 선택지다.
정 수석부회장이 계열사에게서 현대모비스 지분을 모두 사들이는 데 4조7천억 원을 들여야 한다는 점이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엔지니어링 등의 지분을 매각하면 필요 자금 규모는 1조 원가량으로 줄어든다.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추진했던 방식의 지배구조 개편 카드를 다시 꺼내들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를 인적분할한 뒤 이 가운데 하나의 법인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해 그룹의 지배회사로 삼으려고 했지만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합병비율을 문제 삼으며 거세게 반발해 합병안을 자진해 철회했다.
이번 주총에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참패하긴 했지만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을 지켜보며 공격을 재개할 가능성이 여전해 분할합병 카드를 다시 제시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일각에서 합병비율을 조정하는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할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어느 수준으로 조율해야 시장을 설득할 수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번 주총 결과만 놓고 섣불리 분할합병 카드를 꺼냈다가 다시 시장의 반발을 살 수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