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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
지주회사. 다른 회사의 주식 또는 지분을 소유해 그 회사를 지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서 지주회사를 '주식 소유를 통해 국내회사의 사업내용을 지배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로서 자산총액 1천억 원 이상이고 보유주식 가치가 자산총액의 50% 이상인 회사'로 규정하고 있다.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지주회사가 전 계열사를 거느리는 지주회사체제는 지배구조가 단순하고 사업구조조정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 한 회사의 부실이 다른 회사로 전이될 가능성도 적다.
하지만 지주회사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문제가 있다. 지주회사를 손에 넣으면 지주회사의 자회사와 손자회사까지 모두 지배할 수 있어 적대적 인수합병 등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지주회사 제도는 장단점이 모두 있고 완전하지도 않다. 점점 많은 회사들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면서 지주회사제도는 기업들에 유리한 방향으로 계속 변화해 왔다. 지금도 대기업들은 지주회사제도를 개선해 줄 것을 요구한다.
◆ 대기업 가려운 곳 한 번에 긁어주는 원샷법
기획재정부는 사업재편지원특별법 초안을 이르면 다음달 내놓고 상반기에 입법절차를 거치려고 한다. 일명 ‘원샷법’이라 불리는 이 법은 기업의 사업재편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상법·세법·공정거래법상 규제를 단일 특별법으로 완화해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6일 사업재편지원제도 구축방안 건의문을 정부와 국회에 제출해 기업의 구조개편을 가로막고 있는 규제를 완화해 줄 것을 촉구했다. 재계의 주요 요구사항은 지주회사 부채비율 제한 폐지, 비계열사 지분율 제한 폐지, 증손회사 지분율 하향조정, 금산분리 완화 등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원샷법으로 공정거래법으로 규정된 지주회사의 행위제한 요건이 완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각종 규제 때문에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못하고 순환출자를 유지하고 있던 대기업들도 이번 기회에 지주회사 전환을 노리고 있다.
현재 지주사의 손자회사는 증손회사의 지분 100%를 보유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원샷법에서 증손회사 지분 보유율을 완화할 가능성이 높다. 또 수직적 출자구조를 유지하면서 자회사들이 손자회사에 공동출자하는 것도 허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정부는 그동안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엄격하게 제한해 온 일반 지주회사의 금융회사 보유를 중간금융지주회사 방식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금융계열사만 묶어 중간금융지주회사를 두고 그룹 내 다른 계열사와 지분관계를 분리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이후 금산분리 강화와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중간금융지주회사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중간금융지주회사가 허용되면 금융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지 못하고 있는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롯데그룹 등이 지주회사로 전환을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가 재벌기업에 지나친 특혜를 주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경제력 집중이란 의미에서 지주회사를 규제하던 족쇄를 모두 풀어주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재벌특혜 우려가 나올 수 있는 만큼 재벌 대기업을 제외하고 중소중견기업에게 먼저 지주회사 규제완화를 적용한 뒤 긍정적 효과에 대한 공감대가 생기면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 외환위기 이후 부실기업 구조조정 막기 위해 도입
우리나라에서 현재와 같은 지주회사 제도의 역사는 길지 않다.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유지할 수 있는 지주회사는 지금은 장려되는 제도이지만 과거 재벌의 경제력집중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해 금지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본격적으로 기업집단을 이루기 시작하자 1987년 정부는 출자총액제한제도와 함께 지주회사 설립과 전환을 금지했다. 그뒤 1995년까지 20여 곳의 지주회사가 정리수순을 밟았고 지주회사는 모두 사라졌다. 대기업들은 순환출자를 통해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방법을 채택했다.
그러나 순환출자는 한 계열사의 부실이 다른 계열사로 줄줄이 이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이 때문에 외환위기 사태를 겪으면서 순환출자의 문제점이 부각되고 지주회사체제로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고 사업구조조정을 쉽게 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떠올랐다.
OECD와 IBRD(국제부흥개발은행) 등도 1998년 외자유치와 비주력사업 매각 등을 위해 지주회사를 권고했다. 그러자 정부는 1999년 지주회사제도를 부활시켰다. LG그룹이 가장 먼저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며 우리나라 지주회사의 신호탄을 쐈다.
그러나 재벌총수의 경제력 집중을 우려해 최초 지주회사제도는 매우 엄격했다. 지주회사는 부채비율 100% 미만을 유지해야 하며 자회사 지분은 50% 이상 보유하도록 했다. 또 자회사의 손자회사 보유도 금지됐다. 다만 자회사의 사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손자회사를 보유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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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
◆ 정부, 재계 요구 수용해 지주회사 요건 완화
재계 관계자들은 지주회사 요건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점을 들어 정부 기대와 달리 지주회사 전환을 꺼려했다. 그러자 정부는 지주회사 요건을 차츰 완화해 나갔다.
2003년 정부는 비상장합작사의 경우 지분율 요건을 50%에서 30%로 낮추기로 했다. 또 손자회사에도 자회사와 같은 지분율을 적용하기로 하고 부채비율과 지분율 충족기한을 지주회사 전환 뒤 1년에서 2년으로 연장해 줬다.
이에 따라 GS그룹이 2004년 지주회사 GS를 설립하며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기업들은 지주회사 전환을 하지 않았다. 지주회사 전환을 하고 싶어도 부채비율을 맞추기 어렵고 또 순한출자로 복잡한 지배구조를 지주회사-자회사-손자회사로 단순화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들은 부채비율 100%와 자회사 지분율 등이 지주회사 전환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며 이를 완화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결국 정부는 2006년 지주회사 부채비율을 200%로 상향하며 재계 요구를 수용했다. 자회사 지분 요건도 비상장사는 50%에서 40%로, 상장사는 30%에서 20%로 낮췄다.
또 손자회사가 사업관련성이 있어야 한다는 요건을 폐지하고 손자회사가 지분 100%를 보유할 경우 증손회사도 거느릴 수 있도록 했다.
그러자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기업들은 점차 많아졌다. SK그룹, CJ그룹, 한진중공업그룹, 웅진그룹, LS그룹, 두산그룹 등이 지주회사체제로 갈아탔다.
◆ 두산, 지주회사 아닌 지주회사
지주회사로 전환했다가 다시 지주회사에서 해제된 경우도 있다. 두산은 24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지주회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2009년 지주회사로 전환한 지 6년만이다.
두산은 산업차량과 연료전지 등 자체사업 규모가 커져 전체 자산에서 계열사 지분이 차지하는 비율이 지난해 47.8%로 지주회사 요건인 50% 아래로 떨어졌다.
두산은 “지주회사로서 실질적 지위와 역할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두산은 지주회사에 대한 각종 규제에서 벗어나게 됐다.
특히 두산은 손자회사인 두산인프라코어가 증손회사인 밥캣홀딩스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두산이 지주회사에서 벗어나면서 이를 일부 처분해 밥캣홀딩스 상장을 위한 외부자금을 유치하고 두산인프라코어 재무구조를 개선할 수 있게 됐다.
또 두산 손자회사 두산건설은 증손회사 네오트랜스 지분을 42.9%만 보유하고 있어 나머지 57.1%를 모두 매입하거나 아니면 지분을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번 지주회사 해제로 이런 부담을 덜게 됐다. 두산은 금융계열사인 두산캐피탈 보유 문제도 해결했다.
두산은 지주회사에서 해제되면서 자회사에서 얻는 배당이익에 대한 면세혜택이 사라지게 됐다. 앞으로 발생하는 배당은 법인세를 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약 30억 원 수준으로 재계 관계자들은 두산이 지주회사 해제로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비하면 작은 것으로 본다.
이 때문에 두산이 실질적으로 지주회사 체제를 유지하면서 지주회사 규제는 적용을 받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주회사제도가 대기업의 편의에 따라 활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인 것이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디모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