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에서 정 회장의 현대모비스 대표이사 연임이 현대차그룹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는 관측에도 불구하고 대표이사를 계속 맡는 것은 주주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아니라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강조해 온 ‘선진화된 경영 시스템’에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엘리엇메니지먼트가 이사회 재편을 포함한 기업경영구조의 합리화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4일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22일 열리는 현대모비스 정기 주주총회에 정몽구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상정된다. 현대모비스는 정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을 주주들에게서 승인받으면 이후 임시 이사회를 소집해 정 회장을 대표이사에 올리기로 했다.
안건이 무사히 처리되면 정 회장의 임기는 2022년 3월까지로 3년 연장된다. 정 회장이 현대모비스 전신인 현대정공의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을 때가 1987년이니 무려 35년 동안 대표이사를 맡게 되는 것이다.
정 회장이 현대모비스 대표이사 임기를 연장하는 것은 다소 뜻밖으로 받아들여진다.
애초 지난해 초 현대건설 기타비상무이사에서 물러나면서 앞으로 현대모비스와 현대차의 등기임원도 내려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는데 오히려 계속 맡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정 회장은 현대차 대표이사 지위도 유지한다. 정의선 부회장이 대표이사에 오름과 동시에 정 회장이 ‘정의선체제’에 힘을 싣기 위해 현대차 대표이사에서 자연스럽게 물러날 것이라는 증권가 전망은 또 빗나갔다.
현대차그룹은 오너 부자 사이인 정 회장과 정 부회장이 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대표이사를 동시에 맡게 된 만큼 책임경영 의지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외부의 시선은 약간 다르다.
무엇보다 정 회장이 사실상 대외활동을 끊은 상황에서 대표이사라는 직책을 맡는 것은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경영방식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정 회장은 2016년 12월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 참석한 뒤 2년 넘게 두문불출하고 있다.
현대그룹에서 현대차그룹을 이끌고 나와 분가한 뒤 16년 동안 직접 주재했던 그룹 시무식도 2017년부터는 윤여철 부회장이 대신 진행하다가 올해 처음으로 정 수석부회장이 이끌었다. 2017년 9월 부회장단 긴급회의를 소집해 그룹 현안을 직접 챙기기도 했지만 이후 열린 해외법인장 회의는 정 부회장이 주재했다.
2018년 9월 전격적으로 이뤄진 정 수석부회장의 승진도 사실상 정 회장의 경영공백을 메우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현대차그룹은 당시 “그룹의 중요 결정사안 등은 정 수석부회장이 직접 정 회장에게 보고하고 결정하는 방식으로 처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차그룹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정 회장은 한 달에 1~2차례 정도만 현대차로 출근하고 있다. 현대모비스에는 아예 출근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공식활동도 하지 않고 계열사를 챙기는 횟수도 사실상 명맥을 잇는 수준에 그친다는 것은 사실상 그룹 경영에서 손을 뗐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정 회장이 대표이사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합리적이냐는 의문이 여기에서 나온다.
상법상 대표이사는 회사를 대표하는 자로서 대표권을 지니는데 그 범위는 회사의 영업에 관한 재판상이나 재판 이외의 모든 행위에 미친다. 이사회에 위임된 권한 안에서 업무집행에 관한 세부적·일상적 사항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도 대표이사의 몫이다.
막대한 권한과 동시에 책임 또한 막중하다. 주주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 발생하면 그에 합당한 책임도 져야 하며 회사가 민형사상 고소를 당하면 피고소인 신분이 되기도 한다.
2년 넘게 현대차그룹 수장에 걸맞는 공식일정을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모비스 대표이사로서 권한 행사와 그에 따른 책임을 지기 힘들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번지는 이유다.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이러한 점들을 문제삼아 현대차그룹을 공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이미 지난해 4월 현대차그룹에 서한을 보내 이사회를 재편할 것을 요구하며 “현대차그룹이 옛 한국전력 부지 인수, 현대건설 인수, 현대라이프생명보험 인수 등 ‘의문스러운 투자’를 한 것은 이사회 구성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주요 계열사의 고위 임원이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는 이해관계이 충돌을 낳을 수 있다”고 공격했다.
엘리엇매니지먼트는 주주총회를 앞두고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고배당을 요구하며 표대결를 준비하고 있다.
이사 선임을 위한 주주제안을 내는 등 기업경영구조를 합리적으로 개선할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데 정 회장의 거취가 엘리엇매니지먼트에 또 다른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