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글로비스가 향후 추진될 현대자동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중심에 설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의 보유지분이 높은 점, 주주 설득 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 등에서 현대글로비스를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개편이 매력적 선택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9일 증권가 전망을 종합하면 현대글로비스가 현대차그룹의 지배회사가 될 가능성을 높게 보는 시선이 늘고 있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의 실적 반등이 지연되고 경영진이 (대주주의) 경영권 안정을 지배구조 변경의 최우선에 둔다면 현대글로비스를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둘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최근 유안타증권도 현대글로비스의 지배회사 전환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보고서를 냈다.
남정미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이 이미 한 차례 지배구조 개편에 실패한 입장에서 좀 더 안전한 대안을 내놓을 것”이라며 “현대글로비스가 현대차그룹의 최상위 지배회사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과거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관련 보고서들이 나올 때만 해도 현대글로비스는
정의선 수석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자금줄 역할을 할 기업으로만 꼽혔다.
하지만 최근에는 현대차그룹이 현대글로비스를 지배회사로 삼고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핵심 계열사들을 거느리는 형태로 지배구조를 개편할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 수석부회장이 현대글로비스를 안정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글로비스의 지배회사 전환 시나리오에 설득력이 더해진다.
현대모비스를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기존 방식대로라면 합병법인의 지분을 추가 취득하는 과정에서 외국계 헤지펀드에게서 경영권 위협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현대글로비스를 지배회사로 만든다면 경영권 위협을 받을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진다. 2018년 말 기준으로 정 수석부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은 23.3%다.
강 연구원도 “현대글로비스를 지배회사로 두면 정 수석부회장이 직간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지분이 충분히 확보됨으로써 외부주주의 잠재적 공격에 대한 방어가 용이해진다”고 파악했다.
순환출자 문제를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현대글로비스 활용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그룹에는 현재 ‘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제철’ ‘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차→현대제철’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현대차→현대글로비스’ 등 4개의 순환출자고리가 존재한다.
현대글로비스를 지배구조로 세울 때 ‘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 중심의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핵심문제로 꼽히는데 기아차와 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현대글로비스가 사들인다면 순환출자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
현대차가 보유한 현대글로비스 지분 4.9%를 매각해야 하는 문제가 남지만 지배구조상 이를 유지해야 할 의미가 적어 처분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주주들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기존 방안대로 현대모비스를 인적분할해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한 뒤 이를 지배회사로 세우려면 각각의 회사에서 한 차례씩 주주총회를 열고 주주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합병비율 등을 놓고 주주들을 충분히 만족할 만한 방안을 내놓지 못한다면 주총 통과가 쉽지 않다.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지배구조 개편에 실패했던 결정적 이유도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비율에 불만을 드러낸 주주들의 강한 반발이었다.
하지만 현대글로비스를 활용하면 지분 정리의 문제만 남기 때문에 사실상 주주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다만 현대글로비스가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겪어온 점은 현대글로비스 중심의 지배회사를 구축하는 데 부담이 될 수 있다.
현대글로비스는 최근 수 년 동안 전체 매출의 65% 이상을 계열사와 거래를 통해 내고 있다. 한 때 내부거래 비중이 80%를 넘기도 했다.
현대글로비스는 오너일가의 지분율이 30% 미만이라 독점규제와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기업은 아니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이 개정되면 규제 대상 기업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 계열사 의존도를 낮추는 작업이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강 연구원은 “외부 매출 중심인 완성차 해상운송(PCC)사업에서 세계 1위에 오른다면 현대글로비스가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으로 가는 데 사회적 이견도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모비스 지분 인수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금융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는 점도 중장기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다.
현대글로비스가 기아차의 현대모비스 지분 16.9%를 인수할 때 필요한 돈(약 2조 원)을 연 3%의 금리로 차입한다고 가정할 때 현대글로비스가 해마다 부담해야 할 순이자비용은 600억 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비즈니스포스트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