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훈 삼성물산 이사회 의장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삼성물산 대표이사였다.
미국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해 주주총회에서 첨예한 표 대결이 예상되던 때였다.
최 의장은 당시 싱가포르와 홍콩 등 해외를 한 달 넘게 돌며 삼성물산 지분을 지닌 해외 투자자들을 만났다.
삼성물산 임직원도 수박과 화장품세트를 들고 국내 주주들을 찾아다니며 합병을 설득했다.
최 의장이 삼성물산의 자체사업보다 제일모직과 합병에 더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최 의장이 반드시 성사해야 할 과제로 꼽혔다.
최 의장을 비롯한 삼성물산 임직원이 치열한 설득 작업을 벌인 결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은 통과 기준인 66.7%(참석주식의 3분의 2)보다 3%포인트가량 많은 69.5%의 찬성표를 얻어 주주총회 문턱을 넘었다.
그로부터 3년, 최 의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적정성 논란에 다시 직면해 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상황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불공정한 합병의 배후에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문제가 있다”며 삼성물산을 향한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 분식회계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문제”라며 “삼성 내부문서를 통해 삼성물산의 합병 회계처리 문제가 드러난 이상 금융감독원은 삼성물산 감리에 즉시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불공정 합병 의혹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를 놓고 고의적 분식회계라는 결론 내리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겸 증권선물위원장은 14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 심의 결과를 발표하며 “삼성물산의 감리 필요성을 별도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은 현재 연결기준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재무상황과 실적을 재무제표에 반영하고 있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재무제표 변경만으로도 재무상황이 나빠질 수 있다.
하지만 삼성물산이 금융감독원의 감리를 받는다면 재무제표 숫자 변경 이상의 파장이 일 수 있다.
박용진 의원이 공개한 삼성 내부문건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2015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를 바꾸지 않으면 삼성물산의 부채가 1조8천억 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 방식 변경을 추진했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의 실질적 지주사 역할을 하는 곳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다른 무게감을 지닌 만큼 분식회계 의혹이 일면 삼성그룹은 신뢰도에 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최 의장은 한국인 최초로 제너럴일렉트릭(GE) 최고경영진 자리까지 오른 GE 출신 전문경영인으로 글로벌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2007년 삼성그룹에 영입됐다.
이재용 부회장의 측근으로 꼽히며 삼성SDI, 삼성카드, 삼성물산 등 여러 계열사 대표를 맡아 실적을 개선해 ‘미스터 해결사’라는 별명도 얻었다.
최 의장은 건설업과 전혀 연관이 없지만 2013년 말 삼성카드에서 삼성물산 대표로 자리를 옮겼고 2015년 삼성그룹의 가장 어려운 과제로 꼽혔던 제일모직과 합병을 성사해 냈다.
그는 2015년 합병 당시 주주들에게 제일모직과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을 2020년까지 매출 60조 원의 회사로 키우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삼성물산은 2017년 연결기준으로 29조 원의 매출을 올렸다.
최 의장이 2015년 제시한 비전을 이뤄내기 위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결론 이후 삼성물산을 덮치는 후폭풍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서 공식적으로 감리가 들어오면 상황에 맞춰서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 의장은 2018년 초 후진 양성을 이유로 삼성물산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났고 현재 이사회 의장만 유지하고 있다.
최 의장이 미스터 해결사 역량을 다시 한번 보여줄 수 있을까? [비즈니스포스트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