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이 국제해사기구의 선박 환경 규제를 글로벌 대형 선사들과 경쟁할 수 있는 발판으로 삼을 수도 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22일 미국 행정부가 'IMO2020' 선박 환경 규제를 놓고 우려를 표명한 것과 관련해 “IMO2020 선박 환경 규제는 매우 오랜 시간에 걸친 논의를 통해 확정된 것”이라며 “발효가 1년2개월 남짓 남은 상황에서 규제의 내용이나 일정이 바뀌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 유창근 현대상선 대표이사 사장.
김현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 역시 “트럼프 행정부도 선박 환경 규제의 폐지나 연기를 원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우려에 따라 선박 환경 규제 시행이 일괄적으로 연기되거나 규제의 강도가 약화될 개연성은 낮다”고 바라봤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9일 “트럼프 행정부가 IMO2020 선박 환경 규제 시행에 따른 소비자와 기업의 비용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며 “백악관은 환경 규제의 파급력이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단계적으로 실행하기를 원한다”고 보도했다.
미국 정부의 입김으로 IMO2020 시행이 미뤄지는 등 일정이 바뀔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IMO2020 선박 환경 규제는 국제해사기구가 산성비를 유발하는 황산화물(SOx) 배출을 막기 위해 2020년 1월부터 선박 연료유의 황 함유량 상한선을 3.5%에서 0.5%로 대폭 강화하는 규제다.
이에 따라 2020년부터 운항하는 선박들은 스크러버(배기가스 정화장치)를 달거나 선박 연료유를 기존에 사용하던 고유황유보다 40~50% 더 비싼 저유황유로 바꿔야한다.
해운업계에 전반적으로 비용 부담을 안길 수 있는 규제지만 현대상선은 조금 사정이 다르다. 현대상선의 비용 부담 증가보다 현대상선이 앞으로 경쟁해야하는 글로벌 대형 선사의 비용 부담 증가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현대상선 관계자에 따르면 배 하나에 스크러버를 달기 위해 필요한 비용은 70억~80억 원 수준이다. 머스크나 MSC 등 글로벌 대형 선사들이 컨테이너선을 수백 척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살피면 모든 선박에 스크러버를 다는데 필요한 비용은 천문학적 수준이다.
글로벌 대형 선사들은 선박에 스크러버를 달기보다는 저유황유 사용으로 규제에 대응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지만 이에 따른 연료비 부담도 만만치 않다. 저유황유 사용으로 머스크가 추가로 감당해야 할 연료비는 기존 연료비의 1.6배 수준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이 보유한 컨테이너선은 9월말 기준 모두 54척이다. 그 가운데 사선(빌리지 않고 선사가 소유하고 있는 선박)은 모두 15척밖에 되지 않는다.
글로벌 대형 선사들과 비교해 비용 부담이 적을 수밖에 없다. 현대상선은 이미 최근 발주한 20척의 대형 컨테이너선을 모두 친환경 선박으로 주문하기도 했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선박 환경규제가 모든 해운사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글로벌 대형 해운업체와 현대상선의 선복량 규모 차이만큼이나 비용 상승 부담 차이가 매우 크다”며 “현대상선으로서는 오히려 선박 환경 규제가 상대적 비용 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국제해사기구 해양환경보호위원회(IMO MEPC)는 22일부터 26일까지 73차 회의를 여는데 트럼프 행정부가 이 문제를 논의하려고 할 것이란 예상이 일각에서 나온다. IMO2020 규제 시행을 재협의하기 위해서는 국제해사기구 가입국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비즈니스포스트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