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사업에서 경쟁사의 물량 공세에 맞대응하기보다 당분간 출하량을 조절해 업황 변화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쓸 것으로 예상된다.
SK하이닉스를 포함한 주요 반도체 경쟁사들이 점유율 확보를 위해 투자를 계속 확대하고 있는 것과 상반된 전략이다.
블룸버그는 21일 관계자를 인용해 "삼성전자가 내년부터 메모리반도체사업의 외형 확대를 자제하고 공급 증가 속도를 늦춰 수요 침체에 대응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하반기 들어 기존에 계획하고 있던 D램과 낸드플래시의 생산설비 증설 규모를 줄이거나 투자 시기를 내년까지 늦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메모리반도체 공급업체들의 출하량이 수요를 웃돌며 가격 하락세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삼성전자는 반도체사업에서 수익성 악화를 감수하고 출하량을 늘려 높은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는 것보다 업황이 최대한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것을 바라고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의 주요 메모리반도체 경쟁사들은 반도체업황이 나빠져도 생산 투자를 계속 늘리는 상반된 전략을 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9월 말 충북 청주에 신축한 M15 반도체공장의 준공식을 연 뒤 연말까지 생산장비를 반입해 가동을 시작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마이크론은 20일 실적발표회에서 자체 회계연도 2019년(2018년 12월~2019년 11월)에 100억 달러(약 11조 원)에 이르는 사상 최대 규모 투자를 벌이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도시바메모리와 웨스턴디지털은 약 5조 원의 투자를 들인 일본 낸드플래시 합작 생산공장을 8월 완공한 뒤 양산을 시작했다.
닛케이아시안리뷰는 "도시바메모리와 웨스턴디지털은 낸드플래시 공급 과잉이 벌어진 상황에도 새 공장의 생산 능력을 키워 삼성전자를 추격하겠다는 강한 신호를 보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세계 D램과 낸드플래시시장에서 모두 큰 격차로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반면 다른 반도체기업들은 시장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서로 치열한 점유율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라 업황이 나빠져도 생산 투자를 축소하기 어려운 처지다.
삼성전자가 점유율 싸움에 거리를 두고 반도체 시설 투자를 축소하는 전략은 그만큼 메모리반도체 선두기업으로 여유를 보이고 있는 셈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삼성전자는 현재의 반도체시장 과점체제에 만족하고 있다"며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급량을 줄이면 업황이 개선될 가능성도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출하량을 크게 늘리지 않는다면 공급 물량을 늘려 가격 하락폭을 만회하는 전략을 쓰기 어려워진다. 메모리반도체 경쟁사들과 점유율 격차도 빠르게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다른 반도체기업들이 공격적 증설 투자를 벌인 뒤 가동비 부담과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고전할 때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수익성을 지켜내기에 유리한 위치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업황이 회복되면 언제든 대규모 생산 투자를 재개해 대응할 수 있는 막대한 자금 여력도 확보하고 있다. 투자 축소가 중장기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은 셈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반도체 공급 가격을 고려해 출하량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일은 없다"면서도 "투자 계획은 시장 상황에 맞춰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비즈니스포스트 김용원 기자]